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쓰레기? 우리 애 ‘밥’으로 줘요…‘반려 미생물’과 슬기로운 가사생활 [ESC]

한겨레 2024. 9.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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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음식물 처리 미생물 ‘키우는’ 사람들
미생물 배양된 흙에 음식물쓰레기 넣으면 소멸되고 3%만 흙으로
“갈갈이 체하지 않게 조금씩 주자”…반려동물처럼 이름 짓고 돌봐
냄새 안 나고, 발생한 흙은 비료로도…지자체, 가정용 지원사업 중
지난 24일 경기도 성남 분당에 사는 신정윤씨가 음식물 쓰레기를 미생물 처리기에 넣고 있다. 신정윤 제공

“오늘은 집에서 먹으려고. 미생물한테 밥 줘야 돼.” 오랜만에 만난 1인 가구 이상미(36)씨에게 저녁 식사를 하고 갈 것을 제안하자, 이씨가 한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묻자, 이씨는 “미생물이 음식물을 분해하는 쓰레기 처리기를 구입해 사용 중인데, 미생물에게 너무 오래 ‘밥’을 주지 않으면 폐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미생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이름은 자기 이름의 ‘미’와 미생물의 ‘미’를 따서 지은 ‘미미’라 덧붙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미미뿐 아니다. 1인 가구뿐 아니라 갓 결혼한 신혼부부부터 중장년 가정까지 미생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는 이미 상당히 많이 보급되어 있었다.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를 살펴보면 쓰레기 처리기 속 미생물에게 이름을 붙여줘 정든 ‘반려 미생물’처럼 대하는 사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노동 생략”

가정 내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는 크게 미생물 분해 방식, 건조 분쇄 방식, 습식 분쇄와 미생물 분해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나뉘는데, 이 중 미생물 분해 방식이 가장 친환경적이라 평가받는다.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로 생명 유지를 위해 에너지원과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음식물 쓰레기에는 이런 에너지원과 영양분이 포함돼 있어 미생물은 음식물 쓰레기를 소비하고 더 작은 분자로 분해하거나 미생물의 세포를 늘려가는 데 활용한다. 이러한 원리를 활용한 미생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미생물이 배양된 흙에 넣으면 미생물이 발효 분해시켜서 약 97%까지 소멸시키고, 남은 3%는 흙으로 환원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만 뼈, 가시, 씨앗 등 딱딱한 것은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하고, 김치 등 맵거나 염분이 많은 음식물은 물로 씻어서 처리기에 넣어야 한다. 또 섬유질이 많은 줄기나 뿌리 채소류는 분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잘게 잘라서 처리기에 넣어주는 게 좋다.

처리기에 음식물을 넣어주지 않으면 미생물이 포자 형태로 돌아가 잠을 자기 때문에 한달까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넣지 않아도 괜찮고, 여기서 발생한 흙은 비료로 쓸 수도 있다. 미생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린클 관계자는 “자사 브랜드 기기로 한정했을 때 올해 현시점 2021년과 견줄 때, 3년 만에 판매량이 약 36% 상승했고, 대기업을 비롯해 신생 경쟁업체들도 계속해서 등장하는 상황이라 앞으로 미생물 처리기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윤씨가 미생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의 흙을 고르고 있는 모습. 신정윤 제공

