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을 보라. 연식이 꽤 된 주상복합 아파트의 필로티 주차장인데, 차 한 대쯤 들어가는 보통 주차장보다 너비는 2~3배쯤 넓고 높이도 훨씬 높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건물이 70~80년대 전쟁이 나면, 탱크 주차장으로 쓰이도록 설계한 거라고 하는데. 이것 외에도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과 아파트가 꽤 있다는 제보가 들어 왔다. 유튜브 댓글로 “1970~80년대 지어진 아파트나 상가 건물에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 많다던데 사실인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사진에서 봤던 전차 주차장이 있는 건물은 서울 홍제동에 위치한 유진맨숀, 지금의 유진상가다. 직접 찾아가 봤는데, 정말 필로티의 층고도 높고 차 두 대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넓어 평소 보던 주차장의 느낌은 아니었다.

하필 갔던 날이 상가 전체와 관리사무소까지 휴가라서 이 동네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계셨다는 나이 지긋한 주민분께 여쭤봤다.
이재석 / 홍제동 주민 50년 차
“전차 차고지 맞아요. 유사시에는 전차 차고 됐다가 후퇴하게 된다면 여기를 폭발을 시켜가지고 걔네들(적)이 여길 넘어오는 시간을 지연을 시키려고 방호벽으로 쓰는 거지.”

또 수십 년간 그 자리에서 철물점을 운영하셨다는 사장님께도 여쭤보니,
현대철물점 사장님 / 홍제동 주민 60년 차
“우리 누나가 여기서 살았기 때문에 내가 캘린더 걸려고 못을 박으면 이마 정도까지 튀어 (못이)안 들어가. 이게 뭔가 하면 남과 북의 대치 상황에서 군사 방어 식으로 지어서 아파트가 튼튼해요.”

요즘 난리난 순살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를것 같은 견고한 유진상가가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지어졌다는 건 인근 주민분들은 공공연히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한다. 전차 보관 및 차고 역할뿐 아니라, 적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튼튼한 진지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콘크리트와 철근 함량이 높아 못 하나도 쉽게 박히지 않았다고 한다. 유사시엔 폭파해 서울 최후의 저지선이자 방호벽 역할까지 계획되어 있어, 주로 군인 간부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한다.

유진상가 외에도 그 시절 전쟁 대비를 위해 지어진 특이한 시설이 여럿 있는데,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장
“유진상가가 가장 대표적으로 많이 이야기 하는 거죠. 한강변에 있는 아파트에 관한 얘기도 조금 있고... 시가전에 대비해서 뭘 어떻게 했다 그런 얘기도 조금 있고...”
문주현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
“그런 게 있긴 있어요. 제가 예전에 어렸을 때 살았을 때도 압구정동 아파트에도 이렇게 기관총을 달 수 있는 공간들이 있기는 있는데...”

현재는 재개발로 당시 지어진 아파트와 건물이 많이 남아있진 않으나, 한강 변에 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청담 삼익아파트 계단실에 있는 이 구멍의 정체는 다름 아닌 총 거치대라고 한다. 총안구가 한강 방향을 향해있고 기관총을 거치할 수 있는 파이프 등이 있어 남하하는 적을 막는 진지 역할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된 거다.

이외에도 당시 청와대 뒤편을 감싸는 북악산길을 북악 스카이웨이로 정비한 것도 관광보단 청와대 인근 경비 강화가 주목적이다. 다만, 유진상가의 필로티와 민간 아파트의 정체모를 설비들이 100% 군사적 목적을 가졌다고 말하긴 어렵기도 한데,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뭔가 그런 (군사적) 목적이 아니면은 굳이 저런 모습일 이유가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이 드는 아파트들이 있죠. 그런데 그건 추정이지 자신 있게 이거다라고 말할 수는 없고 설계한 사람을 찾지 않으면 어려울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당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설계했다는 것이 비밀이었던지라 밝혀진 자료가 없고, 벌써 50년 가량 흘러간 만큼 해당 건물 시공사가 사라졌거나 설계 담당자가 없어져서 확답하긴 어렵다는 설명.

유진상가도 지어질 당시 정부가 어떤 군사적 목적으로, 설계에 어떤 지시를 했는지 전부 공개된 바가 없었는데, 1985년 시공사인 신성건설이 서울시를 상대로 하천사용료 소송을 낸 것에 대법원이 ‘군사 목적에 맞추어 통상보다 견고한 규모와 구조로써 이를 설치하게 하였고~’라고 판결하며(84누343) 군사적 목적이 있었다는 점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래도 대다수의 전문가는 이처럼 70년대 지어진 아파트와 상가, 심지어 도로까지도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계기가 바로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로 침투한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 불리는 1.21 사태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1.21 사태 이후 향토예비군 창설되고, 교련 과목과 유격훈련이 생기고, 휴전선에 철책이 설치될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만큼, 유진상가나 아파트 같은 민간 건축물 설계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라는 추측이다.

남북대립의 역사의 산 증인인 유진상가와 한강변 아파트들. 지금 새로 지어지는 수많은 아파트와 건축물도 아마 수십 년 후엔 현 시대의 스토리를 꾹꾹 눌러 담은 역사의 산 증인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