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의 미국 진출 전략은 한 마디로 '틈새 쫓기'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에 공급하게 된 게르마늄은 원래 중국이 최대 생산국인데 수출 장벽으로 제3국에 기회가 열린 전략광물로 꼽힌다. 또 고려아연이 일찌감치 주목한 미국 전자폐기물 시장은 핵심 광물 확보의 노다지 시장이다. 특히 구리는 전기차와 전력망 투자로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공급은 제한적이어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고려아연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고순도 이산화게르마늄(게르마늄 메탈 약 10톤)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온산 제련소에 구축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데 따른 조치다. 최윤범 회장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 당시 사절단에 포함돼 미국을 방문해 마이클 윌리엄슨 록히드마틴 인터내셔널 사장을 만나 협력을 이끌어냈다.
게르마늄은 야간투시경, 열화상 카메라, 적외선 감지기 등 방위산업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공장 건설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2028년 이후부터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이번 협상은 '오프테이크(생산물 우선 확보권)' 형식으로 진행됐다.
록히드마틴은 중국, 이란, 러시아 등 국가에서 제련한 게르마늄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고려아연과 손을 잡았다.
전세계에서 게르마늄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2021년 정제 게르마늄 생산량 가운데 약 68%는 중국산이었다. 이처럼 특정 국가로 생산이 편중된데 따른 공급망 불안이 심화됐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핵심광물의 '탈중국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번에 민간 차원에서 중국 외 국가에서 생산한 원료 공급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산 게르마늄 공백이 예상되는 만큼, 고려아연은 록히드마틴에 그치지 않고 미국내 타 기업으로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고려아연이 틈새 품목으로 미국 진출 기회를 엿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컨대 구리는 전기차 생산, 전력망 투자 확대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으로 수요가 급증한 반면 공급량은 그 수요를 따라가기 버거운 수준이다. 최 회장은 "2024년 기준 동(구리) 생산량은 3만4000톤이었으며 이를 통한 이익은 약 1000억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이 주로 쓰는 원료인 아연정광에는 구리·납·카드뮴·은 같은 금속이 부원소로 섞여있다. 기존에는 부산물에서 구리를 회수하는 방식이었다면 수요가 급증한 뒤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구리를 확보하고 있다. 설비를 증설해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더 많은 구리를 확보하고 보조적으로 '자원순환' 업체를 통해 구리를 매입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전자폐기물을 수거해 광물을 추출하는 다양한 업체가 있다. 고려아연이 인수한 이그니오, 캐터맨 등이 대표적이다.
최 회장은 "이그니오는 미국 여러 지역에 포진된 네트워크를 활용해 동스크랩을 확보하고 이를 미세하게 분리해 귀금속을 추출하고 있다"며 "수율을 극대화하는 노하우 등 투자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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