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97]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이 남긴 유산
1970년 11월 25일 도쿄 이치가야 육상자위대 주둔지에서 당대 인기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당일 총감실 발코니에 서서 사자후를 토하는 그의 모습이 TV로 생중계되었다.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자위대가 일어서지 않으면 헌법 개정은 이룰 수 없다. 제군(諸君)은 무사다. 무사라면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어째서 지키려 하는가?”
간부들에게 칼을 휘두르고 인질극을 벌이는 자가 늘어놓는 황당한 일장 훈계에 자위대원들의 야유가 터져 나오자 미시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제군 중에 나와 같이 행동에 나설 사람은 없는가? 그러고도 무사인가? 이것으로 자위대에 대한 나의 꿈은 사라졌다.” 연설을 중단하듯 마치고 총감실로 돌아온 그는 할복을 감행한다. 장절(壯絶)한 죽음으로 자신의 충정(衷情)을 호소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증언에 따르면 장절과는 거리가 먼 고통스럽고 끔찍한 최후였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광기 어린 우거(愚擧)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고, 무사도의 화신으로 치켜세워 미화하는 일각의 분위기도 있다. 일본 내의 복잡한 심경과는 별개로, 그 주장의 과격함과 방법의 엽기성은 어떠한 의미로건 일본이라는 나라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충격적 사건으로 역사에 박제되었다.
헌법 개정을 위해 자위대가 궐기해야 한다는 발상은 현대 민주국가 이념과 양립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망상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헌법을 바꾸는 나라를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을 우국(憂國)의 혼이 담긴 거사로 포장하고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 그의 존재는 지금도 망령처럼 일본 사회를 떠돌고 있다. 한 사람의 그릇된 신념과 소영웅주의가 한 나라의 트라우마가 된 사례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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