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의 공포대상 1위인데…" 집주인 얼굴까지 외운다는 '한국 동물'

처마 밑에서 사라진 제비, 다시 사람 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모여있는 제비의 모습. / Evannovostro-shutterstock.com

여름이면 창밖을 스쳐 날던 새가 있다. 가늘고 긴 꼬리, 빠른 속도, 들쑥날쑥한 비행. 전깃줄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모습도 익숙하다. 바로 제비다. 한때 봄이면 집집마다 찾아오던 새였지만, 지금은 도심은 물론 농촌에서도 제비를 찾기 어려워졌다.

우체국 마크, 전래동화, 속담 속에서 꾸준히 등장했던 익숙한 새. 이제는 그 실물을 보기 힘든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작은 새의 거대한 이동, 제비는 왜 떠났다가 돌아올까

비행하는 제비의 모습 / Stanziano Mario-shutterstock.com

제비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는 대표적인 여름철새다. 추위가 시작되면 대만이나 동남아시아처럼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이듬해 봄 다시 돌아온다. 음력 삼짇날 무렵이면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절성 이동 패턴이 뚜렷하다.

이 이동 거리만 약 4000km. 한반도에서 출발해 남쪽 열대 지역까지, 성체 제비는 몇 주에 걸쳐 장거리 비행을 감행한다. 이 대장정을 위해 제비는 가을이 되면 체중을 30% 이상 불려놓는다. 작고 가벼운 새가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몸길이는 약 18cm 정도이며, 광택이 도는 검푸른 윗면과 흰빛이 도는 아랫면, 붉은 갈색의 이마와 멱을 가지고 있다. 꼬리는 V자형으로 갈라져 있는데, 수컷일수록 꼬리깃이 길고 날렵하다. 이 꼬리의 길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 짝짓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암컷 제비는 꼬리깃이 긴 수컷일수록 건강하고 우수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판단한다.

자동차보다 빠르고 곤충보다 정확하다

제비는 하늘을 나는 곤충을 공중에서 바로 낚아채는 특이한 먹이 습성을 갖고 있다. 파리, 모기, 하루살이, 벌, 딱정벌레, 심지어 애벌레까지도 비행 중 사냥한다. 평균 시속은 50km, 순간 최고 속도는 250km까지 기록된다. 일부 자동차보다 빠르다.

다른 새들은 땅에 있는 곤충이나 벽에 붙은 벌레를 잡지만, 제비는 날아다니는 곤충만 노린다. 더 놀라운 건 이 빠른 속도를 제어하는 능력이다.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고 급강하했다가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이때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꼬리깃이다. 꼬리깃은 제동, 선회, 가속까지 모두 조절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공기 중 습도가 높아지며 곤충 날개가 젖어 무거워지고, 곤충들이 낮게 난다. 제비도 따라서 낮게 난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속담은 이런 생태적 현상에서 비롯됐다. 수백 년 전부터 관찰된 자연의 움직임이 언어로 남아 있는 셈이다.

사람 얼굴까지 기억하는 똑똑한 제비

제비 두 마리가 철사 위에 앉아 있다. / Vitalii Stock-shutterstock.com

제비는 짝을 맺은 뒤 번식을 위해 둥지를 짓는다. 주로 처마 밑, 건물 다리 틈, 오래된 인가 등 사람이 사는 공간 근처다. 진흙과 지푸라기, 침, 깃털 등을 이용해 반원형의 집을 만든다. 단단하게 지어 매년 보수해서 다시 사용하기도 한다.

