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남북관계, ‘속수무책’ 한국 정치 [유창선의 시시비비]
(시사저널=유창선 시사평론가)
북한이 러시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규모 파병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에 커다란 파장을 낳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1만여 명의 군인을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일부 북한 장교가 이미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 배치됐다"고 밝혔다. 이어 10월22일에는 "북한에서 여단 두 개, 잠재적으론 각 6000명으로 구성된 두 개의 여단 규모 군대를 준비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이건 도전이다"고 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도 "북한이 러시아 해군 수송함을 통해 북한 특수부대 1500여 명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냈다"며 "앞으로 1만여 명이 추가로 러시아에 투입되면서 총 1만2000여 명이 파병될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아직까지는 관련 당사국들의 주장이 달라 정확한 상황이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다. 북한은 일단 파병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주유엔 북한대표부 관계자는 유엔 제1위원회 패널 토론에서 "주권 국가와의 합법적이고 우호적인 협력을 약화하고 북한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근거 없고 뻔한 소문에 어떤 발언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첫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 정부 대표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군 파병과 관련한 잇따른 보도를 두고 "터무니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북한의 파병이 사실이라면) 이는 위험하고 매우 우려되는 발전이자 깊어진 북·러 군사 관계를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미국 정부는 관련 보도를 확인할 수 없으나 사실이라면 우려된다는 수준의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군의 파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강력한 대응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21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러의 무모한 군사적 밀착이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10월22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회의를 개최했다.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까지 열어둔 尹 정부
'북한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전투병력 파병에 따른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 추이에 따라 단계적인 대응 조치를 실행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을 "북한군 일부 인원이 러시아에 도착해 준비 작업을 하는 상태"라며 "본격적인 파병의 전조 단계"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에 관해 "단계별로 시나리오를 보면서, 방어용 무기 지원을 고려할 수도 있고, 한도를 지나쳤다 싶으면 공격용 무기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고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만약 북한의 파병이 사실로 확인되고 우리 군도 그동안 자제해 왔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에 나설 경우 남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휘말리는 사태가 심각히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한이 한반도에서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을 낳고 있는 가운데 다른 나라들의 전쟁에서 대결하는 모양새가 될 경우 남북관계의 군사적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은 이미 "북한이 러시아를 대신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한다면 분쟁이 크게 확대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각 분야 협력을 넘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핵추진 잠수함 같은 첨단기술을 이전받을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러시아의 참전 가능성 등도 내다볼 수 있는 일이 된다. 이는 한반도의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키는 새로운 변수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며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이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남과 북은 2개의 국가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이 남한을 더 이상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남 노선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조 위에서 북한은 쓰레기 풍선 살포,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등 각종 위협과 도발을 자행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우리 측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기를 둘러싸고도 긴장이 격화됐다. 북한은 남한 무인기가 여러 차례 평양에 침투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0월12일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 수도 상공에서 대한민국의 무인기가 다시 발견되는 순간 끔찍한 참변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군사적 대응을 위협했다. 실제로 북한 총참모부는 같은 날 국경선 부근 포병연합부대와 중요화력임무가 부과된 부대들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고 작전예비지시를 하달했다.
전쟁 위기 최고조 속에서도 여야는 무한정쟁 늪에
이 무인기에 대해 우리 군은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취하고 있어 민간에서 보낸 것인지 군에서 보낸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물론 아직 남북한이 서로 '말 폭탄'을 주고받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무력시위가 언제 군사 충돌로 비화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최근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올린 '한국 전쟁 재발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제목의 기고에서 "북한이 향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극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주변 정세의 격동 속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는 말 폭탄만 반복할 뿐,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야당대로 정권 퇴진 요구에만 갇혀 있을 뿐 작금의 안보 위기를 초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여기서 초당적이라 함은 과거처럼 무조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해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 정부가 드러내고 있는 외교안보 정책에서의 한계를 야당의 정책들을 수용할 것은 수용하면서 국민의 불안이 없도록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길의 모색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야는 무한정쟁의 늪에 빠져 있고, 여권 세력조차 내부 분열에 휩싸여 있으니 이런 국가적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려는 정치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중한지, 길을 잃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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