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과일과 십선…백선…천선… ‘수박게임’
일본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게임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일본의 각종 서브컬처 이벤트를 섭렵하는 중인 블루 아카이브나 승리의 여신: 니케 같은 게임이 먼저 떠오를 텐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박게임(スイカゲーム)’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게임이 그렇게 인기라고 합니다. 일본의 인터넷 방송에서도 연일 다루고 있고, 판매 중인 닌텐도 e숍에서는 판매 랭킹 1위에 오른 데다가 최근엔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고 할 정도죠.
저는 일본의 격투게임 프로게이머 마고 선수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국 트윗을 처음 보고 이 게임의 존재를 인식했습니다. 마고 선수는 이번 아시안게임에 정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면서 그 근거로 ‘수박게임’도 일부러 놓고 왔다고 써 놨거든요.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이길래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장 중에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일까 궁금해져 직접 플레이해봤습니다.
‘수박게임’은 닌텐도 스위치에 2021년 출시된 퍼즐게임입니다. 개발사는 게임사가 아니라 알라딘 X라는 빔 프로젝터 제작사인데, 자사의 빔 프로젝터에 포함한 게임을 닌텐도 스위치로 이식, 출시했던 것이죠. 출시 목적도 게임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빔 프로젝터의 홍보였던 만큼, 일본 스토어에서만 판매 중인 게임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합니다. 같은 숫자를 합쳐가며 더 큰 숫자를 만들어가는 2048처럼, 과일을 떨어뜨려 같은 과일을 모아 점점 더 큰 과일로 만들어가는 게임이죠. 과일은 가장 작은 체리로 시작해 딸기, 포도, 귤, 감, 사과, 배, 복숭아, 파인애플, 멜론, 마지막으로 게임의 이름에도 있는 수박의 순서대로 커지는데, 과일을 합칠 때마다 점수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과일이 병 밖으로 벗어나면 게임오버가 됩니다.
‘수박게임’의 특징이라면 간단한 물리가 적용되어 있어 쌓아 놓은 과일이 주변 환경에 따라 계속 움직인다는 것에 있습니다. 경사진 곳에 떨어뜨리면 그대로 내려가고, 다른 과일과 맞닿아 있어도 서서히 밀려 떨어지거나 위로 솟아오릅니다. 과일이 합쳐져 커질 때는 그 반동으로 과일이 튕겨 나가기도 하죠.
그래서 테트리스를 하듯이 마구마구 과일을 떨어뜨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가끔은 물리에 따라 떨어지거나 밀려나기 전에 빠르게 떨어뜨리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과일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 제한 같은 것도 없으니 지금 내가 떨어뜨릴 과일이 무엇인지, 다음에 나올 과일이 무엇인지 보면서 차분하게 플레이하면 됩니다.
하지만 여느 낙하형 퍼즐 게임이 그렇듯, ‘수박게임’도 항상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원하지 않는 과일이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 과일들의 움직임도 예상을 크게 벗어날 때가 많다는 게 정말 곤란합니다. 과일을 잘 정리하며 플레이하고 있었어도 과일이 합체하며 갑자기 위로 솟아올라 게임오버가 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스위치를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화나는 게임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플레이하게 됩니다. 이런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들을 뚫고 목표를 이뤄낼 때의 쾌감이 ‘수박게임’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보통 첫 목표가 될 수박 만들기부터 쉽지 않은데, 이거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덤벼들 때마다 ‘저 과일이 저기로 밀려나지만 않았어도…’라는 아쉬움이 생기고, 그 아쉬움이 ‘다음에는 저렇게 해볼까?’하는 다짐과 함께 다음 플레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러다 수박을 만들어냈을 때의 달성감은 정말이지... 그걸 잊지 못해서 계속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마고 선수가 ‘수박게임’을 놓고 간 이유도 알 듯하네요.
중독성 있는 퍼즐게임 '수박게임'. 출시 배경이 배경인지라 일본 스토어에서만 판매 중이라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일본 스토어 이용이 가능한 플레이어라면 가격도 240엔으로 저렴하니 속는 셈치고 즐겨보세요. 무조건 본전은 뽑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