결혼 1년차 신혼부부인 김혜성(38)씨는 결혼 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내놓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후엔 ‘가사 업무 효율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미생물 처리기를 구입했다. 김씨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둘 필요가 없으니 냄새가 나지 않아 좋고, 무엇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했다. 김씨는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 ‘단아’라 ‘단’ 자 돌림으로 처리기에 ‘단지’라고 이름을 붙였다”며 “음식이 상하면 속상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하는데, ‘아, 그래도 단지 줄 게 생겼네’ 싶어서 안심이 되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다만, ‘단지’는 생물이라 신경 써줘야 할 점도 많다고. 그는 “우리 집은 치킨 먹을 때 오돌뼈를 안 먹는데, ‘단지’는 연골을 분해하지 못해 뼈와 살을 일일이 발라 연골은 일반 쓰레기로 따로 처리한다. 특히 집에서 매운탕은 절대 못 먹는데, 생선 가시를 발라줘야 할 뿐 아니라 매운 양념은 미생물이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생명을 돌보는 세심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관리 방법에 대해 김씨는 “두달에 한번씩 미생물이 있는 흙이 넘치면 3분의 1 정도를 걷어낸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 분당에 사는 채식주의자 신정윤(37)씨는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재택근무를 하며 삼시 세끼를 집에서 챙겨 먹었다. 이때 미생물 처리기를 구입해 만 3년째 이용 중이다. 신씨는 기기를 구입한 가장 큰 이유로 “지구 환경을 위해서”를 꼽았다. ‘염분이 가득한 음식물 쓰레기로 비료와 사료를 만드는 게 과연 환경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있었던 신씨는 미생물 분해 과정을 거치면 쓰레기가 자체적으로 소멸된다는 걸 알게 됐고,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그는 “채식을 해서 그런지 냄새도 거의 없다”며 “섬유소가 많은 줄기나 수박 껍질, 매운 것 등은 잘 소화하지 못한다고 해 걱정했는데, 소량 잘라서 주면 문제없다. 청양고추도 잘만 먹더라. 그렇게 예민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딱 하나 ‘쫀드기’는 소화를 못 하더라”고 덧붙였다. 신씨는 고양이 모래화장실에서 용변을 걸러내는 데 쓰이는 작은 삽을 구매해 채소 꼭지 등 미생물이 분해시키지 못하는 단단한 부분을 골라내면 편하다며 ‘꿀팁’을 공유했다. 최장 3주까지 집을 비워봤으나, 음식이 안 들어가면 미생물이 알아서 포자 상태로 돌아가 잠을 자기에 오래 굶겨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액상형 미생물 ‘하이브리드 방식’도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조시욱씨 집에 있는 미생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은 모습.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서울 강남구에 사는 조시욱(35)씨는 결혼 선물로 미생물 처리기를 받았다. 결혼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라 요즘 결혼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다고 한다. 조씨는 “미생물 방식은 건조분쇄기와 달리 소음이 없어 좋고, 한번 구입하면 미미한 전기요금 외엔 추가 비용 들어갈 일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미생물을 추가 구입할 때만 비용이 드는데, 1년 동안 추가 비용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생물을 잘못 돌봐 폐사할 경우에만 미생물을 추가로 구입한다고 한다. 조씨 부부는 집안일의 일손을 덜어주는 가전에 이름을 붙였는데, 제습기는 ‘뽀송이’, 음식물 처리기에는 ‘갈갈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래 굶겼다 싶으면 ‘갈갈이’에게 단순 탄수화물인 빵 조각을 잘라 던져준다. “갈갈이 밥 줘야 돼”라거나 “체하지 않게 조금씩 주자” 같은 식으로 생명체를 다루는 화법도 기본이다.

