"연말 대목에 웬 날벼락"... 계엄 리스크에 우는 유통업계·자영업자
경제 불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내수 경기까지 얼어붙은 상황에서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가 탄핵 국면으로 이어지자 소비자 경제와 밀접한 유통업계와 자영업자들 사이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연중 최대 대목인 연말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데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도 줄어들어 서울 주요 상권을 비롯해 호텔, 면세, 홈쇼핑 관련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면세 업계는 최악의 겨울을 보낼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은 계엄 당일 야간 거래에서 1440원까지 치솟았고, 이후 잠시 주춤했다가 이날 다시 1435원을 돌파하며 상승세다. 고환율이 이어지면 달러로 구매가 이뤄지는 면세점으로선 악재다. 장기적으론 환율이 오른 만큼 판매가도 오르는 구조여서 가격 경쟁력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세금을 면제한 저렴한 가격이 면세점의 무기였던 만큼, 사실상 방문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면세점 업계의 부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면세점 매출의 90%가량을 차지하던 중국 유커(단체관광객)와 따이궁(보따리상)들이 경기 침체로 주머니를 닫은 데다, 관광 패턴의 변화로 개별 방문이 늘고 있어서다. 실제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업계 총매출은 2019년 24조8586억원 대비 44.7% 줄어든 13조7586억원에 그쳤다. 장기 부진에 접어들며 롯데면세점은 6월 비상경영을 선포한 데 이어 8월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 역시 지난달 창사이래 처음 희망퇴직 접수를 받았다.
탄핵 국면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외국인 관광객 수요마저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국과 이스라엘 등 세계 각국이 한국 여행 자제령을 내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계엄령 직후 스웨덴 총리는 방한을 연기했고, 미국 국방장관도 방한을 보류했다.
호텔 업계 역시 이러한 위기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당장의 피해는 제한적인 만큼 예의주시하겠다는 분위기다. 서울 시내 한 5성급 호텔 관계자는 “특급호텔이나 대형 호텔의 경우에는 첫날 안전에 대한 문의는 있었으나 유의미한 객실 취소나 비상 상황은 없다”며 “예정돼 있던 연회가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대기수요가 많기 때문에 직접적인 매출 타격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소 규모 호텔들은 상황이 또 달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탄핵 정국에 접어들며 올 사람도 안 오고, 살 사람도 안 사다 보니 기회비용 측면에서 심각한 손해를 본 셈”이라며 “연말 대목에 자영업자들은 물론, 고달러 여파로 면세업계 실무자들 사이에선 곡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내수 '꽁꽁'
홈쇼핑 업계는 내수 위축의 최선선에 놓여 있다는 우려다. 재핑 효과(TV 시청자가 채널을 바꾸는 과정에서 중간에 있는 채널의 시청률이 높아지는 현상)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탄핵 정국 속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울한 뉴스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시청자가 상품을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나”라며 “야외 활동으로 인한 생방송 시청률 감소도 내부적으로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그래도 케이블TV 사업자와 송출수수료 협상으로 힘든 와중에 겹악재를 맞은 격”이라고 했다.
물가와 인건비, 월세까지 폭등한 가운데 자영업자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서울 중구에서 15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B씨는 “8년 전 이맘때쯤에도 손님들이 예약을 대거 취소했던 경험이 생생하다”며 “가뜩이나 연말 예약이 작년의 절반으로 줄었는데, 불안한 정국이 길어지면 소비 위축이 또다시 재연될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내년 1월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에 대한 대응도 차질이 우려되면서 K뷰티·K푸드 등 주요 품목의 수출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들은 기업 자체적으로 대응 여력이 있겠지만, K푸드나 K뷰티를 주도하는 중소기업들은 상황이 다르다“며 “모터가 없는 보트처럼 파도가 치는 방향에 따라 휩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나서 협상을 해줘야 하는데, 정치적 리스크가 대두한 상황에서 트럼프 2기는 1기 때보다 불확실성이 더욱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