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베토벤 프리즈’와 만난 한국 현대미술 [영감 한 스푼]
그런 클림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길이 34m, 높이 2m에 달하는 대형 벽화가 있습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토대로 한 ‘베토벤 프리즈’입니다.
1900년을 전후로 오스트리아 빈은 격동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유럽 전역은 아카데미를 거부하고 바르비종, 인상파처럼 아방가르드 예술의 바람이 불었고, 그런 가운데 마지막까지 왕정을 유지했던 빈 사회는 탐미주의로 빠져들었죠.
땅 위로는 화려한 도시가, 그 밖에는 빈곤과 범죄가 가득한 모순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안은 빈은 사회주의에 경도된 ‘레드 비엔나’로 기울었다가, 그 후에는 나치 점령되며 극단을 오고 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 역사를 담은 작품 옆에 한국의 현대미술이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됐습니다. 그 현장을 직접 가보게 되어 오늘 뉴스레터로 소개합니다.
‘황금 양배추’ 속 DMZ
그중에는 현지 미대 학생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이 클림트의 작품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꾸준히 기획전을 여는 현대미술관이기 때문입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이 기획한 이 전시의 출발은 2012년부터 비무장지대에서 열리고 있는 ‘리얼 디엠지’. 즉 ‘황금 양배추’ 미술관 속에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출발한 여러 사유를 다룬 현대미술전이 펼쳐진 것입니다.
1969년 달 착륙 풍경을 재해석한 것으로, 가운데 아주 무거운 머리를 하고 있는 인물이 인상적입니다. 이 인물의 손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이 쥐어져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사 경쟁, 그리고 찬란하지만 제국주의를 떠올리게도 하는 그리스 고전주의 예술품 등을 통해 작가는 냉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뒤로 펼쳐진 임민욱의 ‘커레히-홀로 서서’는 군용 모포에 그린 그림인데요. 군에서 병사는 몸도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모포를 덮고 자는 꿈까지는 통제할 수 없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작품입니다. 이 뒤로는 이불 작가가 DMZ 감시 초소에서 나온 철조망으로 만든 ‘오바드 V’도 전시됐습니다.
냉전의 그림자는
이주, 분쟁 등
세계의 여러 그림자로….
이 전시가 DMZ에서 시작했지만 장소는 오스트리아인 만큼 그 내용은 냉전이나 분단에서 출발해 다른 현대사회의 문제들로 확장됩니다.
튀르키예 작가 닐바 귀레시는 수십 년간 분쟁으로 인프라가 심각하게 부족해진 동부에서 전화 신호를 잡기 위해 동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영상에 담습니다.
“‘쿨한’ 한국,
더 깊은 모습 알게 돼“
전시를 함께 관람한 제체시온의 큐레이터 베티나 스포르는 오스트리아의 최근 선거 결과(극우파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음)를 언급하면서, 전쟁의 공포에 관해 이야기했었는데요. 이렇게 한국의 분단 문제에 대해 현지 큐레이터, 작가들은 진지하게 관심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는 대중매체를 통해 ‘쿨한’ 한국과 ‘끔찍한 독재 국가’ 북한의 이미지가 일반인이 갖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오스트리아는 20세기 두 차례 세계 대전과 냉전을 겪었고, 최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으로 확전될 거라는 우려, 극우파의 압박 속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도 냉전이 진행 중인 한국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또 한국 미술 작품을 초청하고 싶었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제체시온은 클림트의 작품도 있지만, 지금도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현대미술관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와 정치에 관해서도 적극 참여하고 발언하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예술가를 통해서도 우리가 배울 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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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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