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가 못마땅했던 미국 기자들

조회수 2024. 5. 1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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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빈 감독 “오타니가 뭘 하는지 나도 몰라”

지난 2월, 스프링캠프 초반이다. 이 시기는 초청 선수들도 꽤 많이 참가한다. JP 파이어라이즌도 그중 하나다. 탬파베이에서 다저스로 트레이드된 우완 투수다.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뛸 자리는 마땅치 않다. 그래도 캠프 때는 함께 훈련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일정을 마치고 퇴근할 시간이다. 클럽하우스 안으로 들어간 순간 파이어라이즌이 깜짝 놀란다. 자기 라커 앞에 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한 50명은 됐던 것 같다. 아마 그곳에 있던 기자들은 모두 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를 향해 쏟아지는 질문은 모두 비슷했다. ‘던진 공이 뭔가?’ ‘맞을 때 느낌이 어땠나?’ ‘홈런이 될 줄 알았나?’

그날은 라이브 배팅(실전 타격훈련) 첫날이었다. 하필이면 상대한 타자 중에 화제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오타니 쇼헤이다. 타구 하나가 담장 너머로 날아갔다. 말하자면 이적 후 첫 홈런이다. 그 상황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을 받은 것이다.

아마 지난 몇 년간 계속된 일일 것이다. 그가 속한 팀의 동료들이나, 상대한 팀의 투수/타자들에게 끊임없이 요청되는 코멘트다. “오늘은 오타니가 어떤 것 같나?”

에인절스 시절 필 네빈 감독도 마찬가지다. 유독 한 명에 대한 질문이 쉴 새 없이 계속된다. 결국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그 친구가 무엇을 어떻게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하는지 나도 솔직히 잘 모른다.” 짜증이 나서 한 말이 아니다. 진지한 대답이다. 진짜로 모른다.

전 에인절스 “오타니 질문 너무 많다”

다저스에 가서도 비슷하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도 미디어에 많이 시달린다. 한번은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캠프 때) 오타니의 훈련 스케줄은 감독이 직접 결정하나?”

“Yes”라는 말이 나와야 당연하다. 하지만 로버츠의 대답은 다르다. “아니다. 결정하는 그룹이 있다. 코칭 스태프 외에도 타격 담당, 훈련 담당, 퍼포먼스 담당이 함께 모여 논의한다. 그래서 가장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찾아낸다.”

그가 있는 곳은 어쩔 수 없다. 너무나 특출한 존재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한 곳만 쳐다본다.

6시즌을 뛴 에인절스에서 그랬다. 선발 투수 그리핀 캐닝은 ESPN에 이렇게 얘기한다. “그가 대단한 선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조금 관심을 덜 받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투수 리드 데트머스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주변에 있다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조금 더 집중력이 흩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훨씬 더 많은 미디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대답하고,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그렇다. 에인절스 선수들은 오타니에 대한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 있다.

“솔직히 잘 모른다. 우리도 궁금할 때가 많다. 워낙 독특한 존재다. 다른 선수와 다르다. 투수도 하고, 타자도 한다. 그걸 준비하는 건 본인만의 방식이다. 게다가 얘기할 기회도 별로 없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준비하는 것 같다.”

로버츠 감독 ‘오타니 대변인’도 임명

아마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것 같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캠프 초반에 흥미로운 인사 발령을 냈다. 슈퍼스타의 대변인을 임명한 것이다. 외야수 제이슨 헤이워드에게 임무를 맡겼다. “아마도 쇼헤이가 수많은 취재에 모두 응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럴 경우 추가 정보를 제이슨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색은 아니다. 농담이 살짝 섞였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의 집중력 방해를 우려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본인도 샌프란시스코 시절 배리 본즈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고 너스레를 떤다.

함께 뛰는 감독이나 선수들이 이럴 정도다. 기자들은 오죽하겠나. 현재 최고의 스타다. 가장 중요한 취재원이다. 그런데 접근이 너무 어렵다. 쓰는 언어도 다르다. 경쟁해야 할 기자도 많고, 당사자 주변은 이중삼중의 철벽이다. 홍보팀을 지나고, 통역을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첩첩산중이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현실이다. 하지만 오타니의 신비주의가 깊어질수록, 기자들과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그가 나고 자란 일본이라면 이해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프로 스포츠와 미디어는 공생 관계라는 신념이 확고한 사회다.

