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에 찬 눈빛, 큰 키, 전체적인 몸 비율에 비해 작은 얼굴 등 에녹은 그야말로 연예인 중의 연예인이다.
첼로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동굴 저음,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올라가는 고음에 폭넓은 음역대까지 갖춰 뮤지컬계의 ‘꽉 찬 육각형 인간’이란 별칭이 따라다닌다.

18년 차 뮤지컬 배우에서 뮤트롯킹으로 거듭난 에녹을 만났다.
2007년 뮤지컬 <알타보이즈>에서 루프 역으로 데뷔한 에녹은 노래뿐 아니라 사람을 매료하는 연기, 현란한 춤 솜씨 등 3박자를 모두 갖춰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로 거듭났다.
<록키호러쇼> 브래드 역, <로미오 앤 줄리엣> 머큐시오 역, <달콤한 나의 도시> 태오 역, <모차르트!> 쉬카네더 역, <레베카> 잭 파벨 역 등 작은 조연에서부터 <경종수정실록>에서 경종 역, <레베카> 막심 드 윈터 역, <안나,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역, <사의 찬미> 사내 역, <마타하리> 아르망 역 등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농익은 연기로 주연급을 맡으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대스타지만 대중에게 얼굴을 각인한 것은 2023년 경연 프로그램인 MBN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해 트로트 가수로 변신을 꾀하면서다.
이후 에녹은 뮤지컬과 트로트의 왕좌에 오르며 뮤지컬, 트로트, 왕의 합성어인 ‘뮤트롯킹’으로 거듭났다.
“몇 년 전 부모님께서 트로트의 인기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던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아들도 저기 나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뮤지컬 무대에 매진하느라 부모님 말씀을 흘려듣고 말았어요. 나이 40대에 접어드니 부모님 말씀이 계속 귓가에 맴돌고 제가 TV에 얼굴을 비추면 좋아하실 모습이 눈에 선하더라고요.
뮤지컬은 무대에서만 관객을 만날 수 있지만 가수로서는 제 매력을 더 폭넓게 보여드릴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40대 초반이란 나이가 되니 늦어지면 더는 다른 도전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스로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부모님은 물론 팬들에게는 제가 가진 더 많은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에녹은 2023년 MBN <불타는 트롯맨>에 도전하면서 ‘예선만 통과해도 좋겠다’는 가벼운 생각과 함께 한편으론 자신이 직접 출연을 신청할 만큼 절박함도 있었다.
뮤지컬 배우만이 가진 이미지를 위해 소속사에서 반대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소속사는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불타는 트롯맨>에서 톱 7에 안착했고 이어 2025년 <현역가왕2>에서 톱 3에 오르며 대세 중의 대세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매일의 시험대에서 배운 삶의 자세
“무대는 매일 새로운 시험대지만, 저는 그 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이제는 트로트 가수가 되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에녹.
18년 차 뮤지컬 배우에서 신인 트로트 가수가 되려는 도전은 에녹에겐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에너지, 진심을 노래에 담는 표현력만큼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독보적이다.
에녹은 “큰 범주에서 보면 뮤지컬도 세분화된 여러 장르를 한 울타리로 엮어놓은 것”이라며 “뮤지컬에도 다양한 창법이 있어 트로트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뮤지컬 발성 훈련법, 표현력과 가사 전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이런 점들을 뮤지컬과 트로트의 다른 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트로트 무대에서 나만의 장점으로 승화하려 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에녹이 펼치는 무대는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서사가 느껴진다. 눈빛부터 손끝까지 에녹만의 감성이 묻어난다.
