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리그 결승 뒷얘기, 믹스트존에서 한국어 문답이 나온 사연은

늘 5월은 힘들다. 유럽 축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각국 리그들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유럽 대항전도 마지막을 향한다.

2025년 5월은 더욱 바빴다. 그 어느때보다 힘들었다. 유로파리그 결승과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현장 취재했다. 두 경기 모두 한국 선수들이 출전했다. 토트넘 주장 손흥민은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얻어낸 값진 우승 트로피였다.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팀의 일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경기에 뛰지는 못했지만 팀의 일원으로 힘을 보탰다.

이번 칼럼에서는 폭풍같았던 5월 말. 특히 유로파리그 결승전 뒷얘기를 정리해보려 한다.

#한국 언론은 특별 대우

5월 12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토트넘 홋스퍼 트레이닝센터로 향했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토트넘의 공식 미디어 데이가 열렸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지침에 따라 결승전에 올라간 팀은 훈련을 전면 공개하고, 감독 기자회견을 하며 마지막으로 믹스트존을 운영해야 한다. 토트넘 역시 이를 위해 미디어데이를 개최했다.

전날인 5월 11일. 토트넘과 크리스탈팰리스의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열렸다. 경기가 끝나고 토트넘 홍보팀 직원들이 한국 취재진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다음날 일정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 미디어데이 시작은 오전 11시부터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전 9시까지 와줄 것을 요청했다. 손흥민 인터뷰 때문이었다.

토트넘은 믹스트존에 손흥민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여기에 언론과의 대면은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토트넘과 손흥민은 논의 끝에 주요 언론과만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영국과 독일의 중계권사 그리고 한국 언론이었다. 훈련 시작 전인 오전 9시 30분에 손흥민과 한국 취재진의 인터뷰가 마련됐다. 한국 언론들을 특별 대우해준 것이었다.

물론 이를 위해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손흥민과의 인터뷰가 있는데 그것이 대수랴. 4시간 쪽잠을 자고 부랴부랴 토트넘 홋스퍼 트레이닝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손흥민을 만났다.

손흥민은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앞서 영국 TNT 스포츠, 독일 DAZN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어와 독일어로 모두 인터뷰를 소화했다. 그리고 한국 언론과는 당연히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토트넘은 훈련을 공개하고, 감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믹스트존을 개방했다. 토트넘을 출입하던 영국 기자들이 손흥민을 찾았다. 구단 관계자들은 '오늘은 손흥민이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구단 방침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국 취재진들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왕복 672km의 여정

5월 19일 아침. 프랑스 보르도에 있었다. 자동차를 빌렸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스페인 빌바오까지의 거리는 편도 336km. 왕복으로는 672km.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토트넘과 맨유의 격돌이 확정되자마자 런던에서 빌바오로 가는 비행기 티켓 가격은 미친듯이 올랐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빌바오 인근이라고 할 수 있은 산탄데르도 비행기표가 동나기 시작했다. 빌바오는 접근성이 뛰어난 곳은 아니다. 스페인 북쪽에 위치해있다.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그나마 프랑스 보르도가 합리적인 가격에 런던에서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곳들 중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보르도행 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경기 사흘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다가올 수록 항공료는 올라갔다. 때문에 토트넘과 맨유 팬들은 빌바오로 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채택했다.

그 가운데 직접 목격한 것은 캠핑카였다. 보르도에서 빌바오로 향하던 고속도로 위. 운전하다 익숙한 번호판이 보였다. 영국 번호판을 단 캠핑카였다. 뒤에는 토트넘의 깃발을 내걸었다. '우리는 빌바오로 간다. 그동안 아스널은 드라마나 보고 있을 것'이라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그 깃발에서부터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캠핑카를 추월했다. 캠핑카에는 꽤 많은 토트넘 팬들이 있었다. 캠핑카 앞으로 가서 '비상등'을 켰다. 영국에서는 비상등을 키면 '고맙다' 혹은 '응원한다'의 뜻이 있다. 캠핑카도 의도를 알아채고 하이빔을 두 번 쏘았다. 영국에서 하이빔은 '양보' 혹은 '고맙다'는 뜻이다.

배를 타고 간 팬들도 있었다. 빌바오는 항구 도시이다. 정확하게는 대서양과 연결된 네르비온 강이 있다. 여기까지 배가 들어올 수 있다. 영국 남부의 포츠머스에서 빌바오까지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일정. 그럼에도 많은 잉글랜드 축구팬들이 이를 통해 빌바오로 들어왔다.

