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오전 10시 방문한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는 마치 거대한 미래도시나 기계 요새를 방불케할 만큼 웅장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5배(약 415만㎡), 축구장 600개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 위로 수십 대의 타워크레인이 거대한 팔을 뻗어 철근을 실어 날랐다.
전날 내린 비로 미세먼지 없이 화창한 5월의 하늘 아래, 반도체 팹(Fab) 건설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열기와 육중한 건설 장비의 엔진 소리는 평온한 농촌이던 원삼의 풍경을 180도 바꿔 놓았다.
용인 원삼 일대에는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성장과 생명 연장을 위한 '심장 이식 수술'이 한창이다. 이곳은 SK하이닉스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중심부로, 세계 최초로 ‘3복층 팹’ 구조가 적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내년 5월 첫 양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1분 1초를 아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AI 반도체 성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공정 현황판에는 ‘2027.05.01’이라는 가동 예정일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6개의 클린룸으로 구성되는 1기 팹은 지난해 2월 첫 삽을 뜬 후 1년3개월 만에 어느 정도 윤곽을 갖춘 모습이다.
공사 진행률은 75%를 넘어서며 외관 대부분이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현장 관계자는 내년 5월 양산을 위해 조만간 외벽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부 설비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근로자 A씨는 “미국과 중국 등 경쟁국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발판 삼아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이곳은 HBM 시장의 리더십을 지켜낼 최강의 요새”라며 “단 하루라도 완공이 늦어져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24시간 교대 근무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불이 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당초 계획보다 클린룸 면적이 50% 확대됐기 때문이다. 용인특례시는 지난해말 용인 일반 산업단지의 용적률을 기존 350%에서 490%로 상향하고 건축물 최고 높이 역시 120m에서 150m로 높였다.
SK하이닉스는 초기 검토안이던 2복층 설계를 3복층 팹으로 전격 변경했다. 전체 투자 규모 역시 120조원에서 600조원 규모로 5배 늘어났다. 건물을 높이고 늘리는 것을 넘어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극대화해 글로벌 AI 반도체 전쟁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지방 이전론’이 불러온 묘한 긴장감
완공을 향한 열정 이면에서는 묘한 긴장감도 감지됐다. 호남 지역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론’ 탓이다. 전력 및 용수 수급, 지역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정치권의 공세에 현장 인력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10년 차 공정 설계 엔지니어 B씨는 “용인은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마지노선”이라며 “유능한 인재들이 용인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상황에서 지방 이전을 주장하는 것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소리와 같다”고 꼬집었다.

지역 주민들의 불만도 거셌다. 평생 원삼에 거주한 주민 C씨는 “어릴 적 가재 잡던 동네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며 말 그대로 천지개벽했다”며 “10년 전부터 준비해 완공을 눈앞에 둔 공장을 이제 와서 옮기라는 건 국가 성장을 방해하는 처사”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600조원 규모의 자본과 인프라가 투입되는 국가 전략 자산을 정치적 논리로 흔드는 것에 대해 현장과 지역 사회의 거부감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논리가 거대한 건물을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시 돌아본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는 처음 마주했을 때의 위용과 위압감보다 오히려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오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논리에 이 거대한 건축물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이 곳에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수만명의 땀방울이 응집되어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한국 반도체의 생존이 걸린 '배수의 진'이자 미래를 일구는 거대한 현장이다. 마땅히 정치적 셈법과 논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내년 5월 첫 양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현장의 크레인과 근로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국가 반도체 패권의 명운을 쥔 원삼의 심장은 세계 시장을 뒤흔들 힘찬 첫 고동을 준비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24시간 꺼지지 않는 저 불빛처럼 말이다.
원삼 인근 식당에서 만난 현장 직원 D씨는 “우리는 내일을 걱정할 틈도 없이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고 있다”며, “한국 반도체에 있어 중단이나 이전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말도 안 되는 지방 이전론 같은 정치적 잡음으로 현장을 흔들지 말고 그저 완공 과정을 지켜봐 주기만을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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