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Futures] 두산 베어스 이병헌
작은 날갯짓에 꿈을 담아
프로의 꿈을 이뤘지만, 동기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데뷔 첫해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팀의 마지막 1차 지명자로서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을 텐데, 등장곡의 가사처럼 처음부터 모든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105번에서 62번을 잠시 거쳤다 금세 다시 돌아온 고교 시절 등번호 29번. 익숙한 번호와 함께 그의 재능도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안경 너머 빛나는 눈에는 결단력이 서리고, 힘찬 키킹에선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항상 팬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면서도 동시에 벅찬 기대감을 선물하는 그다. 마운드에 올라설 때마다 들려오는 커다란 함성과 박수 소리에 힘입어, 이젠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해 물러섰던 한 걸음을 다시 내디딜 시간이다.
Photographer 나인비 Editor 이정희 Location 잠실야구장
#야구에 진심
거의 3년 만이네요! 오랜만에 섭외 요청이 왔을 때 어땠나요? (6월 7일 인터뷰)
고등학교 때가 마지막 인터뷰여서 긴장도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도 됐어요. 지금은 프로 팀에 소속돼 있다 보니 그때랑은 다른 느낌이에요.
지명받은 직후 인터뷰 때는 두산 베어스가 단단하고 협동이 잘 되는 팀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 팀이라고 생각하나요?
여전히 단단하고 협동이 잘 되는 팀이죠. 어딘가 한 부분이 안 맞으면 다른 부분에서 서로 채워주려고 해서 마음 편하고 책임감 있게 경기에 임할 수 있게 해주는 팀이기도 합니다.
올 시즌 서울고 시절의 강속구를 되찾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스프링 캠프 기간에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요?
특별히 다른 부분을 운동했다거나 따로 준비했던 건 없어요. 수술하고 재활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구속이 올랐습니다.
지난 5월 29일 KT 위즈전 때 마운드에서 헛구역질하는 모습이 잡혀서 팬들이 걱정했어요.
연습할 때부터 위경련이 있었는데, 그냥 내려와서 아프다고 해도 될 걸 마운드 위에서 그러는 바람에… (머쓱) 시합 끝나고 몸이 괜찮아지고 보니까 부끄럽더라고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놀림거리가 되고 있어요. 하하.
시즌 초 메이저리그 서울 시리즈 스페셜 게임 당시 팀 코리아 명단에도 뽑혔어요. 마운드에 서지는 못해서 아무래도 아쉬웠을 텐데 어땠나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팀 코리아에 뽑힌 것도 영광이었는데, 시합도 하고, 한 공간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보니 신기했어요. 완전히 다른 리그의 선수들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졌고요. (누가 제일 신기했나요?)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요. 오타니 선수는 일본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그런 느낌이었고, 가까이 서 있을 때도 멀리서 지켜봤을 때도 너무 신기하고 멋있었어요.
팀 코리아 비하인드 브이로그에서는 밥 먹는 내내 야구 얘기만 하던데, 평소에도 야구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인가요?
그때 (곽)빈이 형이랑 (김)택연이가 같이 있었는데 둘 다 야구에 진심이다 보니까 야구 얘기만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평소에 먼저 나서진 않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계속 야구 관련한 이야기만 하는 편인데 그런 세 명이 모여 있으니까 더 야구 얘기만 하게 됐습니다.
고글이 트레이드 마크가 됐어요. 이병헌에게 고글 패션이란?
패션이라기보다는, 제가 라섹 수술을 해서 시력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야구 할 때는 쓰는 게 편해서 쓰고 경기에 나가고 있습니다. 도수가 없는 고글이긴 한데, 안 쓰고 마운드에 올라가면 너무 휑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고글을 쓰면 고글 렌즈 안에서만 보이는 시야가 있거든요. 그 시야에 집중하는 느낌이 있어서 경기 중엔 꼭 착용하는 편입니다. (올 시즌 프로필 찍을 때는 왜 벗고 찍었어요?) 사진 찍을 때는 조명이 반사되니까 안 쓰고 찍는 게 훨씬 나았어요. 계속 썼다 벗었다 하는 것도 번거로우니까요.
그럼, 고글을 고를 때 특별히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요?
고등학교 때와 거의 같은 것을 쓰고 있어요. 옆쪽 테가 얇은 제품인데, 그래야 썼을 때 흔들리지 않거든요. 모자랑 같이 쓰다 보니 눌려도 안 뜨게 하려면 그런 종류의 고글을 써야 해요.
#발전한 모습으로
3월 26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데뷔 첫 승을 거뒀습니다. 어땠나요?
데뷔 첫 승을 해서 좋았는데 사실 처음에는 승계주자 실점을 하기도 했고, 기쁘다기보단 살짝 찝찝한 마음으로 첫 승을 했던 기억이 나요. 아쉬운 마음이 컸죠.
불펜 투수지만 벌써 5승을 거뒀어요. 올 시즌에 가장 세우고 싶은 기록은 뭔가요?
