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가 '전문가'로 위장해 방송 대본까지 썼다

금준경 기자 2022. 11. 3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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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단순협찬 넘어선 보험프로, 제작 전반에 개입
채널A 등 16개 방송서 10만 넘는 개인정보 유용
2주 모니터 조사가 전부, 늑장 대응에 일부 유용 규모도 파악 못해
간판만 바꿔 런칭, 불법 피하는 교묘한 방송 못 잡아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 채널A '황금나침반' 화면 갈무리

A씨는 불필요한 보험금을 절약하는 '보험 리모델링'을 해주는 방송을 보면서 자막으로 뜬 '안내전화'에 눈길이 갔다. 방송사에서 무료로 상담을 해준다는 말에 솔깃해 전화를 걸었다. 안내원은 프로그램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상담을 마칠 때까지 그는 '방송사'에 상담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특정 보험대리점업체 소속의 설계사가 연락을 해왔다. 거절했으나 주기적으로 이 업체에서 전화를 걸어와 '보험 영업'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보험대리점업체가 방송사에 협찬금을 건네고 만든 '보험 판촉을 위한 방송'이었다.

[관련기사 : EBS '머니톡' 보고 상담했더니 개인정보 팔아 8만원]

2020년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 EBS '머니톡'의 기만적 보험영업 방송문제가 논란이 돼 개인정보보호위윈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각각 개인정보보호법, 방송법 등 위반으로 방송사 및 보험대리점 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드러난 규모는 '빙산의 일각'이다.

보험방송 협찬에 '대본'까지 쓴 보험사

보험 대리점업체들은 '협찬' 계약을 맺고 보험방송을 내보냈다.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5조는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노골적 광고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돼왔다.

보험방송은 '광고성 협찬'이 가진 문제의 범위를 넘어서 협찬주가 방송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보험대리점 업체는 자사 소속 보험설계사들을 '재무설계 전문가'로 이름 붙여 방송에 내보낸다. 협찬주가 패널을 직접 선정해 방송 구성에 관여하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한 보험대리점 업체 내부 대화방을 보면 방송에 '전문가'로 출연하는 보험설계사들에게 대본 내용에 관해 지시했다. 대본은 1차적으로 보험설계사들이 작성해 보험대리점업체가 검수하는 방식이다.

▲ 보험업체 관리자 공지 내용(카카오톡 대화방 이미지 재가공 자료)

이 업체의 관리자는 보험설계사들에게 “최근 대본을 보면 점점 내용들이 이론으로 작성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그렇다보면 최종 리모델링할 때만 콜이 들어오고 있어 앞부분서 아무리 상담 신청 멘트를 해도 니즈를 끌어가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본론에서는 이론보다 실제 사례에 집중하여 리모델링을 하고 최종적으로 변화된 비용 혹은 보장 등을 얘기해서 중간중간 상담 신청을 끌어가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할 것 같다”며 우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대본을 공유했다.

업체 관리자는 대본 멘트를 작성할 때 “상담이라는 단어도 넣어서 작성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모범 예시로 '(문자메시지에) 상담이라고 보내주시면 전문가님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는 문구를 제시했다.

'재무설계' 혹은 '보험 리모델링'으로 포장되지만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시되는 건 '정보 전달'이 아닌 '상담전화 유도'에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패널을 '전문가'로 알고 방송사가 상담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특정 업체의 판촉에 이용당하게 된다.

이렇게 방송을 보고 상담 전화나 문자를 하게 되면 보험업체로 연결된다. 방송사 연락처지만 착신이 전환돼 보험대리점업체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상담을 받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방송사가 아닌 보험사가 해당 페이지를 관리하는 식이다.