숙소도 빌바오에 잡지 못했다. 빌바오는 인구 36만명의 작은 도시다. 토트넘, 맨유 팬들이 날아오면서 숙소는 일찌감치 동이 났다. 경기 당일의 경우 호스텔의 작은 침대 하나가 50만원까지 육박했다. 결국 외곽을 찾았다. 그나마 차를 빌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75km 떨어진 노하(noja)라는 휴양 도시에 숙소를 잡았다. 3박에 30만원 남짓. 경기장까지 왕복 150km의 강행군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토트넘은 모두 절실했다

토트넘은 절실했다.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팬들까지도. 경기 이틀전부터 토트넘 팬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지간에 토트넘의 응원가를 불렀다. 경기 하루 전에는 빌바오 시내 중심가 길을 아예 점령해 노래를 부르고 응원 열기를 높였다. 반면 맨유팬들은 조용했다. 우선 맨유 팬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경기 전날 그리고 경기 당일이 되어서야 맨유 팬들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용조용했다. 조용히 시내를 구경했고, 조용하게 경기장으로 향했다.

한국팬들도 절실했다. 경기 전부터 곳곳에서 한국팬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손흥민의 우승을 위해 8000km를 날아왔다. 손흥민의 유니폼을 입고 빌바오에 와있었다. 토트넘 팬들은 이들만 지나가면 '나이스원 쏘니' 응원가를 불렀다. 한국 취재진이 지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친분이 있는 중국, 일본 취재진들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반면 맨유 유니폼을 입은 동양인들은 많지 않았다.

경기장 안에서도 토트넘은 카드 섹션도 준비하고, 깃발 응원도 했다. 맨유는 그저 통천 하나를 올렸을 뿐이다. 이미 절실함에서 토트넘이 앞섰다.

#빌바오의 중심에는 손흥민이 있었다

유로파리그 결승전의 중심은 손흥민이었다. 경기 하루 전 공식 기자회견에 선수 대표로 손흥민이 나왔다. 당연했다. 주장이자 토트넘의 모든 것이었다. 스페인에서 경기가 열리는만큼 스페인 출신의 페드로 포로도 함께 나왔다. 그러나 포로에 대한 질문은 많지 않았다.
질문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한국 팬분들에게도 큰 경기입니다. 특히 새벽 4시에 이 경기를 시청할텐데요. 특별한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아요."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항상 응원해주시곤 합니다. 팬분들에게 웃음과 저의 우승컵을 전달해드리고 싶어요."

당찬 출사표였다.

경기 당일 선발 명단 발표 전 손흥민의 선발을 예상했다. 한 유튜브 채널에 라이브로 연결했다. 손흥민의 선발 출전 확률을 묻는 질문에 호기롭게 '95.8%'라고 이야기했다.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경기 전날 열린 토트넘의 훈련을 관전했다. 미니 게임에서 손흥민은 주전조에 있었다. 조끼를 입고 있던 팀의 면면은 확실히 주전이었다. 솔랑키, 존슨, 판 더 벤, 로메로, 벤탕쿠르 등등. 손흥민도 이들과 함께 전술 훈련을 소화했다. 슈팅을 할 때 움직임도 좋았다.

결과는 벤치. 얼른 그 유튜브 채널에 전화부터 걸었다. 빠른 사과와 함께 나름 벤치 이유를 분석했다. 결국 제임스 매디슨이었다. 토트넘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가 전멸한 상태였다. 매디슨, 베리발, 클루셰프스키까지 모두 부상이었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대체 자원을 시험했다. 윌슨 오도베르를 투입하기도 했다. 손흥민도 이 자리에 세워 훈련했다. 모두 애매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세 명의 수비평 미드필더 배치. 수비에 치중하면서 견디자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손흥민 자리 역시 일단 '몸빵'이 되는 히샬리송으로 대체했다. 피지컬로 견디는 전술을 들고 나왔기에 손흥민을 아끼고자 했다.

후반 22분 손흥민이 투입됐다. 그리고 토트넘은 남은 시간을 견뎠다. 1대0 승리.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손흥민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포효했다. 시상식에서도 손흥민이 주인공이었다. 주장으로서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선수단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전세계가 이 장면을 주목했다.

#유럽 기자들 앞에서 한국어 문답

경기가 끝나고 믹스트존. 모든 기자들이 손흥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흥민이 나왔다. 기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분이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갔다. 질문의 기회를 포착했다. 여러 질문들이 중첩될 때 질문을 던졌다. 이 때는 한국어로 질문했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야 영어를 써야했지만 경기 후에는 그런 제한은 없었다. 여기에 이미 앞서 열렸던 맨유 브루노 페르난데스의 믹스트존 인터뷰는 그의 모국어인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만 진행됐다. 포르투갈 기자들이 영국 기자들의 질문 기회를 차단하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차피 손흥민은 한국 선수였고 한국어가 모국어이다. 굳이 영국 기자들을 배려해줄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시즌 내내 손흥민을 심하게 공격했던 이들이 바로 그 영국 기자들이었다. 된통 당해보라는 심보로 한국어로 질문했다. 한국어 질문에 손흥민은 한국어로 대답했다. 역시 손흥민의 대답은 '팬분들'이었다.

"완벽한 퍼즐을 맞추는 데 있어서 팬분들의 힘이 가장 컸어요. 제가 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축구팬분들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