KBS2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부른 주현미의 ‘짝사랑’ 무대는 단순히 트로트 커버가 아니라 연기와 노래를 겸한 뮤지컬적 감성으로 재해석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근 에녹은 뮤지컬 무대보다 콘서트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MBN <현역가왕2> 톱 7에 오른 가수들과 함께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창원, 전주, 대전, 안양, 고양, 인천, 광주, 울산, 수원 등에서 <현역가왕2>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에녹은 콘서트 무대를 준비하며 또다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대형 무대이기에 에녹은 자기만의 색깔을 놓치지 않으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정적인 무대 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발성, 멘트, 몸짓 등 작은 포인트 하나라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매 순간을 준비 중입니다. 잠깐 등장하더라도 ‘에녹이 인상 깊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에녹은 무엇을 하더라도 ‘에녹이 하면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고, 팬들이 늘 기대된다고 할 만큼 뻔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고 싶단다.
그는 무대를 “매일 새로운 시험대”라고 표현했다. 공연마다 2~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중에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고 그 부담감은 상당했다. 에녹은 자기 나름대로 흐름을 읽고 자신만의 무대 감각을 키워왔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안겨줬다.
그는 무대를 “호랑이 등에서 자아실현하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긴장되고 또 치열한 자리인 만큼 처음에는 그저 버티자는 마음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 무대를 살아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단다.
또 그 안에서 어떻게 위기에 대처할지 알게 됐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순발력까지 얻었다. 무엇보다 “무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 됐다고 설명한다.
“무대를 100% 살아낸다는 건, 그 안에서 나를 시험하고 또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대는 관객과 짧은 시간에 소통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제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할 때 무대야말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매일매일 무대에 오르면서 그날의 컨디션, 연습량 등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무대를 살아남는다’는 본능에 더해 ‘관객이 후회하지 않게 하겠다’는 책임감도 있다.
“콘서트 타이틀처럼 ‘현역가왕’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무대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오시는 분들이 공연을 보고 후회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

팬은 ‘내 편’, 평생의 응원군
요즘 에녹은 감사의 삶을 되새긴다. 그런 에녹의 마음에서 언제나 중심을 차지하는 존재, 바로 팬덤 ‘화기에에’ 덕분이다.
에녹은 팬클럽 ‘화기에에’를 ‘내 편’이라고 부른다. 에녹은 “오랜 무명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분들 덕분”이라며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연장을 찾아주시고, 다양한 라인업 속에서도 저를 알아봐주셨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몰랐어요. 무대가 주어지는 것도, 누군가 가 나를 불러주는 것도 얼마나 귀한 일인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죠. 지금은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무대도, 사람도, 그 순간도. MBN <현역가왕2>에 출연해 3위를 하며 팬들의 존재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또 제 이름을 알리기 위해 팬들이 스스로 홍보하러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동했어요. 그 노력에 보답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저 역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건 누군가가 제 무대를 봐주고, 찾아와주고, 응원해준 덕분이에요.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새로운 곡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자신이 작사한 곡들을 담아 첫 번째 앨범을 출시했고 설운도에게 받은 ‘오늘밤에’란 곡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올해 안에 에녹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곡을 담은 앨범을 출시할 예정라고 설명했다.
스스로가 겪고 느꼈던 내용, 인생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곡을 발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함께 노래하고 싶은 아티스트로 소프라노 임선혜를 꼽았다.
“임선혜 소프라노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분인 것 같아요. 그분과 함께 공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 조금 더 성장하고자 합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에녹은 한 줄로 자신의 다짐을 정리했다.
“지금 하는 것 하나하나가, 만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합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에녹이 무대를 ‘살아남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를 ‘살아내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
에녹은 준비된 아티스트다. 포브스코리아 인터뷰를 앞두고도 지면이 헛되이 쓰여선 안 된다며 성심성의껏 인터뷰 답변을 준비해왔다. 인터뷰 중 에녹은 이런 말을 했다.
“사회 초년생이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가지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듯,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떻게 해야 대중과 함께하는 아티스트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답은 결국 ‘진심’과 ‘성장’에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천재가 아니라 계단식으로 성장해온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잘했던 건 없어요. 무대 위에서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그걸 극복하려고 더 연습했어요. 아마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여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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