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만의 문제일까…‘리베이트 유혹’에 익숙해진 의사들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불법 리베이트는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제약업계의 고질병이다. 리베이트는 의료인이 환자에게 적합한 의약품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제품을 선택하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한다. 자연스레 국민 건강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또 리베이트는 약값 인상으로도 이어진다. 결국 리베이트로 발생한 부담이 국민과 국민건강보험에 전가되는 구조다. 정부가 불법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사 색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리베이트 관행을 제약업계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는 까닭에서다. [편집자주]
최근 서울 강남구 고려제약 본사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단이 들이닥쳤다. 불법 리베이트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경찰은 고려제약이 자사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의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하고 지난해부터 수사를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재 고려제약 직원 8명과 의사 14명을 입건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다.

고려제약에 들이닥친 경찰 '광수단'
제약업계의 불법 리베이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70억원대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돼 JW중외제약에 305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리베이트 사건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또 같은 해 안국약품이, 2022년에는 경동제약이 불법 리베이트로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앞서 동성제약과 동아에스티, 한국화이자제약, 한국노바티스 등도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됐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2010년 리베이트 제공자에 더해 수혜자인 의료인까지 처벌한다는 취지의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한 이래 규제의 강도를 높여갔다. 그러나 규제 강화는 곧바로 리베이트 근절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속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편법과 우회 수단이 생겨났다.
실제 최근 적발 사례를 보면, 지능화된 수법이 다수 눈에 띈다. 의료인이 자녀 명의로 설립한 법인을 의약품 거래 과정에 끼워넣어 통행세를 거두도록 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제약사가 저가에 공급한 약품을 해당 의료인이 소속된 병원에 고율 마진으로 납품하는 식이었다. 또 무작위를 가장한 경품행사를 진행해 의료인에게 고급 외제 승용차 등 경품을 제공하거나, 학술대회·기부금·제품설명회 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경제적 이익을 우회 제공한 제약사도 있었다.
리베이트에 의약품영업대행업체(CSO)를 동원하기도 했다. 제약사가 35~55%에 달하는 높은 판매 수수료를 제공하면 이 중 일부를 리베이트에 활용하는 식이다. 의약품 판매에 더해 리베이트까지 대행하는 셈이다. 리베이트가 적발되더라도 제약사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CSO 역시 의료법상 '의료 리베이트 수수금지' 처벌을 피할 수 있다. CSO가 약사법상 의약품 공급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쌍벌제' 시행 이후 각종 편법 등장
물론 전통적 리베이트 수단인 '현금 전달'도 여전히 존재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일부 제약사는 영업사원을 앞세워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첫 거래 시 6개월에서 12개월분의 리베이트를 선지원하고, 이후 매월 처방 실적에 따라 리베이트 금액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처방 액수가 클수록 높은 리베이트 요율이 적용된다. 평균 리베이트 요율은 20% 전후로 알려져 있다.
리베이트로 제공되는 현금은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할 수 없는 '검은돈'이다. 리베이트 자금 마련에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영업사원들의 '카드깡'은 기본이며, 노트북 등 고가 사무용품을 구입한 후 중고 매매해 현금화하는 방식도 동원됐다. 또 허위로 영수증을 채워넣거나 직원들에게 일비나 출장비, 인센티브 등 명목으로 지급한 자금을 돌려받은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제약사도 있었다.
현금 전달이라는 방식은 그대로지만 단속에 대한 대비는 한층 강화됐다. 한 전직 제약사 영업사원은 "수사를 받게 될 때를 대비해 기안문서 등 내부 문건에 리베이트 관련 용어 대신 자신들만의 은어를 사용한다"며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리베이트 관련 문건은 수기로 작성한 후 직접 또는 팩스로만 주고받으며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정기적으로 파기 및 교체한다"고 말했다.
리베이트는 경제적 이익 제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제약사 영업사원이 의료인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거나 학회 및 예비군 대리 출석, 가족 행사 참석 및 보조, 음식 배달, 창고 정리 등 심부름이나 노무를 제공한 사례도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개최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 등 의사들의 집회에 제약사 직원을 동원했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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