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알못? 이 글을 읽으면 여러분도 펜싱 고수!

2024 파리 올림픽 개막했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합니다.
저는 2016년부터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서 펜싱을 맡아 중계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중계 종목에서 메달이 나오면 일을 하는 입장에서도 기분 좋은데 그런 의미에서 펜싱은 지난 8년 동안 저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준 종목입니다.
처음에 준비할 때는 어려웠어요. 뭘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 아무리 봐도 모르겠고 국제 연맹에서 준비한 프로그램까지 들었는데도 매번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나름의 방법이 생겼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내용은 제가 중계방송을 하면서 여러분께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딱 이것만 머리에 담고 보시면 몇 배는 더 재밌게 이번 올림픽 펜싱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1. 에페 (Épée)
에페는 '전신 찌르기'로 가장 보기 쉽습니다. 간단하게 ‘불(켜짐)=득점’입니다. 선수가 찌르기에 성공하면 불이 들어오는데 불이 들어오면 점수가 올라갑니다. 동시에 불이 들어와도 양 선수 모두 득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박상영 선수가 이뤄낸 9:13, 4점 차 역전 금메달이 기적이었던 겁니다. 앞서있는 선수의 경우 어떻게든 동시타라도 노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선수의 입장에서는 초반부터 앞서는 경기 운영이 매우 중요합니다. 동시점등, 동시득점이라 한 점이라도 앞서가면서 운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앞서있을 경우, 시간도 우리 편이 됩니다. 시간에 쫓기는 상대는 수비를 생각하지 않고 날아들어오기 때문에 오히려 반격으로 득점을 올리기 더 수월해집니다.
우리 선수가 빨간불인지 초록불인지 정해지면 그 후에는 선수들의 움직임과 함께 ‘불’만 보세요. ‘불=득점’입니다.

이제는 대표팀 에이스! 여자 에페 송세라의 출국 전 인터뷰! <사진 OSEN>

대표팀에서는 여자 에페의 송세라 선수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빠른 움직임을 바탕으로 상대의 나와있는 부분(발, 허벅지, 팔)을 콕 찌르는 포인트 집중력도 송세라의 강점입니다. 주저앉았다가 일어나는 덕킹 동작으로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특유의 동작도 보여줍니다. 첫 출전이었던 도쿄올림픽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기량으로 단체 은메달의 주역이 됐는데 이후 한층 성장해서 2022 세계선수권에서는 개인, 단체 2관왕에 올랐습니다. 숙적인 홍콩의 비비안 콩과도 세계선수권, 아시안 게임 등 큰 대회에서 승리를 거둔 좋은 기억도 있습니다. 부담만 떨쳐낸다면 충분히 메달 소식을 기대할 만합니다.

2. 플뢰레 (Fleuret)
플뢰레는 '토르소(상체의 몸통 부분) 찌르기'로 우리나라 펜싱의 영광의 시대를 열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영호 선수가 금메달을 따냈던 종목입니다. 최근 대한민국 플뢰레는 국제무대에서 조금 고전을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남자 플뢰레의 하태규 선수가 유일하게 출전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플뢰레는 펜싱을 보는 맛이 가장 뛰어난 종목입니다. 유효면이 가장 좁고, 찌르는 동작만 허용이 되다 보니 묘기 같은 피하기 동작들도 속출하고 펜서들이 변칙성 움직임으로 상대를 속이는 공격을 곧잘 보여줍니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괴짜검객’ 최병철 선수를 떠올려보시면 ‘아! 그 종목이구나!’ 하실 겁니다.
불이 들어오면 점수가 무조건 올라가는 에페와는 다르게 플뢰레는 공격우선권이 있습니다. 동시에 불이 켜질 경우 공격우선권을 잡은 쪽이 득점을 올립니다. 그리고 유효면이 아닌 곳을 찌를 경우 흰 불이 들어오는데 이때는 무효가 됩니다. 무효타가 있기 때문에 경기가 가장 길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격우선권’을 어떻게 잡느냐!
이것은 사브르와 묶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펜싱 영광의 시대를 열었던 남자 플뢰레 김영호 <사진 OSEN>

3. 사브르 (Sabre)
펜벤저스의 사브르입니다. 가장 빠르고 격렬합니다. 머리와 팔을 포함한 상체를 베거나 찌를 수 있습니다. 일단 심판의 알레(allez) 신호에 맞춰 두 선수는 무조건 달려듭니다. 공격우선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득점이 나오는 과정을 통상 3가지로 생각해 두고 중계를 합니다.
첫 번째, 알레 구호와 함께 달려들 때.
두 번째, 알레와 함께 달려들었다 빠지는 상대를 따라 들어갈 때.
세 번째, 빠지는 상대에게 완벽한 공격권을 잡고 피스트 끝으로 몰아갈 때.
세 번째 경우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만 켜면 됩니다.”
보통 중계할 때 우리 선수가 완벽한 우선권을 잡았다 싶으면 불 켜기 전까지 저 멘트를 두세 번 반복하는데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할 때 여러분 모두 우리 선수들이 불을 켜기를 바라면서 시청해 주세요.
각 경우 모두 불이 한쪽만 들어오거나 두 쪽 모두 들어올 수 있는데 한쪽만 들어오면 그냥 득점이고요. 두 쪽 모두 들어오면 우선권이 있는 쪽에 점수가 주어집니다.

남자 사브르의 버팀목, 오상욱 <사진 OSEN>

4. 공격우선권
드디어 공격우선권입니다. 저는 중계방송 캐스터로서 공격우선권을 최대한 단순화시켜서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 먼저 시작했나?
- 팔은 펴졌나?
- 상대 칼에 막히지는 않았나?
불이 두 선수에게 동시에 들어온 경우 슬로비디오를 보시면서 이 기준을 적용해서 보시면 더 재밌을 겁니다.
동시 점등 상황에서 득점하려면 먼저 공격을 시작하면서 팔을 펴야 하고 상대칼에 막히지 않아야 합니다. 반대상황이라면 상대 선수가 득점합니다.
사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구분이 매우 어렵습니다. 슬로비디오로 몇 번을 봐도 구분 안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보다가 보면 뚫어져라 한참 바라보면 또 눈에 들어옵니다. 저도 항상 국제 대회 끝날 때 즈음이면 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는 지난달부터 예전 경기 화면을 많이 보면서 눈에 익혀둔 상태입니다.

여자 사브르 윤지수(오른쪽), 전하영 출국 <사진 OSEN>

자! 그럼 오늘부터 우리 펜싱 대표팀. 많이 응원해 주세요!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