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에 있어서 언론은 할 말이 없다"
[인터뷰] '소득보장 강화' 주장하는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 교수
"청년들이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게 될 거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
"지인과의 대화보다 언론보도 선호도가 낮은 게 말이 되나"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나온 지 한 달이 흘렀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단일안을 내놨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지만 보험료율 인상 속도 조절 등 갈등 요소가 많아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특히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나왔던 안을 논의 없이 '백지화'시킨 것이라 윤 정부 특유의 일방적인 소통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개혁 국면에서 언론은 연금을 어떻게 다뤘을까.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주장하다 연금 재정계산위 위원직을 사퇴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속적으로 언론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장해왔다. 연금 공론화위에서 시민대표단은 언론보도가 가장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답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남 교수에 물었다. 다음은 지난 4일 성남 분당 인근 카페에서 진행된 일문일답.
“한국은 고령사회 버텨낼 수 없을 것”
- 지난달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나왔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현행 40%(2028년 목표치)에서 42%로 높이는 안이다. 다만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다르게 적용하는 '보험료 인상 차등화'와 연금액을 인구 변화와 경제 상황에 연동하는 '자동조정장치'로 사실상 '더 내고 덜 받는 안'으로 평가된다.
“세대를 갈라치면서 청년층과 장년층이 함부로 반대 못 하게 만들었다. 청년 세대를 배려하는 척 하지만 결국 보험료율을 올리고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소득대체율도 42%보다 떨어지게 한다. 따로 계산을 해보니 90년대생은 자동조정장치가 적용되지 않았을 때 받았을 (국민연금) 급여의 약 79%를 받는 걸로 나온다. 75년생은 80% 넘게 받고 뒤로 갈수록 떨어져 2000년대생은 약 78% 정도로 추정된다. 그렇게 급여를 떨어뜨리니 소득대체율 환산을 해보면 30년 가입한다 해도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4%밖에 안 된다.”
- 자동조정장치로 소득대체율이 떨어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지 않아도 국민연금연구원이 추정한 것에 따르면 노인빈곤율은 2065년에 26.65%, 2085년에도 29.80%로 거의 30%에 육박하는 걸로 추정된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소득대체율이) 더 떨어질텐데 한국은 고령 사회를 버텨낼 수 없을 거다.”
- 이번 개혁안엔 소득강화보다 기금의 재정안정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금 입장에서 보면 수입은 늘고 지출이 줄어드니 기금이 더 오래 유지된다. 그 이면에는 금융자본의 '돈놀이'도 있다. 더 오래 기금을 유지해 이윤 벌이를 할 수 있게 됐다.”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의원실(조국혁신당)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최근 4년간 국내외 민간 자산운용사에 지급한 위탁수수료가 9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익률은 국민연금 자체 운용 수익률보다 낮았다.
“원래 그 자료가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계속 공개가 거부됐다. 수익률은 낮은데 수수료는 (위탁 운용사들이) 엄청 받는다. 금융사들은 국민연금이 너무 커지지 않게 하면서 퇴직연금과 민간연금 시장을 지키는 한편, 기금을 오래 유지해 운용하면서 수수료를 벌어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있다.”
국민연금 보도에 특정 단체·기업·언론 유착이 의심되는 이유
- 광고 비중이 높아지면서 언론의 수익 구조가 기업 쪽에 쏠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연금과 민간 보험 간의 관계가 언론 보도에도 영향을 미칠까.
“경제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성향 신문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중앙일보가 심하다고 느꼈다.”
- 지난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이 중앙일보를 겨냥해 “재벌보험사의 관계를 의심하는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는데 특정 언론사가 언급된 성명은 이례적이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연금연구회란 곳이 있다. 연금행동이 '흑색선전하는 정체불명의 단체'라고 비판 성명을 내기도 한 곳이다. 토론회를 열고 보도자료를 내는 등 여론을 움직이려 하는 곳인데 여기 연금연구회 명단이 중앙일보 리셋코리아 연금분과 위원 명단과 겹친다. 이 연구회에 삼성 출신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이 자금을 지원한다고 기사도 나와 있다. 언론 혹은 기업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최근 사무실에 포스트잇 테러를 당했는데 이것을 추적하다 보니 연금연구회가 또 나왔다.”
