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소녀가 만주에서 겪은 참상… 우리는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를 모른다
김숨 '간단후쿠'

"삐! 삐! 조센삐!"
강 건너 중국인 사내아이들이 이쪽 조선 여자애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삐'는 여성 생식기를 가리키는 중국 비속어. 맨몸에 간단후쿠만 입은 여자애들은 두 발을 강물에 담그고 '아래'를 내놓은 채 할 일을 한다. 간단후쿠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주로 입은 간단한 원피스식 옷. 여자애들은 간밤에 사용했던 삿쿠(일본군이 사용하던 콘돔)와 생리 기저귀를 빨고, 머리를 감는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만주의 한 일본군 위안소 '스즈랑'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소설 '간단후쿠'가 나왔다. 김숨(51) 작가가 2016년 '한 명'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쓴 여섯 번째 책이다. '간단후쿠'는 임신한 위안부 소녀를 그린 '흐르는 편지'(2018)와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고(故) 김복동·길원옥 선생의 직접 증언을 바탕으로 한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2018), 기록자의 시선에서 증언을 증언하는 '듣기 시간'(2021)의 뒤를 잇는다.

"10년 체화해 비로소 원없이 썼다"
24일 전화로 만난 김 작가는 "'간단후쿠'는 (가장 근작이지만) 시간상으론 맨 앞에 놓여야 하는 책"이라고 했다. 그의 첫 독자라면 이 소설부터 집어들면 된다는 얘기다. 그는 "전작들에선 위안소까지 들어가 써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었다"며 "위안부 문제를 체화하는 1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야 비로소 써볼 수 있겠다 싶어 원없이 썼다"고 했다.
소설은 스즈랑의 널빤지 방 안으로 독자들을 밀어 넣는다. 열 명의 여자애들이 머무는 널빤지 문 열 개 앞에는 밤마다 전투를 앞뒀거나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의 줄 열 개가 늘어 선다. 돌림노래에 맞춰 널빤지 문이 열리고 닫힌다. 한 소절에 삿쿠 하나, 군표 한 장. "삿사토 삿사토!"(빨리 빨리) 김 작가는 "전시 성폭력 피해와 몸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또 다른 가해가 될까 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면서도 "쉽지는 않았지만 쓰고 싶었고, 써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원래 이름 '개나리' 대신 '요코'라 불리게 된 15세 소녀의 시선을 따라간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만주 실 공장에 딸을 보내라는 동네 아저씨의 을러댐에 2년 전 이곳에 끌려온 소녀. 실 공장은커녕 "군인을 데리고 자는 공장"이었다. 스즈랑에는 바늘 공장, 군복 만드는 공장, 간호사 양성소, 돈 많이 버는 공장에 가는 줄 알고 온 소녀들이 모여 있다. 간단후쿠를 한번 입고 나면, 이들은 간단후쿠가 된다.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던 '미치코'는 변소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된다. 빈 방은 이내 "아타라시"(새것) 여자애의 차지가 된다. 새로 온 여자애는 다시 미치코로 불린다. 아타라시 미치코다.

"증언 읽고도 안 믿겨…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모여 역사의 한자락이 됐다. 다만 김 작가는 "나는 역사학자도 연구자도 아니"라며 "생존피해자 한 명의 하루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시간을 쪼개 들여다보고 그걸 소설로 쓰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했다. "한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하던 중 갑자기 창밖에서 '누가 듣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실제로는 아무도 없는데요. 이렇게 병적인 증상들,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순간들을 찾아내 기록하고 싶었어요."
피해 사실을 과장하지 않고, 누군가를 영웅화하지 말자는 원칙을 갖고 썼다. '한 명'을 쓸 때는 뒤에 각주를 잔뜩 달아둔 이유다. 그는 "증언을 접하고 나조차 믿겨지지가 않아서, 혹 독자들이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로 알까 봐 사실임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미 다 아는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소설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곧 깨닫게 된다. "나라는 한 인간의 무지와 무사유"를. 김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선 어느 시점에서 관심을 거둬 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공부할수록 모르던 것들이 많다"고 했다. "어떻게 위안부로 동원이 돼 어떤 과정으로 위안소까지 갔고,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혹은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버려져 어떤 삶을 살다 돌아가셨는지 우리는 여전히 잘 모릅니다. 이 소설이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는 데 보탬이 된다면 좋겠어요."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단 여섯 명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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