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만 골라 굶기고 공격하는 항암 기술…정상 조직 손상 최소화

암 조직에만 선택적으로 작동해 암세포를 굶기고 사멸시킬 수 있는 항암 시스템이 개발됐다.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이는 차세대 정밀 항암 전략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권인찬·태기융 신소재공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이 암 조직에서만 작동하는 ‘이중 효소 기반 항암 시스템’(RDC/DAO@NC)을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바이오머티리얼즈 리서치’에 지난 15일 온라인 게재했다고 27일 밝혔다.
항암 치료는 정상 조직의 손상을 줄이면서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 표적 항암 치료는 정상 조직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아르기닌 고갈 유도 항암 치료’도 정상 세포의 대사 및 면역 기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연구팀은 기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암세포를 ‘굶기고 공격하는’ 이중 효소 기반 항암 시스템을 개발했다. 암세포의 필수 영양소인 아르기닌을 제거해 암세포를 굶기고 활성산소를 만들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아르기닌을 분해하는 효소인 ‘아르기닌 디카르복실라제’(RDC)와 활성산소 생성을 유도하는 ‘디아민 산화효소’(DAO)를 하나의 나노운반체(NC)에 탑재해 두 효소가 순차적으로 작동하는 연쇄 반응이 구현됐다.
우선 RDC 효소가 암세포 성장에 꼭 필요한 영양소인 아르기닌을 제거해 암세포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한다. 이어 DAO 효소가 RDC 반응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인 아그마틴을 다시 분해해 과산화수소를 생성한다. 이때 만들어진 활성산소는 암세포에 강한 산화 스트레스를 유도해 사멸을 일으킨다.
RDC 효소는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거의 활성화되지 않고 종양의 약산성 환경에서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정상 조직에 대한 영향은 최소화된다.
연구팀은 세포 및 동물 실험을 통해 RDC/DAO@NC의 항암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했다. 세포 실험에서는 RDC 단독 처리군, RDC·DAO 동시 처리군, 두 효소를 나노운반체에 함께 탑재한 RDC/DAO@NC 처리군을 비교했다.
그 결과 RDC 단독 처리군에서는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가 나타났지만 세포 사멸은 제한적이었고 RDC·DAO 동시 처리군에서는 세포 사멸 효과가 일부 강화됐다. 나노운반체 탑재군에서는 연쇄 반응 속도가 최대 5.1배 증가해 암세포 증식 억제 및 사멸에서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실험용 쥐에게 RDC/DAO@NC를 3일 간격으로 총 4회 정맥 투여한 동물실험 결과에서는 종양 내 RDC·DAO 축적량이 최대 3.3~4.6배 증가했고 종양 내 아르기닌 농도는 약 80% 감소했다. 종양의 크기와 무게가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항암 효과가 확인됐고 활성산소 증가와 세포 사멸 지표 상승도 관찰됐다. 체중 감소나 주요 장기 독성은 나타나지 않아 치료 안전성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향후 다양한 암종으로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고 장기 안전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기존 항암제 및 면역항암 치료와의 병용을 통해 차세대 효소 기반 항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 교수는 “이번 연구는 종양의 산성 환경에서만 활성화되는 ‘스위치형 효소’와 두 효소의 연쇄 반응을 결합한 새로운 항암 전략”이라며 “암세포를 굶기는 대사 치료와 활성산소 기반 세포 사멸을 동시에 유도해 기존 아르기닌 고갈형 항암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 교수는 “기존 표적 항암 치료가 약물을 종양에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연구는 치료 효소가 작동하는 환경 자체를 종양으로 제한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며 “향후 다른 효소 기반 치료나 면역항암 치료와의 병용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학술적 의의와 함께 산업적 응용 가능성이 있다. GIST는 기술이전 관련 협의는 기술사업화센터(hgmoon@gist.ac.kr)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참고 자료>
doi.org/10.34133/bmr.0380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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