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2차대전·냉전·영토 분쟁 등…축구가 재현한 '전쟁과 평화'

이의진 2022. 11. 2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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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꽃다발 화해' 이란과 미국…24년 만의 재대결 앞둬
2018년 '코소보 논란' 불거진 스위스-세르비아도 맞대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이란과 미국 축구팬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 간 사이가 좋은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다.

껄끄러운 관계인 팀 간 경기는 '국제정치의 대리전'으로 전 세계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는 단연 30일 오전 4시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미국과 이란의 조별리그 B조 경기가 이런 '대리전'으로 꼽힌다.

양국 사이 불화와 갈등의 역사는 뿌리 깊다.

이란은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왕정에서 반미 신정일치 정권으로 통치 체제가 급변했고, 그해 11월 벌어진 444일간의 주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단교했다.

최근에도 2015년 서방과 이란이 맺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2018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파기하면서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2020년 비교적 폭넓을 지지를 받던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총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를 미국이 암살한 후로는 미국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더 깊어졌다는 관측이 많다.

1998년 함께 사진을 찍는 이란과 미국 선수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사실 이 경기는 미국 입장에서는 '24년 만의 복수전'이기도 하다.

양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 차례 맞붙은 적이 있다. 당시 이란이 2-1로 승리했다.

그런데 이때 양국은 축구를 통한 화해를 주선했다.

경기 전 이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준비한 꽃다발을 하나씩 건네며 긴장한 미국 선수들을 활짝 웃게 했다.

AFP통신은 92년간 월드컵 역사에서 '전쟁과 평화'의 속성을 모두 보여준 5차례 '대리전'으로 뽑았다.

1938 대회에서 개최국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8강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은 무장 사병 조직 '검은 셔츠단'으로 유명한 파시즘 정권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영향으로 검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경기장에서 야유가 빗발쳤지만, 이탈리아 선수들은 '파시스트식 경례'를 선보이며 긴장감을 높였다.

1938년 월드컵에서 '파시스트 경례'를 하는 이탈리아 선수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이는 전방 45도 각도로 팔을 쭉 뻗어서 하는 경례법으로 무솔리니 통치 시절, 이 경례법이 널리 쓰여 '파시스트 경례'로 불린다. 독일 나치식 경례와도 흡사하다.

이 경기를 3-1로 이긴 이탈리아가 우승까지 차지했지만, 1년 후 시작된 2차대전에서는 이탈리아가 프랑스가 주축이 된 연합국에 패했다.

1974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개최국 서독과 동독이 맞붙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냉전의 최전선이라 불린 분단국끼리 경기인 만큼 긴장이 고조돼 경기 후 유니폼 교환이 금지됐고, 테러 우려로 경기장 주변에 병력까지 배치됐다.

동독이 1-0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우승은 서독이 차지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맹활약하며 우승까지 거머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영토 분쟁의 대리전이 펼쳐졌다.

당시 8강에서 잉글랜드와 만난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신의 손' 덕에 2-1로 승리할 수 있었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마라도나는 후반 6분과 10분에 연속 골을 터뜨렸는데 첫 번째 골이 헤딩슛이 아닌 마라도나가 내뻗은 주먹에 맞고 들어가 논란이 많았다. 그래서 나온 표현이 '신의 손'이다.

아르헨티나에 이는 4년 전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를 갚는 승리이기도 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1982년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놓고 전쟁을 치렀고 양측에서 900여명이 희생된 가운데 영국이 승리했다.

직전인 2018 러시아 대회에서는 유럽 내 민족분쟁의 대리전이 있었다.

세르비아와 조별리그 경기에서 스위스의 간판인 제르단 샤키리와 그라니트 자카는 연속골로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들은 골을 넣고 양손을 겹쳐 '쌍두독수리' 모양을 만드는 세리머니로 논란을 빚었다.

쌍두독수리는 알바니아 국기에 그려져 있는 상징물이다.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은 쌍두독수리 국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는 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동점골 후 자카의 독수리 세리머니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샤키리는 코소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스위스로 이민 왔고, 자카는 스위스 태생이지만 부모는 알바니아계다.

코소보는 세르비아 영토였으나 알바니아계 반군이 독립을 요구하면서 1998∼1999년 내전을 겪었다.

코소보는 2008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세르비아는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 선수는 이 일로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걸 금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벌금 처분을 받았다.

이 분쟁은 이번 대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지난 24일 세르비아 대표팀은 브라질과 조별리그 G조 1차전 시작 전 라커룸에 코소보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깃발을 내걸어 FIFA가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공교롭게도 샤키리와 자카가 이끄는 스위스는 이번 대회에서도 세르비아와 한 조에 묶였다. 두 팀은 다음 달 3일 오전 4시에 974 스타디움에서 맞붙는다.

이란과 일전을 앞둔 미국의 그레그 버할터 감독은 사전 기자회견에서 '정치'를 차단했다.

"정치적 문제나 양국 관계와 관계없이 다음 라운드로 가고자 하는 선수들의 의지로 경기가 치열할 겁니다."

이란과 일전을 앞둔 그레그 버할터 미국 대표팀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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