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이란 히잡 거부.. 이슬람 체제 균열 부르나 [뉴스+]
20대 히잡 미착용 여성 경찰 체포시 사망 계기
젊은 세대 체제 불만·경제난도 원인으로 꼽혀
‘사망자 76명·체포자 1200명 이상’
◆히잡 벗을 자유 외치는 이란 여성들
지난 16일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Morality Police)에 끌려갔다가 갑자기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사인으로 심장마비가 추정된다고 해명했지만 경찰이 진압봉으로 아미니 머리를 때렸다는 보도가 나왔고 유족들 역시 아미니가 평소 심장질환을 앓은 적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시위의 불길은 더욱 커졌다.
외신들은 이란 내 젊은 세대, 특히 여성들이 시위의 중심에 서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 시위대는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 히잡을 불에 태우고 머리를 잘랐다고 미국 뉴욕 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시위대는 ‘여성’, ‘생명’, ‘자유’를 구호로 외쳤고 테헤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리는 거리에서 억압의 상징을 불태우고 있다”고 적기도 했다. 시위대는 또한 여성의 복장을 통제해 온 ‘도덕경찰’ 본부를 폭파하기도 했다.
히잡 미착용으로 인해 촉발된 시위지만 남성들도 히잡을 불태우는 여성에 환호하며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이란의 축구 스타 사르다르 아즈문(바이어 04 레버쿠젠)은 자신의 SNS에 히잡 착용 의무화를 비판하며 “이게 무슬림이라면, 신이시여, 나를 이단자로 만들어달라”고 꼬집었다.
여성들이 시위 전면에 나선 까닭은 이란이 ‘히잡’ 착용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율법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왔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에서 외국인을 포함해 외출 시 여성이 무조건 히잡을 쓰는 곳은 이란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적인 성향이었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히잡 착용 규범을 느슨하게 적용했지만 보수적인 율법 학자 출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여성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해왔다. 라이시 대통령은 강경한 시아파 해석에 근거해 도덕경찰의 권한을 확대해왔으며 지난달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는 새 법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과거와 같은 이슬람식 통제를 거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몇 년 전 테헤란 공항에 가보니 이란 젊은 여성들은 입국하고 나서야 히잡을 찾곤 하더라”며 “이미 사적인 영역에서는 히잡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문화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은 다른 중동국가들보다 여성 교육 수준이 높고 특히 대학교 수준의 이공계 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율은 미국 다음으로 높다”며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에는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고 사회적 지위도 남성들과 동등하지 않았나. 여성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 정부의 통제에 대한 거부감이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시위가 단순히 히잡에 대한 시위가 아니라 권위주의, 이슬람 정부에 대한 퇴진 운동 성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의 부활로 경제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이 시위가 확대된 하나의 원인이라라는 관측이다. 앞서 이란은 2015년 서방 국가들과 맺은 핵 합의로 경제제재 해제되는 듯했으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 합의에서 빠져나가면서 적신호가 켜졌다. 게다가 라이시 대통령 역시 이를 복원하는 데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혁 한국외대 이란어과 겸임교수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란과 서방 국가들이 이란 핵 합의를 협정을 맺고 그러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다 해제해 이란 국민들은 어떤 경제적인 혜택이 있겠다는 엄청난 기대감을 가졌다”며 “그러나 다시 경제제재가 부활하면서 경제난이 더욱 심해진 상황에서 히잡이라는 문화적 욕구가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 진화돼 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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