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닮은 추석과 추수감사절 [더 나은 경제, SDGs]

2025. 10. 1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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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추석(秋夕)은 가족 명절이다. 수확의 계절에 가족이 함께 모여 감사의 마음을 나눈다는 의미가 담겼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족이 해마다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기간 한곳에 모여 서로 정을 나눈다.

한국에 추석이 있다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있다. 추수감사절 역시 성탄절(Christmas)과 함께 미국에서 최대 명절로 꼽는다. 한 해 동안 땀과 노력으로 일군 여러 성과를 함께 나누며 가정의 축복을 기원하는 날이다.

추석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3대 유리왕 때 궁중 여인들이 7월15일∼8월15일 베 짜기 내기를 하고, 보름날에 승자와 패자가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축하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이후 가을 추수 시기와 맞물리면서 이를 기념하고 조상에게 감사하는 농경 공동체 축제로 발전했다. 그 날짜는 보름달이 뜨는 음력 8월15일로, 24절기 중에는 추분(秋分)과 가깝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1년에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1620년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주한 청교도들은 첫해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뒤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인 앨곤퀸족이나 모히칸족에게 종자를 나눠 받고 옥수수 농사기법 등을 배우며 수확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감사와 기도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이후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1789년 추수감사절을 ‘국가의 감사일’로 선포했고,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중 ‘국가의 단합과 감사’를 위해 11월 넷째 주를 공식 휴일로 정하면서 지금의 명절로 자리 잡았다.

추석은 달의 주기에 따라 자연과 함께 살아온 농경사회 전통의 흔적이다. 그렇다 보니 매년 양력 날짜는 달라진다. 이에 반해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주 목요일로 고정돼 있어 날짜는 해마다 11월 22일~28일 사이다.

흥미롭게도 두 명절 모두 추수와 관련되어 있지만, 한국은 천체(달)의 주기에 따라 공동체가 정한 날을 지켜오고 있고, 미국은 정부가 국가적 의미를 부여해 지정한 날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는 각각 농경 공동체와 근대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반영한 문화적 차이이기도 하다.

추석의 핵심 전통은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차례(祭禮)다. 온 가족이 성묘하고 차례상을 차려 송편·전·나물 등 제철 음식을 나눈다. 특히 송편은 햇곡으로 빚은 반달 모양의 떡으로 “예쁘게 빚어야 예쁜 아이를 낳는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상징성이 크다. 또한 전통놀이인 강강술래, 씨름, 줄다리기 등이 함께 어우러지며 공동체적 축제의 성격을 띤다.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가 빠질 수 없다. 17세기 아메리카 원주민이 청교도에게 칠면조를 선물했던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칠면조를 오븐에 구워 크랜베리 소스, 으깬 감자(메시드 포테이토), 호박파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 전통적인 식사다.

또 하나의 상징을 꼽자면 뉴욕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의 퍼레이드다. 1924년부터 시작된 이 퍼레이드는 미국의 대형 명절 문화를 상징하는 이벤트로, 수백만명이 TV와 현장에서 지켜본다. 미식축구 경기를 보려고 가족이 함께 TV 앞에 모이는 풍경 또한 현대 미국 추수감사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을 이어주는 일화가 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전선에서 추수감사절 식사를 나눈 이야기로, 당시 미군은 전투 중에도 본국에서 공수한 칠면조와 호박파이를 먹으며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광경을 본 한국인 통역병과 민간인은 ‘한국에도 수확을 기념하는 날이 있다’며 추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전선 한가운데에서도 두 명절의 전통이 교차한 셈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광경은 미국 거주 한인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이 융합된 새로운 문화가 발전하고 있어서다. 추석 무렵 송편과 불고기, 잡채와 함께 칠면조를 곁들이는 ‘퓨전 명절 식탁’을 즐기는 한인 가정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의 명절이 미국의 국가적 휴일 문화와 만나 이민 1·2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은 시간·공간·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가족·공동체·감사의 가치를 중심에 둔 명절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추석이 농경 공동체의 유산이라면, 추수감사절은 이민자 공동체의 연대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전통의 간소화와 가족 형태의 변화가, 미국에서는 상업화와 다문화 사회의 변화가 각각 이들 명절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한가위 달빛과 칠면조 향기 속에 담긴 ‘함께 모여 감사하는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두 나라의 공통된 정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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