저는 승보다 홀드를 하고 싶어요. 홀드를 할 수 있는 상황에 나가서 리드를 지키고, 최대한 많은 홀드를 하는 게 올 시즌의 목표입니다. 그밖에는 올해를 무탈하게 보내면서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약점으로 꼽히던 제구가 잡히면서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는데 올 시즌 중간 점수를 준다면?
제구력이 고등학교 때부터 저한테는 영원한 숙제거든요. 지금도 조금 좋아졌을 뿐이지,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치만큼 좋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50점 정도 주겠습니다. (너무 짠 거 아니에요?) 원래 본인한테는 좀 야박해도 돼요. 주변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얘기 해주시는데 저 스스로 만족이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아쉽죠. 남은 50점은 시즌이 끝난 후에 줄지 안 줄지 생각해 볼게요. 근데 50점보다 떨어질 수도 있어요.
고교 시절 때부터 연마하던 체인지업이 당시에는 부족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완성됐나요?
아직 100%까지는 아니고, 한 60% 정도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변화구 구종 하나를 익히는 데 긴 시간이 걸리니까요. 체인지업을 주로 (박)치국이 형한테 배웠는데, 치국이 형도 체인지업을 구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되든 안 되든 계속 쓰려고 하고 있고, 구사율이 높아지다 보니 좋은 결과도 나오고 있어요. 그래도 몇 년은 계속 써봐야 제가 컨트롤하기도 편해지겠죠?
박치국 선배에게 체인지업 코칭을 받은 건 함께 재활하면서였다고요.
네. 제가 모르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항상 치국이 형한테 가서 물어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도 얻었거든요. 제가 계속 체인지업을 던질 때 불안하다고 하니까 변화구지만 직구보다 더 세게 던지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세게 던져보니 헛스윙도 나오고 범타도 나오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됐죠.
지금까지의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기는 언제인가요?
올 시즌 4월 7일에 사직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했던 경기요. 1사 1, 3루에 등판해서 삼진 두 개를 잡고 내려온 경기였는데 위기 상황을 잘 넘긴 경기라 기억에 남아요. 그때는 제가 의도한 대로 공이 던져졌고, 결과도 제가 생각한 대로 나왔거든요.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경기는 등판할 때부터 느낌이 오기도 하나요?
등판 전보다는 시합 치르는 중에 그런 느낌을 받아요.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오면 ‘어떻게 던져야겠다’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공이 들어가요.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듯이 공략법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첫해를 재활로 보내는 동안 1군에서 활약하는 동기들도 있었어요. 조급해지진 않았나요?
처음에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죠. (문)동주나 (최)지민이, (김)도영이, (윤)동희도 1군에서 잘하고 있고, (박)영현이도 그렇고요. 다 잘하고 있으니까 저만 뒤처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작년에는 야구도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친구들은 그만큼 잘하고 있으니 조급한 기분이 들었는데, 사실 올해도 아직 뒤처지고 있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무리하지 않고 제 페이스대로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야구가 안 될 때나 마음이 조급해질 때는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편인가요?
저는 조급해지면 조급해지는 대로 해요. 뭔가를 바꾸려고 하지 않죠. 숨 한 번 쉬고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급하다고 억지로 천천히 하려고 하면 오히려 흐름이 깨지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든 제가 경기를 운영할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요.
올 시즌 활약하면서 선후배나 코치들 반응도 남달랐을 텐데 가장 인상 깊은 말을 전한 사람은 누군가요?
모두가 “왜 이렇게 달라졌냐” 하더라고요? 저도 신기해요. 야구는 작년이랑 똑같이 하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가장 많이 응원해 주신 분은 김지용 코치님을 꼽고 싶어요. 작년에 제가 2군에 있을 때부터 플레잉 코치님으로 계셨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매번 말해주셨거든요. “너는 좋은 공을 가지고 있는데 왜 1군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마음먹은 대로 보여주지 못하냐, 안타깝다”라고요. 올해는 코치님도 1군 불펜 투수 코치로 오시면서 얘기도 많이 하고, 잘할 땐 칭찬도 해주십니다. 제가 제 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 땐 여기서 얼마나 더 잘하려고 하냐고 말씀해 주시면서 항상 힘을 주시죠.
#영건즈와 함께
00년대생 영건 투수들이 함께 활약하고 있습니다. 최지강, 최준호, 김택연과는 평소에 어떤 얘기를 나누나요?
지강이 형, 택연이랑 있을 때는 거의 택연이를 놀리기 바빠서… 일단 택연이를 놀리고 삐친 택연이를 풀어주곤 해요. 근데 그러면서도 야구를 다 너무 좋아해서 야구 얘기도 무척 많이 하고, 저도 모르는 게 있으면 택연이나 준호에게 자주 물어보는 편이에요. 시합 끝나면 밥도 같이 먹고요.
김택연에게 아이스박스를 넘겼는데, 김택연은 어떤 후배인가요?
