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에게 혼수 대신 3000만원 줬는데.." 10년 뒤 딸이 내민 명함 한 장에 울었다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는 혼수에 마음을 씁니다. 남부끄럽지 않게 해 보내야 딸이 시댁에서 기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딸이 혼수 대신 돈으로 달라고 하면 서운하기도 하고, 그 돈이 어디에 쓰일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경남 진주에 사는 하순옥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남편 정만석 씨와 함께 40년 동안 진주 외곽에서 비닐하우스 딸기 농사를 지었습니다. 겨울이면 새벽부터 하우스에 들어가 허리를 굽히고 딸기를 따고, 봄이면 모종을 옮겨 심느라 하루도 쉴 날이 없었습니다.

부부에게는 딸만 셋이 있었습니다. 위의 두 딸은 일찍 시집을 갔고, 막내딸 민지는 서울에서 작은 회사를 다녔습니다. 민지는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하우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하우스로 달려와 딸기 바구니를 날랐습니다.

민지는 고등학교 때 체육 선생님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서울의 작은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첫 월급을 받던 날 민지는 엄마에게 무릎 보호대를 사서 보냈습니다. 순옥 씨는 그 보호대를 하우스에 갈 때마다 차고 다녔습니다.

순옥 씨의 무릎은 오십 대부터 고장이 났습니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딸기를 따다 보니 연골이 다 닳아 버린 것입니다. 밤마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는 엄마를 보며 민지는 "엄마 무릎은 내가 꼭 고쳐 줄 거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10년 전, 민지가 회사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순옥 씨 부부는 언니들처럼 혼수를 제대로 해 주려고 딸기 농사로 모은 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민지가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 아빠. 결혼식은 작게 할게요. 혼수도 필요 없어요. 대신 그 돈을 저한테 그냥 주시면 안 될까요? 꼭 필요한 데가 있어요."

순옥 씨는 서운했습니다. 막내딸 혼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딸이 간절하게 부탁하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부부는 3,000만 원을 민지의 통장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민지야, 그 돈 어디 쓰려고 그러니?" 순옥 씨가 조심스럽게 묻자 민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엄마, 나중에 꼭 말할게. 지금은 묻지 말고 믿어 줘." 딸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순옥 씨는 더 이상 묻지 못했습니다.

민지의 결혼식은 정말 소박했습니다. 작은 예식장에서 가족들만 모여 식을 올렸고, 신혼집은 서울 변두리의 작은 원룸이었습니다. 새 가구 하나 없이 시작하는 막내딸 내외를 보며 순옥 씨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척들 사이에서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막내가 돈만 챙겨 가고 살림은 엉망이라더라." "그 돈 다 어디 썼는지 모르겠네." 순옥 씨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딸에게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한번은 큰언니마저 순옥 씨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엄마, 막내한테 준 돈 정말 괜찮아? 혹시 사기라도 당한 거 아니야?" 순옥 씨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민지는 명절에도 바쁘다며 하루만 다녀가곤 했습니다. 늘 피곤한 얼굴이었고, 전화를 해도 짧게 끊었습니다. 순옥 씨는 혹시 딸이 그 돈을 잘못 써서 힘들게 사는 건 아닌지 밤마다 걱정했습니다.

한번은 순옥 씨가 서울에 올라가 딸의 원룸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좁은 방 한쪽 벽에는 두꺼운 책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사람 뼈 모형이 놓여 있었습니다. 민지는 "회사 일 때문에 공부하는 거야"라고 얼버무렸고, 순옥 씨는 무슨 공부인지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순옥 씨가 참다못해 남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여보, 그 돈을 그냥 혼수로 해 줄 걸 그랬나 봐요. 막내가 저렇게 고생하는 걸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아요."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민지는 허투루 돈 쓸 애가 아니오. 믿고 기다려 봅시다."

그사이 순옥 씨의 무릎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졌고, 하우스 일을 하다 주저앉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부부는 5년 전 하우스 일을 크게 줄이고 작은 텃밭만 가꾸게 되었습니다.

민지는 엄마의 무릎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전화기 너머에서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늘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고쳐 줄게." 순옥 씨는 그 말이 그저 딸의 위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올가을, 민지가 남편과 함께 진주로 내려왔습니다. 짐이 가득 실린 이삿짐 트럭이 뒤따라왔습니다. 순옥 씨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서울 생활 접고 내려오는 거냐? 무슨 일 있니?"

민지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엄마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명함에는 '정민지 재활 물리치료실 원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주소는 순옥 씨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습니다.

순옥 씨는 명함을 든 채 그대로 굳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민지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10년 전에 받은 3,000만 원으로 물리치료학과에 다시 들어갔어. 낮에는 회사 다니고 밤에는 학교 다니면서 공부했어. 졸업하고 병원에서 6년 동안 일하면서 무릎 재활만 파고들었어."

"혼수 대신 그 돈을 달라고 한 건, 엄마 무릎 고쳐 줄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어. 엄마 아빠가 딸기 따면서 번 돈이니까, 엄마 아빠한테 돌려드리는 방법을 찾고 싶었어. 그래서 명절에도 제대로 못 내려오고 전화도 짧게 끊었어. 미안해, 엄마."

사위가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장모님, 민지가 10년 동안 하루 네 시간도 못 잤어요. 원룸에서 시작한 것도 그 돈을 학비에만 쓰려고 그랬던 거예요."

민지는 가방에서 낡은 공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첫 장에는 10년 전 날짜와 함께 "엄마 무릎"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증상과 날짜를 적어 둔 공책이었습니다. 민지는 그 공책을 들고 재활 공부를 이어 왔던 것입니다.

순옥 씨는 명함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친척들의 수군거림에 마음 졸이며 딸을 의심했던 지난 10년이 부끄러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민지의 물리치료실이 문을 열었습니다. 첫 환자 명단에는 '하순옥'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민지는 엄마를 치료대에 눕히고 무릎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습니다. "엄마, 오늘부터 매일 와. 원장님 엄마는 평생 공짜야."

치료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순옥 씨의 무릎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민지는 매일 아침 엄마를 차에 태워 치료실로 모셨고, 저녁이면 집에 들러 무릎 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순옥이 막내딸이 원장님이 돼서 돌아왔다"며 부러워했습니다.

치료실이 문을 연 날 저녁, 온 식구는 진주 시내 오래된 냉면집에 모였습니다. 육전을 고명으로 얹은 진주냉면 네 그릇이 상 위에 놓였습니다. 남편 만석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그랬잖소. 민지는 허투루 돈 쓸 애가 아니라고." 순옥 씨는 딸의 그릇에 육전 한 점을 더 얹어 주었습니다.

안도현 작가의 『연어』는 먼바다로 떠났던 연어가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이야기입니다. 고향을 떠난 자식은 멀리 있는 것 같아도, 언젠가 가장 필요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자식이 내 뜻과 다른 선택을 할 때 부모는 서운하고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는 부모가 미처 알지 못한 깊은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남들의 말보다 내 자식을 먼저 믿어 주세요. 그 믿음이 자식을 끝까지 버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올가을 순옥 씨는 딸과 함께 진양호 호숫길을 걸었습니다. 무릎 치료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멀리까지 걸어 보는 길이었습니다. 호수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번졌고, 모녀는 천천히 걸음을 맞추며 호숫가를 따라 걸었습니다.

출처 : '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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