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멀쩡 속은 썩었다" 바닷모래 아파트보다 심각하다는 1기 신도시, 왜?
[땅집고] 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 신도시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집 화장실을 수리하다가 업체로부터 누수 위험이 높아 공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92년 조립식 공법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입주 30년을 넘기면서 대부분 가구에 누수 위험이 높아 재건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공모에 접수한 결과는 탈락이었다. 소형 평수가 많아 임차인 비율이 높은 탓에 배점이 가장 큰 동의율에서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의 한 아파트 단지의 건물 외벽에 금이 가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곳 역시 조립식 공법으로 지어졌고, 선도지구 선정을 원했지만, 동의율에서 낮은 점수를 얻어 탈락했다. 주민 B씨는 “건물 외벽이 갈라져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 무섭다”면서 “집 안에서는 화장실이나 주방에서 누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 등에 PC(Precast Concrete)공법으로 지어진 아파트의 안전 문제가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기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불량 콘크리트에 사용돼 아파트를 허물고 재시공까지 했던 일명 ‘바닷모래 아파트’만큼 안전상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PC공법이란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 양생해 골격을 만드는 RC(Reinforced Concrete·철근콘트리트)공법과 달리 벽과 지붕 등 구조물을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축 방식이다. 공사시간 단축, 시공단가 절감 등이 장점이라 1980년~1990년대 정부 주도로 계획된 아파트를 빠르게 건축하기 위해 널리 사용됐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조성된 1기 신도시 아파트 중 상당수가 PC공법으로 지어졌다. 한양이 시공한 아파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아파트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부실 공사가 발생했다. 평촌 신도시 한 아파트에서는 PC공법 공사 중 붕괴사고 일어나기도 했다.
당초 1기 신도시 아파트 위험요소로는 일명 ‘바닷모래 아파트’가 꼽혔다. 콘크리트 골재에 바닷모래를 사용할 때 세척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소금기가 남은 것이 문제였다. 모래에 남은 염분이 철근 부식을 유발하고 녹이 슬며 부풀어 외벽 손상시켜 안전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991년 대한건축학회가 그때까지 지어진 1기 신도시 5곳의 아파트 690동을 조사한 결과 염분 농도 안전기준인 0.04%를 넘는 아파트가 237개동(34.3%)으로 나타났다. 염분 농도 0.04%를 넘는 콘크리트는 10년이 지나면 철근이 무조건 녹슬기 시작한다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있었다.
같은 해 6월에는 평촌과 산본 일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규정 강도의 절반도 안 되는 불량 콘크리트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 지역에서 광주고속, 동아, 우성, 선경, 동성 등이 올린 아파트를 헐고 다시 시공했다.
입주 30여년이 지난 현재 PC공법 아파트가 심각한 안전상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콘크리트는 튼튼하고 공법 자체에도 문제가 없지만, 1기 신도시 조성 당시 구조물 접합 등 조립기술력이 부족해 날림 시공이 빈번했다. 그 때문에 집 내부 누수 문제와 접합부 외벽 크랙 등 문제가 발생했다.
안전 문제에 대한 지적이 꾸준했으나, 한때 빠른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PC공법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진 적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8단지’다. PC공법으로 1988년 준공한 이 단지는 재건축 연한 30년을 채우지 못했으나, 2004년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현재는 ‘포레나노원’으로 재건축해 2020년 11월 입주했다.
한 건설업계 시공 관계자는 “PC공법의 핵심은 구조물 조인트를 접합해 물이 새는 하자를 막는 것인데, 1기 신도시 조성 당시에는 기술력이 부족해 누수 등 문제가 많았다”며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하자 보수 등의 문제로 공기단축, 원가절감 등 기존의 장점도 퇴색했고, 안전문제까지 동반됐다”고 설명했다.
글= 이승우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