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참사 재발 막자”…서울시가 꺼내든 ‘강철 울타리’ 효과 있을까
“중량 8톤 차량이 시속 55㎞ 충돌해도 보행자 보호 가능해”
전문가 “생색내기용 불과…운전면허 갱신 규정을 손봐야”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역주행 차량에 9명이 숨진 '시청역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서울시가 '방호 울타리'를 설치한다.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농후한 곳에 튼튼한 울타리를 세워 보행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시는 내년까지 308억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정비를 하겠다고 나섰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9월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급경사·급커브 등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시내 도로 98곳에 차량용 방호 울타리를 설치한다. 현재 보도에 설치된 울타리는 무단횡단을 막기 위한 용도라 사고가 발생하면 보행자를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시는 서울경찰청, 자치구, 도로교통공단 등과 함께 도로환경 개선이 필요한 400여 개 지점과 구간을 찾은 상태다.
차량용 방호 울타리는 중량 8톤 차량이 시속 55㎞, 측면 15도 각도로 충돌해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강도로 제작됐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충돌시험을 통과한 'SB1' 등급을 받았다.
이 같은 대책은 지난 7월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계기로 나왔다. 이 사고는 68세 운전자 차아무개씨가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호텔에서 승용차로 역주행하다 인도로 돌진해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다. 이로 인해 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상해를 입는 등의 피해를 봤다. 이미 참사가 발생한 시청역 인근에는 이러한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전문가 "모든 보도에 강철 가드 세울 수 없어"
시는 내년까지 308억을 투입, 대대적인 공사를 벌일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생색내기용 대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겸 대한교통학회 수석부회장은 "(시가) 생색을 내면서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벽을 세우는 것"이라며 "모든 도시와 보도(步道)에 강철 가드를 세울 수 없고 실효성도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을 살펴서 도로를 형성하는 기하학적인 구조를 파악하거나 원인이 되는 주변 환경을 바꿔야 한다"며 "일찍이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도시를 보면, 자동차가 과속으로 보도를 덮쳤을 때 보도를 막는 방식이 아니라 보행자가 많은 구간에서 자연스럽게 과속을 저지할 수 있도록 도로 환경을 바꾸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시청역 참사가 고령 운전자의 역주행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선제적으로 나왔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표적인 방안이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단축하고 운전능력을 까다롭게 검증하는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선 75~80세 사이 운전자는 4년, 81~86세는 2년, 87세 이상은 매년 주기로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유 교수는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신체 반응, 약물 문제 등을 중점적으로 살피는 등 적성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도 "고령 운전자가 길이 조절이나 판단 능력이 떨어지면서 본인이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가속 패달을 계속 밟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을 도입해야 한다"며 "20년 전부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선 고령 운전자에게 보조금을 주고 이러한 장치를 달게 했다. 이미 고령 운전자 80%가 설치했고 이로 인해 사고를 40%가량 줄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시는 울타리 외에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평상시 인파가 많이 몰리거나 광장처럼 개방된 공간에는 차량 진입을 일차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형 화분과 볼라드를 추가로 배치하겠다고 했다.
운전자가 주행 방향을 혼동하기 쉬운 일방통행 이면도로에는 인식이 쉬운 '회전 금지' LED 표지판도 설치할 예정이다. 유 교수는 "차로가 헷갈리는 구간 등을 점검해서 노면 색깔 유도선처럼 운전자들에게 안전장치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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