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익한 인터뷰] 오늘, 어떤 음식을 먹었나요?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음

조회 682024. 7. 4.
K푸드 어떻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한국인도 몰랐던 한국 음식의 역사
세계와 만나 변화해온 한국 100년 식탁
순천 선암사 남도차의 길다담에서 주영하 교수.

‘이토록 유익한 인터뷰’는 알아두면 유익한 지식과 함께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전하고자 합니다.

사회, 문학, 철학, 경제,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그리고 만나고 싶은 셀럽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지식창고를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지구상에서 요리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무이하다.

20만 년 전부터 불을 사용해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를 통해 인류가 진화했다는 가설도 있다. 요리하는 인간 ‘호마 코쿠엔스’가 대자연이 선택한 인류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 위의 음식들을 무심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인류 진화의 비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어떤 음식을 먹었나요?” 내가 먹은 음식을 말해주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니. 얼핏 영험한 무속인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말은 프랑스 법률가이자 미식가인 ‘장 알텔므 브리야 샤바랭’이 한 말이다.

개인의 음식 취향과 경험을 통해 그의 삶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음식 하나로 인류 진화의 비밀을 넘어 개인의 삶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

바야흐로 한식 열풍이 거세다. 북미와 유럽으로 냉동김밥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고 세계 거리마다 한국 음식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지난해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서 K푸드 브랜드 지수가 뷰티와 K팝을 제치고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세계가 한식에 반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식 모습은 옛 전통 한식과는 꽤 차이가 난다. 한식은 최근 백여 년 동안의 급격한 시대 흐름 속에서 다양한 세계문화를 만나며 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을 비롯한 모든 문화는 변한다.

수 세기 동안 육지와 고립된 채 살아온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지구 곳곳이 실시간으로 접속되는 시대에 한식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세계와 만나 변화해 온 글로벌한 한국 100년 식탁. 그 속에는 문화와 경제가 있고, 정치와 사회도 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를 집대성한 학자가 있다.

한국 음식의 원형이 무엇인가 보다 한국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먹어왔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주영하 교수. 그는 지난 백여 년간 한국인의 식탁에 오른 메뉴를 통해 한국 음식문화사가 어떻게 변화해 왔고, 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통섭의 식탁을 보여준다.

국내 최초의 음식인문학자로서 비판적 논쟁도 서슴지 않으며 음식으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음식인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주영하 교수를 만나보자.

Q. 최근 <한식문화사전> 출간했는데 어떤 책인가요?

사전이라는 그릇에 걸맞게 한국음식의 모든 것을 담은 책입니다. 음식의 역사는 결코 에피소드 모둠이 아닙니다. <한식문화사전>은 레시피 중심의 요리책이 아니라 한식을 둘러싼 역사, 사건, 시문학, 그림, 민속학, 문화인류학, 영양학 등을 아우르는 백과사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총 15명의 전문가가 집필에 참여했는데 문학평론가 하응백 대표가 문학 관련 파트와 사진 자료를 책임졌고 제가 나머지 파트를 조율했습니다. 예전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과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도움이 됐습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포털 사이트와 연동해서 한식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식은 아무래도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중요한데 각 항목에 관한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서 연계하는 것도 고민 중입니다.

Q. 국내 최초의 음식인문학자이신데 음식인문학은 어떤 건가요?

197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의 인류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음식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걸 영어로 푸드 스타디즈(Food Studies)라고 부르는데, 번역하면 음식학정도 되겠죠. 하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식품학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푸드 스타디즈(Food Studies)는 사회과학, 역사학, 사회·문화인류학, 민속학, 예술학 및 기타 분야에서 식품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사회·문화와 그 맥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학문입니다. 식품학은 산업혁명 이후 국민에게 안정적인 식량 공급에 초점을 맞춘 학문이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비판적인 푸드 스터디즈라고 볼 수 없죠. 식탁 위에 오른 음식을 보면서 ‘어떤 재료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무엇을 맛있다고 생각하나?’ 같은 질문에 문화권마다 서로 다른 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고사리를 식용 식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영국계 캐나다인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인은 해장국을 먹으며 시원하다는 말부터 하지만, 미국인은 해장국에 든 고기가 무슨 고기인지 의심부터 합니다.

