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끝까지 남는다, 아군은 신속히 퇴각하라!”

김태훈 2024. 6. 2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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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74주년을 하루 앞두고 미국 국방부가 당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미군 참전용사 에모리 베넷(1929∼1951) 일병을 기려 눈길을 끈다.

베넷에겐 사후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 추서됐는데 이는 미국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중공군이 쏜 박격포에 맞아 전사한 베넷의 시신이 수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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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6·25 참전용사 베넷 일병 73주기
중공군과의 전투 도중 동료들 구하고
본인은 21세 젊은 나이로 장렬히 산화
1952년 미군 최고 영예 ‘명예훈장’ 추서

6·25전쟁 발발 74주년을 하루 앞두고 미국 국방부가 당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미군 참전용사 에모리 베넷(1929∼1951) 일병을 기려 눈길을 끈다. 베넷에겐 사후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 추서됐는데 이는 미국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24일(현지시간) 미 국방부는 베넷의 짧은 생애를 소개하는 장문의 글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그에 따르면 베넷은 대공황이 일어난 1929년 12월 플로리다주(州)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세 형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으며 전후 무사히 귀환했다.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명예훈장 수훈자인 에모리 베넷의 고향에 세워진 동상. 고인은 1951년 6월24일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베넷의 부모는 수산물 가게를 운영했다. 그 때문에 베넷은 어린 시절 강에서 손님들에게 팔 물고기를 잡곤 했다. 베넷과 그 가족은 오리 사냥도 즐겼는데 베넷은 사격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고 한다.

1948년 고교를 졸업한 베넷은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데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징병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자원입대를 하자고 결심한 베넷은 6·25전쟁이 일어나고 정확히 1개월이 지난 그해 7월25일 육군 훈련소에 입소했다.

애초 베넷은 공병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한국의 전황이 심각해지고 더 많은 미군 전투병력을 더욱 신속히 한국으로 보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베넷은 보병으로 전환됐다. 기본군사훈련을 마친 베넷은 이듬해인 1951년 2월 한국으로 파병돼 제3보병사단 15보병연대 B중대에 배치됐다.

한국 도착 후 3개월가량 지난 1951년 6월23일 베넷의 중대는 중공군과의 전투 끝에 강원 철원 서방산 부근 고지를 점령했다. 당시는 해당 지역을 차지하려는 미군 등 유엔군과 중공군 간의 전투가 치열했던 때다. 아니나다를까, 이튿날인 6월24일 새벽 중공군이 빼앗긴 고지를 되찾고자 반격을 시도했다. 미군은 1개 중대 병력 약 200명 규모에 불과한 반면 중공군은 2개 대대 병력 약 1500명에 달했다.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명예훈장 수훈자인 에모리 베넷(1929∼1951) 일병. 미 국방부 홈페이지
미군이 몰려오는 중공군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퍼부었으나 적은 인해전술에 입각해 희생자가 얼마나 발생하든 개의치 않고 진격했다. 중과부적이라고 판단한 미군 지휘부눈 B중대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다만 부대원들의 안전한 퇴각을 위해선 누군가 진지에 남아 적을 향해 계속 엄호사격을 가해야 했다. 이 엄중한 임무를 맡겠다고 자원한 이가 바로 베넷이었다. 그는 앞선 전투에서 이미 크게 다쳤으나 개의치 않고 적을 향해 끝까지 방아쇠를 겨눴다.

얼마 뒤 해당 지역은 미군에 의해 재점령됐다. 중공군이 쏜 박격포에 맞아 전사한 베넷의 시신이 수습됐다. 그의 주변에는 총상을 입고 쓰러져 죽은 적군 사체가 50구 넘게 쌓여 있었다.

베넷의 유해는 1951년 11월 미국으로 운구돼 고향의 묘지에 묻혔다. 미 행정부는 베넷이 스스로를 희생해 수많은 동료 장병들을 살렸다는 결론을 내리고 고인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1952년 1월 국방부 주관으로 열린 훈장 수여식에서 고인을 대신해 아버지 스털링 베넷이 훈장을 받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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