그런 그도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실수로 고추장을 버렸는데 갈색이던 미생물 흙 색깔이 완전히 검은색이 되더라. 탈취와 제습 버전으로 해두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나흘 정도 두니 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화를 전했다. 생명체를 ‘케어’해야 하는 수고로움에도 조씨는 “초파리 등 벌레가 꼬이거나 냄새날 일이 없어 앞으로도 쓸 예정”이다. 다만 그는 “집들이를 하거나 냉장고 정리를 할 때 대량의 쓰레기가 나오면 소분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미생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에 대해 박원근 건국대 생물공학과 교수는 “음식물 쓰레기는 환경적 측면에서 음식물 폐기물 문제, 수질오염 문제, 하수처리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미생물 처리기는 수질·하수 처리 문제는 없이 음식물 쓰레기의 양을 줄이고 기존 음식물처리장의 역할을 각 가정이 나눌 수 있다는 측면에서 친환경적이고 권장할 만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생물 처리기의 또 다른 방식으로는 디스포저(음식물 쓰레기를 잘게 부숴 물과 함께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기구)를 싱크대의 하수구와 연결해 분쇄한 뒤 액상형 미생물이 분해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있다. 다만, 하이브리드 방식은 환경부 고시에 따른 ‘주방용 오물분쇄기 인증’과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 따른 안전인증(KC)을 받은 제품만을 사용해야 하니, 인증을 받은 제품인지 구입 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박순혜씨 집에 있는 싱크대의 하수구와 미생물 처리기가 연결된 하이브리드 방식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지난해 서울 강남구 신축 아파트로 이사하며 다른 여러 세대와 미생물 음식물처리기를 공동구매해 사용하고 있다는 박순혜(63)씨는 싱크대의 하수구와 미생물 처리기가 연결된 모델을 쓰며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말한다. 박씨는 “종량제 봉투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을 땐 모아두어야 하니 냄새도 나고 번거로웠는데, 설거지하며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하수구에 넣으면 알아서 분쇄한 뒤 튜브를 통해 미생물 처리기로 내려가 편하다. 환경부 승인을 받은 기기라 하수 오염 걱정도 덜었다”고 했다. 다만 박씨는 “분쇄하면서 물을 공급해줘야 하니, 설거짓거리 없이 과일 껍질 등만 버릴 땐 물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6개월마다 액상형 미생물을 주입하면 돼 관리에 별다른 어려움도 없다고 한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황호림(47)씨는 2020년부터 미생물 처리기를 사용한 얼리어답터다. 3인 가구인 황씨는 “세명이 하루 세끼를 해 먹어도 음식물 처리하는 데 충분하지만, 이번 추석엔 친척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더니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와 결국 쓰레기봉투를 사서 따로 버렸다”고 말한다. 하이브리드 방식에 대해 박원근 교수는 “미생물 처리를 통해 영양분 배출량이 그만큼 줄어들 거라서 기존 오물 분쇄기보다는 나은 처리 장치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분해 못 한 물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어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은 줄어도 하수처리 측면에서는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음식물 폐기물, 가정 내에서 감량돼야

박순혜씨가 싱크대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윤동길 실장

기후위기의 시대, 재활용과 일회용품 덜 쓰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음식물 쓰레기 감축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매립, 소각, 퇴비화, 바이오가스화 등 네가지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 중 가장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알려진 퇴비화에서만 이산화탄소의 수십배에 이르는 온실효과를 가진 메탄을 1톤당 4㎏씩 발생시킨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에서는 가정 내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구입 비용으로 30만~50만원가량의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에서는 2022년에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가정용 보급 지원사업을 시행했고, 지난해와 올해에는 도봉구·용산구·중구·서대문구 등에서 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음식폐기물관리팀 관계자는 “내년에는 서울시도 지원사업을 재개하려 준비 중”이라며 “음식물 폐기물류는 기본적으로 모든 정책의 목적을 ‘감량’에 둔다. 가정 내에서 감량이 돼야만 수집 운반 및 처리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과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고, 환경을 보호하며 장기적으론 기후위기도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도봉구청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올해 4천만원의 예산을 책정해 음식물 처리기 구입 금액의 50%, 최대 40만원까지 지원했다. 100가구 정도 지원을 마쳤고, 내년에는 지원을 더 확대하려고 예산을 잡아놨다”고 밝혔다.

환경 오염에 대한 위기감과 더불어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 로봇 청소기 등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가사를 추구하는 최근의 가정문화가 맞물려 미미·단지·갈갈이, 그 외에도 슬기로운 가사생활을 돕고 지구 환경을 지키는 수많은 ‘반려 미생물’들의 활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이예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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