연세가 드신 분 중에서는 자신의 어릴 때와 달리 최근 젊은이들의 입맛이 많이 달라졌다고 걱정하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역사적인 요리법’이란 말이 있는데요. 모든 문화가 시대에 따라 변형되듯이 같은 이름의 음식이라도 시대에 따라 요리법이 조금 달라지거나 아예 다른 음식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음식에 대한 역사학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그렇다고 음식인문학이 단지 역사학, 문화인류학, 민속학의 시선에서만 음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 속의 물질이든 사람이 만들어낸 물질이든 그 속에는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이 모두 존재합니다. 음식인문학은 자연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해야 실현될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 페이스 대학에서 강의하는 주영하 교수

Q.현재 한국인의 식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저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베이비붐 1세대입니다. 압축성장이 막 시작되었을 때 태어나 탄산음료를 처음 맛보았고,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누구보다 빨리 외워서 식빵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으며, 1972년 무렵에는 점심시간에 흰쌀밥 도시락인지 잡곡밥 도시락인지 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대학원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합니다. 학생들이 보인 반응을 보면 그들에게 나의 1960~70년대 경험은 하나의 역사인 셈입니다. 동년배인 일본의 민속학자 야노 게이이치는 오늘날 일본 사회와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1950~60년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많은 일본인의 마음속에 있는 ‘주부의 맛’, 곧 ‘어머니의 맛’은 패전 이후 일본이 경제 회복을 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식품산업도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현대화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당시 가정의 부엌은 새롭게 등장한 냉장고와 함께 직접 담근 장류와 공장제 조미료와 양조간장 등이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대를 이어 전수된 요리법과 식생활 개선을 위해 정부가 주도한 강습회에서 익힌 요리법 등이 결합한 결과물이 현재 한국인의 식탁 위에 오르는 한식입니다.

Q.지난 백여 년의 시간 동안 한국 식탁에 큰 변화가 생긴 거네요?

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은 여섯 가지 키워드를 관통하면서 구축됐습니다. 1876년부터 대한제국 시기의 ‘개항’, 1910년부터 1937년까지의 ‘일제강점기’, 1938년부터 1953년까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아우르는 ‘전쟁’, 한국전쟁 이후 1970년대까지의 ‘냉전’, 한국인이 경제성장의 결과를 맛보기 시작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압축성장’, 그리고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로 이어집니다. 개항·식민지·전쟁·냉전·압축성장의 다섯 시기는 한반도가 세계 식품체제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이었고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전면화되면서 한국에서 생산된 식품과 음식이 다른 나라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목받으면서 뉴요커 사이에서 ‘채끝 짜파구리’ 먹기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한국이 세계 식품체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 중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취향에 따라 좋은 음식도 있고 나쁜 음식도 있습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판단하는 음식의 취향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역사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Q.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서구식 식탁은 언제 등장했나요?
1905년 9월 19일 저녁 대한제국 황실에서 서양식 연회가 열렸습니다. 미국 제26대 대통령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를 초대한 연회였는데요. 당시 임시 황실찬사로 임명된 독일인 ‘엠마 크뢰벨’이 프랑스식 정찬 코스 요리를 마련했습니다. 메뉴는 아스파라거스 머리 부분을 이용한 스프, 버섯을 곁들인 생선구이, 올리브를 곁들인 비둘기구이, 젤리로 굳힌 푸아그라 파테 등이었습니다. 도대체 1905년 대한제국에서 이런 재료를 어떻게 구했을까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당시 프랑스산 식재료는 통조림으로 제조되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 주방에서는 서울에 있던 서유럽 무역상회를 통해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었고, 이미 서양식 요리도구도 갖추고 있어서 프랑스 요리를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Q. 일본 음식 중에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게 많이 있다면서요?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명란젓입니다. 일본인 중에는 명란젓을 일본 음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명란젓을 일본어로 하면 ‘멘타이코’인데요. 명태의 알이라는 뜻입니다. 명란젓의 다른 이름으로 ‘가라시멘타이코’가 있는데, 여기서 ‘가라시’는 고추를 말합니다. 명란을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를 겉에 바른 젓갈이 ‘가라시멘타이코’입니다. 명란젓의 경우 우리나라가 먼저 먹었지만 이를 포장하고 상품화한 것은 1930년대 일본인입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함경남도 홍원군의 ‘삼호’는 전국에서 명태 어획량이 가장 많은 어항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 어부들이 어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상인들은 명란을 통조림으로 가공하여 일본 열도를 비롯해 타이완과 만주로 수출했는데, 일본인이 운영하는 명란 상점에서는 가공한 고급 명란젓을 비싼 값으로 일본 시장에, 하급품을 조선의 내수 시장에 판매했습니다. 일본의 멘타이코와 가라시멘타이코는 당시 대한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음식이지만 명란을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를 입힌 가라시멘타이코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조선인과 조선의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일본 가고시마현 한국음식판매상 스키씨와 주영하 교수