택연이는 놀리면 카메라에 비치는 모습과 정말 똑같아요. 말 그대로 ‘택쪽이’죠. 삐치면 저희끼리 “야, 여기 투수 한 명 어디 갔냐~” 막 이래요. 매일 삐치고 또 풀어주는 게 일상이에요. 본인도 스스로 택쪽이라고 인정하고요. 이 별명을 아마 (김)동주 형이 지었을 텐데 진짜 잘 지은 것 같지 않나요? 근데 평소에 하는 행동이 착하고, 말하면 고분고분 잘 듣는 좋은 후배예요. 저도 후배를 잘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택연이랑 준호가 저랑 오래 같이 있었다 보니 특별히 정이 가죠.
잠깐 밸런스 게임 해볼게요. 3년 동안 김택연이 시키는 거 다 하기 vs 하루 동안 김강률 선배에게 온갖 심부름 다 시키기!
제가 이 질문을 미리 읽어봤어요. 근데 왜… 왜 이런 질문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황당) 너무 극과 극이잖아요. 강률 선배님 고르고 아무것도 안 시키기는 없나요?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면 3년 동안 택연이가 시키는 거 다 해야죠. 지금처럼! 사실 지금도 시키는 거 다 하고 있거든요. (‘형, 아이스박스 좀 끌어줘!’ 해도요?) 택연이가 도와달라 하면 도와주죠. 이미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택연이를 고를게요.
원정 룸메이트는 누구예요?
원래 치국이 형과 같은 방을 썼고 지금은 (이)영하 형이랑 써요. 준호는 빈이 형이랑 쓰고 지강이 형은 택연이랑 씁니다. 치국이 형이랑 룸메이트였을 때부터 얘기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다녀서 너무 좋았어요. 영하 형이랑은 이번 창원 원정(6월 둘째 주) 때부터 같은 방을 쓰기 시작했는데 같이 유튜브 보면서 엄청나게 웃었던 것밖에 기억이 안 나요. 유튜버 ‘미미미누’ 아세요? 그분이 노래 부른 영상을 117개 모아둔 재생목록이 있더라고요. 섬네일이 재밌어 보이는 거 위주로 하나씩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웃겨요. 시합하다가 이닝 교대 시간에 노래가 나오면 그 목소리와 춤이 생각나기도 해요. 그러면 속으로 떠올리고 웃습니다.
김택연이 가수 옥택연과 SNS 맞팔로우를 했더라고요. 동명이인이자 중학교 선배인 배우 이병헌과 맞팔로우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할 계획이 있나요?
기회가 생긴다면 하면 좋지 않을까요? 중학교 선배이신 것도 알고 있어요. 배우님께서는 제 존재를 모르시겠지만, 나중에 알게 되신다면 그건 그대로 좋은 거고요. 제가 더 유명해져야죠! (아직 웹사이트에는 배우 이병헌이 먼저 나오잖아요.) 아, 그건 당연한…! (황당) 제가 먼저 나오는 날이 올까요? 와도 일시적이겠죠? 자고 일어나면 바로 뒤로 밀려있을 거 같은데요. (웃음) (이름이 같아서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요?) 제가 야구를 하기도 전일 때, 아마 초등학생 때였을 거예요. 그때가 이병헌 배우님이 결혼하셨던 시기라 그때 친구들에게 놀림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나 나중에 시구자로 만날 수도 있으니 영상 편지를 한번 남겨볼까요?
아, 부끄러워서 못 하겠어요. (카메라를 보며) 하지만 혹시라도 좋은 기회로 시구하러 와주신다면 꼭 제가 지도해 드리겠습니다!
#29의 의미
두산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유희관 선배의 29번을 물려받았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그중에서도 가장 잘했던 2학년 때 달았던 번호라서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달게 된 번호예요. 유희관 선배님 덕에 두산 좌완으로서는 상징적인 번호가 됐으니, 저도 같은 좌완 투수로서 그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잘하겠습니다!
좌완 투수와 29번의 조합은 웃수저가 된다는 말이 있어요. 마침 별명이 ‘개그맨’이죠?
근데 저는 원래 과묵한 스타일이라서요. 낯가림도 심하고 MBTI가 ‘I’로 시작하다 보니 소심한데, 왠지 모르게 여러 일이 겹쳐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일부러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망신살이 꼈나?’ 싶을 정도로, 주기적으로 그런 일이 생기니까 여러 가지 오해도 생겨요. 제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억울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해명할 기회를 드릴게요.) 저는 원래 허당기도 없고 낯가림도 심하고 카메라를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다시 과묵한 사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팬분들이 별로 안 좋아하면 어떡해요.) 과묵한 거요? 아뇨. 야구만 잘하면 다 좋아하실 겁니다. 과묵한 게 콘셉트가 아니라 제 본래 성격이 그런 거다 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팬들에게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는 너무 반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의 없다시피 하는 존재감도 말고, 그냥 무난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평범하고 길게 갈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병헌을 응원하는 최강 10번 타자 팬분들께 인사하고 인터뷰 마칠게요.
작년보다는 경기에 자주 나가고 있는데, 그만큼 많이 응원해 주시고 또, 걱정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직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데, 올 시즌 부상 없이 잘 마쳐서 팀이 순위 하나라도 높이 올라갈 수 있게, 승리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59호 (7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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