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함정에 첫 '국산 두뇌신경'... "한화시스템, 30년 외산 독점 깨뜨렸다"

함정을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까요. 강력한 무기? 빠른 속도? 두꺼운 장갑? 모두 중요하지만, 진짜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추진력과 전력, 그리고 각종 보조기기를 하나로 묶어 통제하는 '심장'입니다.

이 심장이 멈추면 아무리 좋은 무기를 달아도, 아무리 두꺼운 장갑을 둘러도 함정은 그저 바다 위에 떠 있는 쇳덩어리일 뿐이죠.

그런데 우리 해군은 그동안 이 가장 중요한 '심장'을 외국에서 사다 써야만 했습니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같은 해외 방산기업들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정말로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국산 심장'이 우리 함정에 처음으로 이식됐습니다.

한화시스템이 그 주인공이고, 양만춘함이 그 첫 번째 환자(?)인 것이죠.

이번 성과가 왜 그렇게 대단한지, 함께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30년 만에 우리 손으로 만든 '함정의 심장'


지난 30일, 경남 창원 진해항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하나 열렸습니다.

한화시스템이 해군과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등 관계 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양만춘함(DDH-I) 통합기관제어체계(ECS) 성능개선 완료 기념식'을 개최한 것이죠.

이름이 다소 길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한화시스템이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통합기관제어체계, 즉 ECS가 실제 해군 함정에 처음으로 탑재됐다는 사실입니다.

3200톤급 헬기탑재 구축함인 양만춘함은 그동안 해외 업체 장비에 의존해 왔습니다.

함정이 움직이고 작전을 수행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두뇌이자 심장을 외국 기술에 맡겨왔던 것이죠.

그런데 이번 성능개선 사업을 통해 국산 ECS로 교체되면서, 함정 핵심 시스템의 자립도가 한층 높아지게 됐습니다.

이는 단순히 부품 하나를 바꾼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해군 함정의 핵심 신경계를 우리 손으로 직접 다룰 수 있게 됐다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CS가 도대체 뭐길래…'함정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유


그렇다면 통합기관제어체계, 이 ECS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함정의 모든 핵심 기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 관리하는 장비입니다.

추진, 전력, 보조기기, 손상제어 등 함정 운용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스템이 ECS를 통해 컨트롤되는 것이죠.

함정이 어디로 갈지, 얼마나 빨리 갈지, 어떤 장비에 얼마만큼의 전력을 보낼지, 그리고 만약 적의 공격으로 함정 일부가 손상됐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까지 모두 ECS의 영역입니다.

이쯤 되면 왜 ECS를 '함정의 심장'이라고 부르는지 감이 오실 것입니다.

사람의 심장이 온몸 구석구석에 피를 보내듯, ECS는 함정 곳곳에 명령과 에너지를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한화시스템이 이미 개발한 전투체계(CMS)가 함정의 '두뇌'에 해당한다면, 이번 ECS는 '심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뇌와 심장을 모두 국산 기술로 갖췄다는 의미는, 미래 함정의 자동화와 무인화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을 우리가 모두 보유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국·영국·이탈리아의 30년 독점을 깨뜨리다


지금까지 ECS 기술은 사실상 소수의 해외 방산기업들이 독점해 왔습니다.

미국의 L3해리스, 영국의 롤스로이스,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 넥스테크 같은 곳들이죠.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 회사들이 전 세계 ECS 시장을 사실상 나눠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함정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동안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이들로부터 공급받아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외국 기술에 의존하다 보니 군수지원과 정비에 상당한 제약이 따랐던 것이죠.

부품 하나가 고장 나도 해외에 주문해야 하고,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어도 해당 업체의 일정과 정책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정이 정비 때문에 항구에 묶여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작전 가동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신속한 유지보수와 성능 개량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함정 가동률과 작전 지속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게다가 이번에 양만춘함에 탑재된 ECS는 기존 대비 정밀 감시 및 제어 성능을 강화하고 전력 운용 효율도 개선했습니다.

여기에 함상 훈련 기능도 새롭게 추가됐죠. 단순히 외국 제품을 따라잡은 수준이 아니라, 더 나은 성능으로 도약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11년의 인내…2014년부터 시작된 도전


한화시스템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절대 하루아침에 이뤄진 성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화시스템은 무려 2014년부터 ECS 국산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1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한 우물을 파온 것이죠.

이 과정에서 한화시스템은 혼자 싸우지 않았습니다.

해군과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국방기술진흥연구소, 한국기계연구원 등과 협력해 핵심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이번 성과가 민·관·군 협력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한 기업의 욕심이나 어느 한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죠.

정부와 군, 그리고 연구기관과 기업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꾸준히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이 도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한화시스템은 2024년 12월,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차기 호위함 '울산급 배치-IV' ECS 체계개발 사업도 수주하면서 기술 고도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양만춘함을 시작으로 차세대 함정으로까지 국산 ECS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모습이죠.

두뇌·심장 다 가진 유일한 기업…다음 목표는 '콕핏형 함교'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전투체계(CMS)와 통합기관제어체계(ECS)를 모두 독자 개발한 기업은 한화시스템이 유일하다는 점입니다.

함정의 두뇌와 심장을 모두 우리 기술로 만들 수 있는 회사가 한화시스템 단 한 곳뿐이라는 것이죠.

이는 곧 K-함정의 완전 국산화가 한화시스템을 중심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한화시스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항공기 조종석 개념을 적용한 '콕핏형 통합함교체계(IBS)' 기술까지 확보한 상태입니다. IBS가 무엇이냐고요?

쉽게 말해 전투기 조종석처럼 한 명의 조종사가 모든 것을 통합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든 함교 시스템입니다.

전투와 기관 제어를 하나의 공간에서 통합 운영할 수 있어, 함정 운용 인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죠.

기존 함정에는 함교, 전투정보실, 기관통제실 등 각각의 공간에 별도의 인력이 배치돼야 했습니다.

그런데 IBS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이 모든 것을 한 공간에서, 더 적은 인원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인구 감소로 병력 자원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우리 군 입장에서 이런 기술은 단순한 효율성 개선을 넘어 생존 전략에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고 보입니다.

무인 함정 시대를 향한 한화시스템의 큰 그림


이번 ECS 국산화가 단순히 부품 하나의 자립을 넘어 더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미래 해양 무인체계 시장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함정이 무인화되려면 추진, 전력, 손상제어 같은 모든 기능을 자동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ECS와 CMS입니다.

두 시스템을 모두 독자 보유한 한화시스템이 미래 무인 함정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죠.

실제로 한화시스템은 정찰용 무인수상정, 군집 무인수상정, 무인잠수정 등 다양한 해양 무인체계 라인업을 구축하며 미래 해양 방산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유인 함정의 두뇌와 심장을 만든 기술력이 그대로 무인 함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유문기 한화시스템 해양사업부장은 "한화시스템이 해군·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등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 덕분에 ECS를 독자 개발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함정 무인화와 첨단화를 이끄는 기술 개발을 통해 글로벌 해양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양만춘함에 처음 탑재된 이 작은 심장이 앞으로 K-방산의 새로운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 행보가 주목됩니다.

30년 가까이 외국 기술에 의존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국산 ECS가 가야 할 길은 분명 멀 것입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성과라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