Q. 세계적으로 K푸드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요?
미국 아리조나주립대학에 교수인 친구가 있습니다. 그 지역에는 교수 몇 명하고 학생 몇 명 빼고 나면 한국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최근 한국 아시아 식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마트가 문을 열어서 가봤더니 인스턴트 라면부터 떡볶이 판매코너까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고 해요. 교수 친구가 장 보러 나온 중남미계 여성에게 왜 K푸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넷플릭스에서 본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 음식이라서 먹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BTS를 비롯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K푸드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거죠. 이렇게 K-컬쳐로 시작된 K푸드 열풍은 전문 유통업체의 확장으로 더 거세졌습니다. 북미에 한국 식품을 중심으로 해서 아시아푸드를 주로 판매하는 마트가 각 지역마다 체인점을 운영 중인데 소비자들이 가까이에서 한식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한식 열풍이 급속도로 퍼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 북미로 간 베트남 사람들이 안정된 경제 기반을 갖고 있고 태국이나 중국 등 이미 한류의 영향을 받았던 아시아계 사람들이 한국 식품을 상당히 선호해요. 대장금 드라마부터 시작해서 한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K푸드를 굉장히 안전하고 맛있고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마트의 주 고객이 되면서 한국인이 없는 동네에도 마트가 입점하게 되고 한국식품 회사 제품이 북미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거죠.
Q. K푸드 열풍이 거센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외에 최초로 수출된 K푸드를 꼽자면 라면과 김치가 있습니다. 과거 베트남 전쟁 때 파월 장병들을 위해 김치 통조림과 라면이 처음으로 수출되었고, 이후 라면 수출은 계속 늘어나 2023년 한국 라면 수출액이 1조 원을 넘겼을 정도로 그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올해 초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옥중에서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가 수감생활 동안 한국 ‘도시락’ 라면을 먹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러시아에서 한국 라면 인기가 증명되기도 했죠. 우리나라의 인스턴트 라면은 1970년대 정부의 분식장려정책으로 인해 국물의 맛에 집중하여 다양한 수프 개발에 열중했습니다. 여기에 국수의 품질도 좋아지자 인스턴트 라면의 발생지인 일본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끄는 중입니다. K푸드 열풍의 첫 번째 힘인 품질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두 번째 힘은 소비자입니다. 과거 한국인에게 식사란 단순히 끼니 해결의 수단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음식에 진심인 소비자들이 늘어나 K푸드가 발전하는 데 힘이 됐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맛입니다. 양념치킨, 비빔라면, 닭갈비 등 한국의 독특한 매운맛이 인기를 끌고 있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K푸드의 열풍은 세계인이 K푸드의 맛을 수용한 결과입니다.

지난 4월 사창오일장 음식조사를 위해 장성을 찾은 주영하 교수

Q. K푸드는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확실히 K푸드의 가능성은 높은 것 같아요. 이전 정부가 주도했던 한식의 세계화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릅니다. 한식 열풍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정통성이나 권위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하면 세계인의 입맛을 더 사로잡을 수 있을지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음식과 민족주의를 연결하는 것은 곤란할 수 있습니다. ‘음식 민족주의‘는 음식을 통해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자칫 지나치게 한식의 고유성과 우수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K푸드의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한식이 고유한 우리 것이 아니라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식재료와 문화가 섞이면서 변화한 것처럼, K푸드도 세계 각국의 문화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한식 문화가 만들어지겠죠. K푸드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왜 세계가 한식을 즐겨 먹게 됐는지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걸 알고 있어야 뉴욕과 파리에서, 도쿄에서 베이징에서 K푸드가 현지 문화로 자리 잡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은 K푸드가 인기를 얻으면서 정부나 지자체들의 사업 방향이 한곳으로 몰린다는 점입니다. K푸드의 성장 효과가 국내에서 로컬푸드를 생산하는 농·어민들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생존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저도 이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해 작년부터 장성군의 로컬푸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우리가 먹는 음식이 학문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거네요?
생물학적인 음식에는 물질이 담겨 있지만 문화적인 음식에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나 음식 문화의 문제들이 어떤 배경과 과정을 통해 형성됐는지 현시점에 서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안목과 이해를 통해 미래 100년 먹거리에 대한 해답까지 찾을 수 있습니다. 음식인문학은 음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위대한 역사와 문화가 아닌 일상적이고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앞으로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음식 문화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Q. 광주일보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한국 사회가 지난 30년 동안 잘 먹고 잘살면서 요리하지 않는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홍콩 사람들도 1960년대부터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니까 아파트에 부엌을 없애버렸어요. 그런데 요리를 해야 인간다워지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은 함께 식사하는 동물입니다. ‘혼밥’하지 마세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인간의 공동체가 무너졌잖아요. 매일 같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할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된 요리법은 공동체가 오랫동안 공유한 자산입니다. 그래야 국내 농민과 어민들을 지킬 수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요리합시다.

주영하
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한국 음식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음식의 역사와 문화가 지닌 세계사적 맥락을 살피는 연구를 하고 있다. 마산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1998년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민족학·사회학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민족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민속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2008년 일본 가고시마대학교 심층문화학과, 2017~2018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아시아학과에서 방문교수로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음식전쟁 문화전쟁>, <차폰 잔폰 짬뽕>,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음식 인문학>, <식탁 위의 한국사>,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조선의 미식가들>, <한식문화사전> 등을 쓰고, <중국 음식 문화사>를 우리말로 옮겼다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시리즈(총 10권)를 감수하고 한국어판 특집글을 썼으며,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를 감수하고 해제했다.
/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사진=주영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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