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밖으로 나온 호텔…'김치'에서 '베개'까지 다 판다
호텔 내에서의 경험을 고객 가정으로 확장
호텔업계가 숙박 서비스 제공하는 사업에서 벗어나 자체 리테일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호텔 브랜드를 단 PB 상품군을 확대하는 한편 자체 판매채널을 운영하는 호텔도 늘고 있다. 기존의 호텔은 고객이 직접 찾아가야만 하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호텔이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는 전략이다.
김치부터 침구까지
호텔업계에서 리테일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곳 중 하나는 조선호텔앤리조트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김치, 가정간편식(HMR), 침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조선호텔' 브랜드를 단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인기가 많은 제품은 김치다. 조선호텔 김치는 2004년 당시 웨스틴 조선 서울의 뷔페 레스토랑이었던 '카페로얄'의 김치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들의 요청에 의해 판매가 시작됐다. 이후 조선호텔앤리조트는 2011년 서울 성수동에 김치공장을 설립해 본격적인 포장김치 생산에 나섰다. 현재는 24종의 김치를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백화점과 SSG닷컴, 마켓컬리와 홈쇼핑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조선호텔 김치는 현재 포장김치 시장 점유율 3위에 올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조선호텔앤리조트는 2018년부터 HMR로 리테일 사업을 확대했다. 볶음밥 3종을 시작으로 현재 중식, 한식, 양식, 베이커리 등에서 50여 종의 상품을 내놨다. 대표 상품인 조선호텔 육개장의 경우 누적 판매량이 87만개를 넘어섰다. 조선호텔 브랜드를 내세워 프리미엄 HMR로 포지셔닝 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침구 브랜드 '더조선호텔'의 사업도 확장 중이다. 기존에는 호텔 고객이 문의하면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6년 신세계 강남점 리뉴얼 당시 팝업 형태로 처음 오프라인 매장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 매장은 2020년 8월 공식 매장이 됐다. 현재 신세계 강남점 침구 매장에서 연간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센텀시티점 등 전국에 총 6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 중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제품들은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조선호텔 제품의 올해 1~9월 매출액의 전년 대비 신장율은 김치가 16%, HMR이 91%, 침구가 46%를 기록 중이다.
파라다이스 호텔앤리조트도 코로나19 이후 리테일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앤리조트는 지난 2022년 호텔 주요 레스토랑의 8가지 요리를 HMR 형태로 처음 출시했다. 파라다이스 호텔앤리조트의 대표 레스토랑 셰프들이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 파라다이스는 최근 '파라다이스호텔 포기김치'를 출시하며 김치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파라다이스시티 내 부티크 호텔 아트파라디소의 한식 파인 다이닝 '새라새(SERASÉ)' 총괄셰프의 레시피를 활용했다. 이 제품은 지난 9월 30일~10월 1일 카카오톡 쇼핑하기에서 사전 판매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첫날 몇 시간만에 판매가 완료되며 판매 수량을 추가했다. 이틀간 판매된 김치는 총 2700개로 당초 목표였던 1500개를 훌쩍 넘겼다.
자체 매장도
일부 호텔들은 자체 상품을 판매하는 채널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랜드파크는 지난 7월부터 리테일 전문 매장 '케니몰' 1호점을 켄싱턴리조트 서귀포에 열었다. 이랜드파크는 지난해부터 리테일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와 경주, 사이판 등에서 파일럿 매장을 운영하며 고객 반응을 살폈다.
올 4월에는 이랜드그룹 이랜드리테일, 이랜드월드 등에서 30년간 경력을 쌓아온 리테일 전문가를 케니몰 담당 임원으로 영입했다. 호텔, 리조트에서 고객이 선호하는 상품을 선별하고 출시해 리테일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케니몰 1호점에서는 파일럿 매장에서 실시한 고객 조사를 바탕으로 제주 테마의 기념품, 지역 특산품, 켄싱턴 시그니처 PB 상품을 판매한다. 특히 감귤 모자와 옷을 입은 '제주 켄싱턴 베어 키링'은 매장 오픈 당일에 전량 판매되기도 했다. 또 케니몰은 최근 강정항에 내려 기항지 투어를 하는 유럽 고객들의 목적지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DL그룹의 글래드 호텔앤리조트도 2020년 온라인몰 '글래드샵'을 오픈하고 다양한 호텔 자체 상품을 판매 중이다. 2021년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트렌드를 반영해 내놓은 '글래드 시그니처 센트 시리즈' 등 호텔 시그니처 향을 담은 굿즈가 특히 인기가 높다. 글래드 호텔은 디퓨저, 룸 스프레이 등 총 5종을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레스토랑의 양갈비, 객실 내 베딩, 타월, 배스로브 등 호텔 굿즈와 HMR 상품도 판매한다. 리조트 전문 기업인 아난티도 온라인 편집숍 '이터널저니'를 운영 중이다. 이터널저니는 아난티의 배스로브, 어매니티, 향수 등 PB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아난티가 선별한 패션·라이프스타일 브랜드도 선보인다.
수익 다각화
이처럼 호텔업계가 리테일 사업에 힘을 주는 것은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호텔은 객실과 레스토랑 등 오프라인 공간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당시 고객이 호텔로 찾아오지 않으면서 호텔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시기부터 호텔업계는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리테일 사업에 눈을 돌렸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호텔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꾸준히 있었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제품 개발과 상품 판매를 더욱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는 끝났지만 여전히 리테일 사업은 중요하다. 호텔 사업은 일반적으로 성수기와 비수기가 나눠져 있지만 리테일 사업은 시기와 상관 없이 꾸준히 매출을 낼 수 있어서다.
특히 호텔에서의 경험을 집에서도 누리고 싶은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호텔 리테일 상품들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호텔의 브랜드가 갖추고 있는 프리미엄한 이미지가 호텔 상품들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또 다른 호텔업계 관계자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통해 호텔 내에서의 경험을 고객의 가정으로 확장할 수 있어 브랜드의 충성고객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리테일 사업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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