잘 알려진 얘기가 있다. 지난 겨울이다. FA 오타니의 행선지를 놓고 혼란이 극에 달했다. 대형 오보까지 나왔다. 얼마 뒤에 최종 결론이 알려졌다. 당사자의 SNS를 통해서였다. 정작 다저스도 직전까지 몰랐다. 통보가 간 것은 불과 2분 전이었다.

또 있다. 결혼 소식이다. 역시 특종은 본인의 SNS가 차지했다. 구단이나 팀 동료 누구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 다저스 홍보팀에게 연락이 간 것은 겨우 1분 전이었다. 기자들의 문의가 쏟아졌지만, 정작 알려줄 게 없었다.

서울 기자회견 몇 주 전부터 협조 요청

올 시즌을 앞두고 (다저스 담당) 기자들의 걱정이 컸다. 에인절스 시절에는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얼굴 맞대고 질문할 시간이 있었다. 이도류 덕분에 투수로도 등판하기 때문이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다. 경기가 끝나면 프레스룸에 자리가 마련됐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타자로만 뛴다. 언제, 어디서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3월에 열린 서울 개막전 때도 에피소드가 있다. 시리즈 전 기자회견 문제를 놓고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다저스가 오타니의 에이전트(CAA 네즈 발레로)에 일찌감치 협조 요청을 보냈다. 몇 주 동안의 협의를 거쳐 어렵게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이 지경이니 감히 단독 인터뷰나 심층적인 취재는 상상도 어렵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한 가지를 지적한다. 통역 미즈하라 잇페이의 영향력이다. MLB 시작 때부터 함께한 존재다. 그런 그가 외부와 접촉을 상당 부분 통제한다는 추측이다. 물론 방해 요소를 최소화한다는 명분이다. 그렇다고 기자들에게 달가울 리는 없다.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추론이다. 사실 통역과 기자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 그 기울기는 선수의 지명도와 비례한다. 아무리 목소리가 커 봐야 소용없다. 직접 얘기할 수 있는 통로는 하나밖에 없다. 심지어 선수 자신도 통역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오타니(29)와 미즈하라(39)의 관계라면 더 그럴 수 있다.

“기자분들 질문 더 하세요”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벽 하나가 사라졌다. 아니, 없어진 게 아니라 변했다. 철벽이 아닌, 유리 벽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임시 통역이 맡고 있다. 윌 아이어튼이라는 인물이다. 마에다 겐타의 다저스 시절을 도와주던 직원이다.

전임 미즈하라 통역은 그 자신이 스타였다. 개막전 선수단 소개 때면 기립 박수를 받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캐릭터 상품이 출시되고, 사방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만큼 성공한 커리어를 쌓았다.

(돈을 빼돌린 것 말고도) 그러나 그만큼 부정적인 면도 생기기 마련이다. 대외적인 유연함이 사라질 수 있다. 그로 인해 오타니는 주변과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 된다. 오래된 에인절스의 동료들도 “(오타니와 미즈하라) 둘이 24시간 붙어 있었다. 같이 사는 줄 알았다”라고 얘기한다.

기자들과의 사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역시 얼마 전 일이다. 게임을 앞두고 도어 스테핑 형식으로 보도진과 마주했다. 최근 활약 외에도 부인에 대한 사적인 질문까지 나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길어진다.

약속한 15분이 지났다. 홍보 스태프가 “여기까지…”라며 종료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오타니가 “헤이, 헤이”라며 서둘러 막는다. 자신은 괜찮다며 질문할 시간을 더 주자는 뜻이다. 기자들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오타니에게 일어난 최고의 일”

며칠 전이다. 로버츠 감독이 한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거기서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즈하라 통역) 그를 제거했다. 그 후에 쇼헤이는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내 생각에는 그게 그 친구에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다. 정말이다. 이제 그와 팀원들 사이에는 더 이상 완충장치가 없다. 더 이상 코치나 프런트 직원들과 사이에 간격이 사라졌다.”

로버츠의 말은 계속된다.

“이제 우리는 일대일로 대화를 나눈다. 전력 분석 회의에 쇼헤이도 분명히 참석한다. 각종 보고에 대해 토론도 한다. 그의 영어는 환상적이다. 그런 것들이 최근의 플레이에서 일종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그는 요즘 직접 운전해서 야구장에 나온다. 처음이다. 당연하지만, 그에게는 큰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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