둥지 짓는 위치를 고를 때는 주변 환경뿐 아니라 사람의 존재도 고려한다. 실제로 제비는 사람 얼굴, 인상, 활동량까지 관찰한다고 전해진다. 소란스럽거나 험악한 인상의 사람이 사는 집은 피해간다는 얘기도 있다. 흥부 집에 둥지를 틀고 놀부 집은 피했다는 동화의 설정도 여기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알은 3~7개 정도 낳고, 부화와 육아 기간까지 약 한 달 반이 걸린다. 어미 제비는 입 안이 붉은 새끼부터 먼저 먹이를 준다. 붉은 입은 건강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제한된 자원을 우선적으로 분배하는 전략이다. 반대로 약한 새끼는 계속 뒤로 밀려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제비가 항상 냉정하기만 한 건 아니다. 평소에는 좀처럼 땅에 내려오지 않지만, 짝이 사고로 죽으면 시신 옆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기도 한다. 사람처럼 슬픔의 행동을 보이는 셈이다.

전래동화에서 우체국 마크까지, 추억 속 제비

우리 민속과 설화 속에서도 제비는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흥부전’이다. 다친 제비 다리를 치료한 흥부가 제비로부터 박씨를 받고 복을 받는 이야기다. 반대로 놀부는 제비를 일부러 다치게 해 욕심을 부리다 벌을 받는다.

이야기에서 제비는 은혜를 갚는 존재, 하늘의 심부름꾼, 신의 뜻을 전하는 중개자로 해석된다. 실제로 예부터 제비가 처마 안쪽 깊이 둥지를 틀면 그해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새끼를 많이 낳으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겼다.

우체국 로고도 제비에서 비롯됐다. 귀소본능과 방향 감각, 빠른 속도 등은 우편의 특성과 닮아 있다. 그래서 우체국은 일찍부터 제비를 마스코트로 삼았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로고에도 제비의 날개가 녹아 있다.

복을 상징하던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

두 마리의 제비가 케이블에 앉아 있다. / Dan Cristian S-shutterstock.com

지금은 그런 제비를 보기 힘들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처마 구조가 사라졌다. 건물 외벽은 진흙이 붙지 않는 콘크리트나 유리로 바뀌었다. 제비가 둥지를 틀 공간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먹이다. 농약 사용 증가로 인해 곤충이 급격히 줄었다. 파리, 벌, 잠자리 같은 주요 먹이원이 사라진 환경에선 제비가 버티기 힘들다. 게다가 기후 변화로 인한 봄철 한파, 갑작스러운 폭우, 이상 고온은 번식 자체를 방해한다.

사람과 가까웠던 새가 떠나간다는 건 단지 생태계 하나가 무너지는 게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환경이 더는 생명을 품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제비가 떠난 동네엔 벌레만 넘쳐나고, 바람만 쐰다.

제비가 돌아온 마을, 괴산 목도시장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시장. 어미 제비가 먹이를 물고 날아들자 새끼 제비들이 일제히 입을 벌린다. / 괴산군 제공

그런 가운데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시장에는 여전히 제비가 돌아오고 있다. 괴산군은 4일 목도시장에 제비 둥지가 곳곳에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목도시장 상가 곳곳에는 어김없이 제비 둥지가 생겼고, 새끼들이 처마 밑에서 입을 벌리고 어미를 기다리는 모습이 상인과 방문객의 눈길을 끌었다.

어미는 쉴 틈 없이 날아다니며 먹이를 물어오고, 새끼는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응답한다. 시장 상인들은 제비의 귀환을 반긴다. 한 상인은 “해마다 제비가 돌아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며 “제비가 있는 시장은 아직 따뜻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목도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시장이다. '목도(木道)'라는 이름은 과거 나무와 물자가 오가던 교역 중심지에서 유래했다. 유기농업과 생태 중심 지역으로 알려진 괴산군의 환경이 제비가 돌아오는 배경이 됐다. 청정한 환경과 인간 활동의 조화를 유지한 덕분에 제비도 떠나지 않았다.

제비는 단순한 철새가 아니다.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야생동물이었다. 같은 처마 아래 사는 존재였다. 그런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메우는 건 적막과 침묵뿐이다. 반대로 제비가 돌아온 마을은 지금도 숨 쉬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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