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is] ① 거버넌스 실험? 이사회·수펙스·자회사 '힘의 리더십'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와 합병을 통해 '아시아 최대 종합에너지기업'이라는 외형을 완성했다. 전통적인 정유·화학 사업을 넘어 액화천연가스(LNG)·도시가스·배터리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한 것이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 강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고도화, 위원회 기능 정비 등 선진형 지배구조 모델을 표방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사회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전략 수립 주체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겉보기와 달리 여전히 'SK식 지배구조'의 본질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은 선진형, 작동은 전통형?

SK이노베이션의 이사회는 외형상 선진형 지배구조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체 8인의 이사 중 과반이 사외이사로 구성됐으며 감사위원회·ESG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위원회 체계도 기능별로 정비돼 있다. 의장 역시 사외이사가 맡고 있고 2021년부터는 최고경영자(CEO) 평가·보수·승계와 같은 핵심 경영사항에 대한 의결권도 이사회에 부여했다. 지배구조 보고서에 명시된 규범만 보면 책임경영과 내부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정교하게 구성됐다.

하지만 실제로 이사회가 의제를 능동적으로 설정하고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사례는 드물다. 사외이사 선임부터가 내부 추천 중심으로 이뤄지며 그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간접적 조율이 암묵적으로 개입된다. 이사회는 주로 이미 수립된 경영안건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사후 기구로 기능하며 사전 전략 수립의 주체로 나서지 않는다.

이는 SK그룹이 지난해 11월 개최한 '디렉터스 서밋'에서 직접 시인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SK그룹은 이 자리에서 "이사회의 역할을 전략 방향 설정과 사후 성과 평가 중심으로 재정의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이사회가 경영진이 상정한 안건을 검토·의결하는 데 그쳤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이사회의 실질적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또 다른 근거는 인적 구성과 겸직 구조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사장)는 자회사인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엔무브, SK온 등의 이사회에도 기타비상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명목상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지만 실상은 경영진이 그룹 내 여러 계열사의 이사회를 가로지르며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구조다.

특유의 '이중 거버넌스'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근본 배경에는 SK그룹 고유의 이중 거버넌스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SK그룹은 그간 지주사(SK㈜)와 계열사 이사회 외에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독특한 전략 조율 기구를 운영해 왔다. 이 협의체는 그룹 산하 각 사의 CEO들이 참여하는 실질적 의사결정 기구로 중장기 전략과 대규모 투자를 논의·결정한다.

형식상 각 계열사는 독립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중요한 전략 방향은 수펙스 중심으로 설정되고 계열사 이사회는 이를 집행·추인하는 절차적 기구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단행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또한 수펙스 차원에서 기획된 사업재편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합병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이사회에서 동시에 결의됐지만 그 의사결정은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 조정과 성장 방향 설정에 따라 이미 정해졌던 안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전략성과 독립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계열사 이사회가 그룹 전략에 종속된 채 병존하는 관계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 지배구조의 또 다른 특징은 법률상 지주회사가 아닌데도 그룹 핵심 자회사들을 지배하는 중간 지주사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주사가 아니지만 SK온, SK지오센트릭, SK엔무브 등 핵심 사업 자회사들을 지배하는 사실상 '준(準) 지주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지주회사가 아니기에 출자구조나 내부통제 방식에 제약이 있고 자회사들 또한 각기 독자적인 전략·IR·자금조달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SK온이다. SK온은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임에도 자체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투자·생산 전략도 독립적으로 수립해왔다. 배터리 산업 특성상 대규모 선투자가 선행되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은 실질적 전략 통제권 없이 자금조달 책임만 지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그룹 차원의 전략 집중과 자회사 단위의 자율성, 모회사 책임 간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인 셈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지배구조는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과도기에 있다"며 "향후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위해 내부 견제와 전략 수립 기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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