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대신 '자기규율'로 줄인다…로드맵 발표

강지은 기자 2022. 11. 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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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고용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정부 국정과제
산재 사망 지속…"처벌 위주 규제에 자체 예방 미비"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중대재해 OECD 평균 수준 ↓
'위험성 평가' 단계적 의문화…감독·법령 전면 개편도

[인천공항=뉴시스] 조성우 기자 = 지난 1월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4단계 건설사업 현장에 안전모와 장갑이 놓여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정부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현재의 '처벌' 위주 규제에서 벗어나 '자기규율' 방식으로 예방 체계를 전환한다.

그 핵심 수단으로 노사가 스스로 사업장 내 위험 요인을 진단·개선하는 '위험성 평가' 제도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산업안전 감독과 법령도 전면 정비한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이기도 하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는 828명, 노동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를 나타내는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퍼밀리아드)다. 감소 추세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29‱)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2020년 1월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 개정,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산재 사망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지만 만인율은 8년째 0.4~0.5‱대에서 머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본 안전수칙 준수로 예방 가능한 추락이나 끼임 등 '재래식' 사고가 전체 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발 사고 중 첫 사망사고 발생 후 1년 이내 발생한 경우도 38%에 달한다.

고용부는 이와 관련 현재 기업 스스로 위험 요인을 발굴·제거하는 예방 체계가 미비하다는 진단이다.

법령에 의한 규제·처벌 위주의 행정으로 기업은 타율적 규제에 길들여져 자체적으로 위험 요인을 개선하는 시스템과 역량이 매우 빈약하다는 얘기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기업이 안전역량 강화에 투자를 늘리기보다 대형 로펌 자문 등을 통해 처벌 회피에 집중하는 경향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이라고 고용부는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이에 정부는 수동적·타율적 규제인 현재의 '처벌·감독' 단계를 넘어 '자기규율 예방체계' 방식으로 2026년까지 중대재해를 OECD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우리와 유사하게 산재 사망 감소 정체기를 경험한 영국, 독일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1972년 발표된 영국의 '로벤스 보고서'는 촘촘한 법과 규제만으로는 중대재해 예방에 한계가 있다며 자기규율 예방체계로의 전환을 제안했으며, 영국은 이를 수용해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자기규율 예방체계는 정부가 제시하는 하위 규범과 지침을 토대로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해 사업장 내 위험 요인을 발굴·제거하는 안전관리 방식을 말한다. 안전 주체인 노사 모두의 책임을 기반으로 한다.

고용부는 그러면서 그 핵심 수단으로 '위험성 평가'를 꼽았다.

위험성 평가는 노사가 사업장 내 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 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로, 2013년 도입됐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데다 자기규율 방식과 맞지 않는 감독과 법령은 그대로 유지돼 대부분의 기업이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300인 이상 기업부터 위험성 평가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300인 이상은 내년 안에, 300인 미만은 업종·규모별로 2024년부터 적용을 확대할 예정이다.

위험성 평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고와 실제 발생한 사고를 토대로 실질적으로 사고발생 위험이 있는 작업과 공정을 중점적으로 선정해 실시하게 된다.

[서울=뉴시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고용노동부 제공) 2022.11.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는 이를 위해 중대재해 발생 원인이 담긴 재해조사의견서를 공개하고, 기업이 쉽고 간편하게 위험 요인을 발굴·평가할 수 있도록 체크 리스트 등 다양한 평가 기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지 않거나 부적정하게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시정 명령 또는 벌칙이 부여된다. 고용부는 산안법 개정을 통해 관련 조항을 신설할 예정이다.

또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자체 노력 사항을 수사 자료에 적시해 검찰과 법원에서 구형이나 양형 판단 시 고려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장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감독과 법령도 전면 개편한다.

정기 감독을 위험성 평가 점검으로 전환해 기업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컨설팅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획 감독을 통해 엄중한 결과 책임을 부과할 방침이다.

현재 1220개 조항으로 방대한 산업안전보건법령은 현실에 맞게 정비해 안전보건기준규칙을 처벌 규정과 예방 규정으로 분류한다. 고용부는 내년 상반기 '산업안전보건법령 TF'를 운영해 개선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고용부는 이 밖에도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 사업장에 대한 집중 지원을 지속하고, 근로자의 안전보건 참여 확대를 위해 근로자 핵심 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산안법에 명시할 계획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번 로드맵은 선진국의 성공 경험 등에 기초한 가장 효과적인 중대재해 감축 전략"이라며 "로드맵에 확신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면 우리 일터의 안전 수준도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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