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에 충격의 콜드패… 눈 녹듯 사라진 8강 환호, 그리고 떠안은 ‘레벨업’ 과제

日·대만 평균 구속 150㎞대 뜰때
한국 146.3㎞…20개국 중 18위
마운드 더딘 성장에 타자도 정체
당장 9월 AG ‘류현진 후임’ 급선무
‘도쿄의 기적’도 이제는 가슴에 묻을 때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확인한 가능성과 과제를 냉정히 살펴야 한국 야구의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14일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8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0-10 7회 콜드게임으로 완패했다. 공수 모두 완전하게 압도당했다. 손 쓸 도리 없이 대패했다. 조별 라운드 네 경기에서 7홈런 28점을 뽑았던 타선이 단 2안타에 그쳤다. 투수진 역시 슈퍼스타들이 곳곳에 포진한 상대 타선을 이겨내지 못했다. 2~3회 2이닝 동안에만 7실점을 했다. 4~6회를 무실점으로 막았다지만, 이미 크게 앞선 도미니카공화국 타자들의 집중력이 경기 초반만큼은 아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은 현시점 세계 최강을 다투는 팀이다. 한국전 승리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지만, 실력은 물론 경기에 임하는 태도까지 빈틈 없었다. 전력 차이가 큰 한국을 상대로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후안 소토 등 천문학적 규모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홈으로 슬라이딩 했다. 게레로 주니어는 송구가 옆으로 빠지는 걸 보고 바로 파울라인 안으로 경로를 바꿔 뛰어들었다. 소토는 온몸을 비틀어 포수 태그를 피해 홈 플레이트를 짚었다. 1회 류현진에게 삼자범퇴를 당하자 2회부터 바로 ‘콘택트 중심’으로 타석에서 접근법을 바꿀 만큼 전심전력을 다했다. 초호화 라인업이었지만 진지하지 못했던 2006년 미국, 1경기 실책만 5개를 기록하며 자멸했던 2009년 4강전의 베네수엘라와 비교해 이날의 도미니카공화국은 차원이 다른 팀이었다.
그렇다고 콜드게임 패배를 ‘당연한 결과’로 넘길 수는 없다. 한국은 향후 도미니카공화국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에 조금이라도 다가서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WBC와 같은 국제대회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국가대표로 마지막 등판을 마친 류현진은 “후배들이 이곳까지 와서 메이저리그 톱클래스 선수들과 맞붙어 본 것 만으로 큰 경험, 공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조별 라운드 네 경기 역시 조금 더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호주전 극한의 ‘경우의 수’를 뚫고 8강에 진출한 것은 매우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상상하기 어려울 중압감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뤄냈다는 경험 자체가 이번 대표팀 선수들에게 향후 성장의 자양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 대만에 연달아 패했지만 두 경기도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네 경기 결과가 2승2패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팀이 이번 WBC에서 꺾은 상대는 자국 리그를 세미 프로라고 부르기도 쉽지 않은 호주, 사실상 아마추어팀인 체코였다.
한국 투수진의 이번 대회 직구 평균 시속은 146.3㎞로 20개 참가국 중 18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느린 팀은 호주와 체코뿐이다. 전체 1위 도미니카공화국(154.8㎞)와 비교하면 한국 투수들의 공은 8㎞ 넘게 느렸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5위·152.1㎞), 대만(7위·150.5㎞)과 비교해도 차이가 컸다.
구속이 받쳐주지 않는 공의 한계가 8강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 역력히 드러났다. 한국 투수들은 최대한 존 바깥으로 공을 빼면서 범타를 유도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상대 타자들은 공 1~2개 만큼 빠지는 공도 여유있게 받아쳐 수비의 빈 공간을 뚫어냈다.
빠르지 않은 구속은 벤치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다. 대표팀 한 코치는 8강전을 앞두고 “할 수 있는 한 상대 데이터 분석은 다 했고, 비교적 약한 코스도 확인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분석을 해도 우리 투수들의 구속을 끌어 올릴 수는 없다”고 했다. 구속으로 압도를 하려면 최소 150㎞ 중반대 공을 던져야 했다. 그 수준의 공을 던진 투수는 이날 곽빈이 유일했다. 곽빈조차 연속 볼넷으로 무너졌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도 경기 후 “대한민국 투수들의 구속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며 “학생 야구부터 차근차근 잘 만들어져서 보다 더 경쟁력 있는 대표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했다.
구속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구속조차 갖춰지지 않으면 국제대회 강팀을 상대로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리그의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지표 또한 구속이다.
리그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타자들 역시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조별 라운드 한국보다 평균 구속이 느렸던 체코, 호주 투수들을 상대로 대량 득점을 올린 대표팀 타선이 8강 도미니카공화국 투수들을 상대로는 무력했다.
‘레벨업’ 과제 떠안은 한국야구
대표팀 타자들은 도미니카공화국 선발 크리스토페르 산체스의 주 무기 싱커를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한가운데 공이 들어오는데 몸을 크게 뒤로 빼는 장면이 여러차례 포착됐다. 제 2~3구종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에는 인플레이 타구를 단 1개도 만들지 못했다. 문자 그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당했다.
류 감독은 “(KBO리그 각 구단에) 국내 선발 자원이 3~4명 뿐”이라며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수적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기회를 갖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래 리그에서는 개막 2연전 10경기 선발 대부분을 외국인 투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믿고 기용할 수 있는 국내 선발 2명만 확실하게 갖춰도 선발 강팀으로 분류되는 현실이다. 올시즌부터 아시아쿼터 제도가 도입되면서 국내 선발들의 설 자리는 더 줄었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경기 운영이 안 되는 국내 투수를 무작정 선발 마운드에 올리기도 어렵다. 더 체계적인 육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구속 향상을 비롯해 마운드 전반의 강화가 중장기 과제라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기존 자원 중 어떻게든 대표팀 차기 에이스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 결정적인 순간 벤치가 꺼내든 ‘가장 믿을만한 투수’는 내년이면 40세가 되는 류현진이었다. 조별 라운드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대만전, 그리고 8강 도미니카공화국전에 모두 선발로 등판했다.
류현진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부상으로 이번 대회에 빠진 문동주, 안우진, 원태인을 포함해 누군가는 당장 다음 국제대회에서 확실한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한다.
국제대회는 앞으로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9월 나고야·아이치 아시안게임, 내년 11월 올림픽 직행 티켓 1장이 걸린 프리미어12가 열린다. 프리미어12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LA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최종 예선까지 뚫어내야 한다.
마이애미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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