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감옥 갈 각오해야 CEO 돼” 농담이 아니라는데…무슨 일
한국경제인협회가 2023년 6월 기준으로 파악한 ‘대기업차별규제 현황’ 자료에 따르면 기업 규모가 자산총액 500억원을 넘어서면 자산 500억원 미만 기업에 비해 추가규제가 4건 늘어나는데,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 되면 추가 규제수는 183개가 되며, 자산 10조원이 넘는 기업은 342개의 규제를 추가로 받게 된다.
규제 대상을 넓혀가는 것도 문제다. 주 52시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명시한 ‘근로기준법’은 중소기업들이 꼽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회사와 종업원 모두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고 싶어도 이를 막는 바람에 대규모 수주를 받아도 물량을 처리할 수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에서 출범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지난 2018년 7월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고, 시차를 두고 중소기업들도 적용받게 됐다. 그런데 최근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업규제와 관련한 법 상당수가 기업인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점이다. 이로 인해 기업인들이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기업가 정신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업인들은 “한국에서 제대로 기업하려면 형사처벌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285개 경제 법령 가운데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 항목은 2657개(2019년 기준)에 달한다. 이중 83%에 달하는 2205개 항목이 법인 또는 사용주에 대한 양벌규정을 두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다. 노동자 보호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경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법이다. 더구나 과도한 처벌 규정에 비해 뚜렷한 산업재해 개선 효과가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시작된 2022년 1월을 기점으로 법 적용 대상 사업장의 사고사망자가 2021년 말 248명에서 2022년 말 256명, 지난해 말 244명 등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해 1분기와 올해 1분기를 비교하면 128명에서 138명으로 오히려 10명이 늘었다.
공정거래법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이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동일인(기업 총수)에게 1년에 한 번씩 자료를 요청하는데, 단순 누락 등으로 허위 자료를 제출해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형사처벌 조항이 있으나 실제로 처벌을 받은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대부분이 단순 누락으로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돼 경고 처분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고 처분을 받지만 징역까지 규정하고 있는 법 조항 때문에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지난 해 공정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은 한 기업 관계자는 “친족들의 직원 변동 등까지 다 신고하게 돼 있는데, 친족들이 자녀나 손주를 낳는다고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안 지키는 건 아니지만 단순 실수도 자칫 검찰 고발과 기소 등으로 연결될까봐 떨고 있는 것이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집단의 동일인을 ‘기업 총수’가 아닌 ‘핵심 기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업의 지배구조 자율성 확보를 위한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개선 방안’ 보고서를 냈다. 홍 교수는 친족의 범위도 혈족 4촌과 인척 3촌에서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동거친족 등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일이 광범위한 계열사와 친척 등을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단순 절차적 의무 위반에 불과한 자료 누락 등의 처벌 수위는 과태료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많은 규제입법은 외국 기업들의 한국에 대한 투자를 막고 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지난달 26일 발간한 ‘2024년도 규제환경 백서’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더불어 해외 직접 투자 기업들의 투자 결정 단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목적과 시행 방법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언급했다.
한편 기업인들이 악법으로 꼽는 것들은 한번 생기면 없애기가 쉽지 않다. ‘배임죄’가 대표적이다. 배임죄는 기업의 미래를 위해 경영자가 내린 판단이더라도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죄’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십 년간 비판을 받아왔지만 어느 누구도 고치려하지 않았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에 근무하던 시절 기업인을 수사했는데 횡령 등 뚜렷한 혐의가 나오지 않아 ‘배임’으로 불구속 기소한 사실이 있다”며 “사실상 배임은 기업인들을 ‘예비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입법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규제는 없애기가 어려워 장기간 시장 메커니즘을 교란할 가능성이 크다”며 “22대 국회가 개원후 가장 빠른 속도로 각종 규제법안을 발의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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