- 사진을 보니 학생들의 집단행동 같지는 않다. 연금연구회와는 어떻게 연결되나.
“대자보는 우리 과 강의실 옆에 붙었고 포스트잇은 내 연구실 앞에 붙었다. 학생회장이 보고 깜짝 놀라 알려줬는데 쓴 내용이나 투가 일반 학생들 같지는 않았다. 알아보니 '바른청년연합'이라고 부산에 근거지를 둔 단체가 하나 있었다. 교회와도 관련된 보수단체인데 그 단체가 집단으로 대학에 대자보를 붙였다고 조선일보, 크리스천투데이 등에 기사가 났더라. 더 알아보니 그 바른청년연합이 연금연구회 주최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했다는 걸 확인했다. 연금연구회가 직접 뭘 하진 않았더라도 특정 진영과 관계가 있는 건 맞아 보인다.”
생각의 틀 가두는 언론의 국민연금 프레임
- 이번 연금개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언론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장했다. 이유가 뭔가.
“한국 언론은 국민연금을 민감 보험으로 생각하고 그 틀에 논의를 가둔다. 국민연금을 '낸 만큼 받는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그렇게 하면서 재정을 안정시키려면 내는 것과 받는 비율이 1:1이 돼야 한다. 지금 국민연금도 그렇게 운영되진 않는다.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은 세상에 없다.”
- 세대 간 공정성 측면에서 볼 때는 '낸 만큼 받는다'는 관점이 유효해 보이는데.
“그렇게 하면 노후 소득 보장은 희생되는 거다. 공적 연금이라는 본래 목적이 상실된다. 그렇게 따지면 (노후 보장을) 다 민간 보험에서 하면 되지 국민연금이 왜 있나. 민간 보험의 시각을 가지니 공적 연금이 언제나 불안해 보이는 것이다.”
-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막대한 연기금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기금이 없는 건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기금이 있다 보니 내 돈이 기금으로 들어가고 그 기금의 운용 수익이 불어가지고 돌려 받는, 이 구조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소득 재분배가 있을 수가 없다.”
지인보다 도움 안 됐다는 언론의 연금보도 “진짜 반성해야 한다”
- 연금개혁 국면에서 청년들이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이러한 보도 흐름과 이번 연금개혁안이 연결된다고 보나.
“물론이다. 주로 경제단체 산하 연구원 자료를 토대로 그런 보도가 나왔다. 청년들이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게 될 거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유럽 그 많은 나라들은 어떡하나. 기금이 고갈된 지 70년 넘은 곳도 있는데.”
- 국회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대표단은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의 '소득보장안'을 택했다. 학습과 토론을 거치면서 소득보장안이 선호됐는데 결국 정부는 재정 안정 취지의 연금개혁안을 낸 상황이다. 예상했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깡패들이 있나'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차등 보험료'와 '자동조정장치' 같은 건 공론화위에서 다 탈락했던 안들이다. 언급만 되다가 공론화위에서 채택이 안 되고 탈락한 것들을, 그것만 골라서 핵심이라고 내놓은 건데 이게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독재 방식에 가깝다고 본다.”
- 연금개혁 공론화위 결과보고를 보니 숙의 과정별 도움정도에서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가장 적었던 곳은 '언론보도'였다.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55%에 불과해 '지인과 대화 및 의견교환'(73.1%)보다 언론보도에 대한 선호도가 낮았다.
“기금 고갈되면 다 죽는다는 기사만 보다가 정보 균형이 맞춰지니 언론 보도가 그동안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지인과의 대화보다 언론보도 선호도가 낮은 게 말이 되나. 진짜 반성해야 한다. 연금에 있어서 언론은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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