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동반자,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 별세

김은형 기자 2024. 12. 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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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세상을 떠난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 씨네21 자료사진

한국 영화를 세계적인 반열로 끌어올린 임권택 감독에게는 한 몸처럼 움직였던 두 명의 동반자가 있다. 정일성 촬영감독과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다. ‘만다라’ ‘길소뜸’ ‘씨받이’ 등 평생 50여 편의 작품을 쓰면서 한국 영화의 수준을 도약시킨 송길한 작가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84.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위암 투병 끝에 이날 오후 4시56분께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1940년 전주에서 태어나 자란 전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강원도 도계광업소와 서울 중부시장 등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서 ‘흑조’로 당선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충무로에서 ‘마지막 날의 언약’(1974), ‘과거는 왜 물어’(1976) 등 멜로드라마와 ‘여고 얄개’(1977), ‘우리들의 고교 시대(1978) 등 청춘물, ‘도솔산 최후의 날(1977) 등 반공 문예 영화와 아동 애니메이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썼다.

영화 ‘짝코’. 한겨레 자료사진

충무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영화하고는 안맞”다고 생각하며 “늘 여차하면 보따리 싸려고” 마음 먹고 살던 그를 붙들어준 게 임권택 감독이었다.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인터뷰, 정성일, 한국영상자료원, 2013년 12월)

임권택 감독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짝코’(1980)가 두 사람의 협업으로 탄생한 첫 작품이다. 당시 전방부대의 폭발 사건을 국책영화로 만들고자 했던 한 제작자의 요청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비슷한 가족사 배경과 영화 철학을 공유하면서 의기투합했다. ‘짝코’는 한국전쟁 때 빨치산과 토벌대장으로 만났던 두 남자의 30년 악연을 따라가며 현대사의 그림자를 냉철하게 조명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에는 반공영화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훗날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재평가되며 걸작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 할 때를 정성일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삼일 만에 만나서 쓴 거 보여주면 군소리가 없었어. 그 양반 특징 중 하나가 작품이 마음에 들면 아무 소리 없는 거여. 원고지를 낚아채듯이 확 갖고 없어져 버려. 수고했다고 말도 없이. 본인도 벅차서 그런 거겠지. 나는 그게 작가와 감독으로서 최고 희열이라고 생각해.”

‘짝코’를 통해 시나리오 작가로 분기점을 맞은 송 작가와 임권택 감독의 협업은 한국영화 걸작 리스트에 늘 윗자리를 차지하는 걸작 ‘만다라’(1981)로 이어졌다. 이후 ‘우상의 눈물’(1981)과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씨받이’(1986), ‘티켓’(1986) 까지 숨 가쁘게 걸작들을 쏟아냈다. 배우 김지미의 삭발 장면으로 화제가 됐던 ‘비구니’(1984)는 불교계의 반발로 제작이 중단이 되면서 고인이 가장 아깝게 여기는 미완성작으로 남기도 했다. 이후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1992) 등 다른 감독들과 간간이 작업하면서도 ‘하류인생’(2004) 각본과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연출작 ‘달빛 길어올리기’(2011) 각색까지 운명 공동체와도 같은 임 감독과의 협업은 평생 이어졌다.

영화 ‘씨받이’ 한겨레 자료사진

‘짝코’, ‘만다라’, ‘티켓’으로 대종상 각본상과 각색상 등을 수상했고, ‘씨받이’는 배우 강수연에게 198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기면서 강수연과 임권택 감독이 세계적인 영화인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출범할 때는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영화제가 탄생하고 자리 잡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0년대부터는 한국영화아카데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서강대 대학원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지난 10월 62회 영화인의 날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넘버3’. ‘세기말’을 연출한 송능한 감독이 고인의 동생이며, 송 감독의 딸로 ‘패스트 라이브즈’로 지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셀린 송 감독이 조카다. 빈소 서울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25일.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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