▲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렇게 기만적으로 수집된 개인정보는 보험대리점업체가 소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개인정보는 보험설계사들에게 건당 10만 원 안팎으로 판매된다. '개인정보'로 장사를 하는 셈이다. 이를 업계는 '방송DB(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인 영업을 벗어나기 힘든 보험 업계에서 방송을 통해 관심이 있는 이들을 자발적으로 모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DB는 가치가 있어 고가에 거래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머니톡'은 빙산의 일각, 채널A서 더 많은 시청자 정보 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현재까지 두 차례에 걸쳐 관련 조사에 나섰다. 1차는 가장 큰 논란이 된 EBS 머니톡에 대한 단독조사로 시청자의 정보를 부당하게 유용해선 안 된다는 방송법 조항 위반으로 지난 2월 과징금을 결정했다. 11월 들어선 모니터 결과 적발된 16개 방송사 25개 프로그램에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제출 받은 조사 및 제재 자료를 미디어오늘이 입수해 분석한 결과 2차 조사 결과 개인정보 유용 건수는 11만304건에 달했다. 채널A '황금나침반'이 4만218건, SBS비즈 '마스터플랜 100세'가 3만968건으로 가장 크게 논란이 된 EBS '머니톡'(3만381건)보다 많았다. 이어 OBS '리치라이프'(1만1905건), KNN '가정경제전담 수사본부'(4841건), TBC '행복설계 알짜배기'(3647건) 순으로 나타났다. 지상파와 유료방송, 서울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여러 방송에서 기만적 정보 수집이 이뤄지고 있었다.

▲ 보험방송 시청자 정보 유용(보험업체에 제공) 건수. 개인정보 유용1000건 이상 방송만 추렸다. 자료=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이다. 방통위는 2021년 2주동안 모니터링으로 조사했기에 이 기간에 방영되지 않은 프로그램들은 빠졌다. 방통위는 라디오를 대상으로 적발한 내역도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TV방송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는데 실제론 라디오에서 더 활발하게 방송이 이뤄지고 있다”며 “방통위가 조사에 나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프로그램들이 런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늑장'조사로 개인정보 유용 건수도 파악 못해
합법 테두리에서 간판만 바꿔 유사방송 내보내

늑장 조사를 벌여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문제도 있다. 방통위가 정필모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결과 방통위는 KNN의 '머니톡'의 경우 유용된 개인정보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통위는 개인정보 보유 기간(1년)이 지나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EBS '머니톡'과 같은 내용을 KNN에도 교차 편성한 뒤 안내번호만 바꾸는 방송에 대한 지적은 2020년부터 지적됐다. 그러나 방통위는 2021년이 돼서야 조사에 나서면서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됐다. 이와 관련 정필모 의원은 “늑장대응으로 일부 방송사의 경우 개인정보 보유기간 경과로 자료가 폐기돼 피해건수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며 “방통위는 시청자 개인정보 유용과 같이 중대한 사안이 걸린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대응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EBS '머니톡'(위)과 KNN '머니톡' 방송 갈무리. 같은 방송인데 채널과 안내 전화번호만 바꿔 방영했다.

개인정보위도 '늑장 조사'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개인정보위는 보험방송 전반의 문제 지적에도 EBS '머니톡'만 조사했다. 지난 2월 양청삼 개인정보위 조사조정국장은 “방통위에서 조만간 관련 조사를 마무리한다고 들었다”며 “추가적으로 해소가 되지 않는다면 관심을 갖고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대책과 관련 방통위는 “내년 상반기 중 지상파, 종편 및 유료방송 채널대상 모니터링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모니터링'과 이에 따른 적발만으로는 보험방송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EBS는 키움에셋플래너와 26억 원의 협찬 계약을 체결하고 '머니톡'을 내보냈다. 방통위가 EBS에 물린 과징금은 2500만 원에 그쳤다. 개인정보위는 EBS와 키움에셋플래너에 2억443만 원의 과징금과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법을 어기더라도 얻는 이익이 큰 상황이다. 방통위가 11월 16개 방송사에 내린 과징금은 총 1억 310만원에 그쳤다.

현재도 기만적 보험방송은 채널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한 보험대리점 업체 내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지상파라디오, 보도전문채널, 종편, 지역채널 등 올해에만 7개 방송 프로그램에 협찬을 하고 있었다. 이중 다수는 제재를 전후해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간판을 바꿔단 프로그램들이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DB를 받는 형태로 보험업체로 바로 연결해줬다면 지금은 방송사에서 링크만 고객에게 문자로 보내고 그 다음 고객이 방송사를 거치지 않고 접수하게끔 하고 있다. 법률자문 결과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입수 및 전달 방식만 달라졌을 뿐 상담 유도를 목표로 '대본'을 쓰고 시청자 개인정보 거래를 하는 본질적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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