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 점령한 SKY·대기업 직장인, 장밋빛 희망에 의대낭인 자처

‘SKY·대기업 포기’ 바늘구멍 경쟁하는 청춘들…“현실적으로 합격확률 높지 않아”

ⓒ르데스크

정부가 내년 대학입시의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기로 하면서 N수생은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의대 진학 열풍이 불고 있다. SKY 합격증을 받고도 의대에 재도전하거나 대기업 재직자마저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등 의대 진학을 위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고 해도 최상위권 수험생 간 높은 경쟁률은 여전한 만큼 무분별한 의대 지원으로 의대 낭인이 범람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서울정부청사에서 2024년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그동안 30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입시에서 5058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의대 입학 정원이 조정되는 것은 지난 2006년 이후 19년 만이다.

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급속한 고령화와 보건 산업 수요에 대응할 의료 인력을 고려할 때, 2035년까지 약 1만500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지역 의대 중심으로 정원을 배정해 지역의료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입학 정원 확대 방안에 따라 올해 고3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5년부터 전국 40곳 의대 입학문이 넓어질 전망이다. 이에 N수생에 더해 대학생, 심지어 30대 직장인까지 의대 입시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대치동에 학원가에서 만난 정현중(31·남)씨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LG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다시 의대 입학을 위한 수능 준비를 마음먹었다”며 “회사에 10년 넘게 근무하시는 상사분들을 보면 연봉이 1억을 약간 넘는 수준인데, 의사 초봉과 거의 맞먹어 현타가 왔다”고 전했다.

의대 열풍에 “연고대·대기업 필요없다”…삼전·SK하닉 등 계약학과 등록포기 급증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상위권 대학 계약학과에서도 합격생들의 무더기 등록 포기가 발생하는 지경이다. 14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연·고대 상위권 대학의 계약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 [그래픽=김진완] ⓒ르데스크

졸업 후 삼성전자에 바로 입사 가능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1차 미등록률은 92%로 모집인원 25명 중 단 2명만이 등록을 완료했다.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 역시 10명 중 단 3명만이 입학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미등록률이 16.7%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53.3%p 증가한 수치다.

올해 수능응시생 김요한(19·남)씨는 “이번 입시에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에 지원했었는데, 의대 정원이 대폭 늘어난 것을 보고 재수를 마음먹었다”며 “입학정원이 2000명이나 증가해 올해 받았던 성적을 내년에 그대로 받게 된다면 의대 합격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원 확대에도 상위 1% 들어야 해”…과도한 의대 준비 ‘청춘 낭비’ 우려

학원가에서는 ‘의대 열풍’에 당장 올해 입시부터 의대 준비를 위한 상담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수험생들 사이 의대 합격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기대가 뜨겁지만, 정작 전체 인원을 보면 합격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일각에서는 과도한 의대 준비를 통해 20대 초반의 청춘을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올해 수능 응시인원은 44만4870명으로 그 중 의대 입학을 위한 자리는 3058개였다. 의대 정원을 현행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린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전체 인원의 1.13% 수준이다. 상위 1%의 자리를 위해 최상위권 수험생들과 경쟁해야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의대 입시는 여전히 불확실한 경쟁일 수밖에 없다.

의대 입시 역시 시험인 만큼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특히나, 1년에 한번 시행하는 수능은 더 변수가 크다. 단순히 입학 인원이 증가한다고 해서 본인의 입학 확률이 높아졌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 사진은 서울 대치동 인근에 위치한 재수학원 내부 전경. ⓒ르데스크

이어 그는 “친구들을 보면 다들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가있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너무 부럽다”며 “이러다 만약 의대를 못 가게 되면 정말 인생이 너무 허탈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수험생 이현종(남·29)씨는 “25에 칼취업에 성공해 HD현대 계열사를 다니다 올해 회사를 그만두고 의대 입시반에 들어왔다”며 “부모님이 뜯어 말리셨지만, 퇴근 후 시험공부를 하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퇴사를 마음먹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불안감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며 “명예와 돈을 다 챙길 수 있는 의사를 위해 정말 배수의 진을 쳤기 때문에 불합격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치동 영어 전문 강사 이연희(29·여)씨는 “최근 여러 학원 내에 의대 준비하겠다는 학생들이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며 “입시는 상대평가기 때문에 정원 증가에 따른 합격 가능성이 극적으로 늘어날 수 없다고 현실적으로 조언해도, 다들 희망에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김도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느순간 재수는 상위권 이과 학생들에게 의대 진학을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한국 인재들의 맹목적인 의대 진학은 국가 차원에서 인적자본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해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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