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이 지상 전력 강화에 나서면서 한국 방산이 유럽 시장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K2 전차와 K9 자주포 대량 구매, 노르웨이와 에스토니아의 K9 도입 등 한국제 무기가 유럽을 휩쓸고 있죠.
하지만 유럽 방산 강국들이 이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습니다.
독일 KNDS와 이탈리아 Leonardo가 12월 16일 자주포 공동 개발을 전격 발표하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AGM 모듈과 이탈리아제 장륜 플랫폼을 결합한 차세대 자주포로 유럽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이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이탈리아 육군의 전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전역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냉전 종식 이후 '평화 배당'을 누리며 군축과 국방비 감축에 열중하던 유럽 국가들은 갑자기 현실적인 위협에 직면하게 됐죠. 이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올해 1월 국제 장갑 차량 회의에서 이탈리아 육군은 대대적인 전력 갱신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이탈리아 육군이 밝힌 갱신 대상은 주력 전차 아리에테(Ariete) 전차, 보병 전투차 Dardo, 다연장 로켓 시스템 MLRS, 그리고 자주포 PzH2000입니다.
Ariete는 업그레이드를 거치고, Leonardo와 Rheinmetall이 공동으로 Panther 전차의 이탈리아화와 현지 생산을 진행해 2035년까지 약 132대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링스(Lynx) 기반의 신형 보병 전투차는 2040년까지 무려 16개 변형에 총 1,050대를 조달할 예정이죠.
MLRS 대체용으로는 미국의 HIMARS 도입도 검토 중입니다.
유독 베일에 싸여 있던 자주포 갱신 계획
흥미로운 점은 다른 장비들의 갱신 계획은 비교적 명확한 반면, PzH2000 자주포의 갱신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 PzH2000을 업그레이드할 것인지, 추가로 더 구매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자주포로 교체할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였죠.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입증된 지상 발사형 화력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포병 부대를 확장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KNDS Deutschland와 Leonardo가 12월 16일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탈리아 육군용 이동식 포병 시스템을 공동 개발한다"는 내용이었죠.
핵심은 독일의 RCH-155에 탑재되는 AGM 모듈과 Leonardo의 장륜식 장갑 차량을 결합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이 PzH2000의 갱신 사업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AGM 모듈, PzH2000의 DNA를 이어받다
AGM 모듈의 가장 큰 강점은 PzH2000의 포탑 시스템과 높은 공통성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이미 PzH2000을 운용 중인 이탈리아 육군 입장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선택이죠.
정비 인프라, 운용 노하우, 탄약 호환성 등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Leonardo가 제공하는 플랫폼(실질적으로는 인수한 Iveco의 플랫폼)을 결합하면 이탈리아 방산 업체들에게도 상당한 이익이 돌아갑니다.
이른바 '자주 있는 타입의 제안'인 셈이죠. 외국 기술과 자국 산업을 적절히 조합해 기술 이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입니다.
장궤식인 PzH2000을 장륜식 자주포로 완전히 대체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이탈리아 육군에게는 매력적인 옵션임에 틀림없습니다.
유럽을 넘보는 독일의 야심찬 전략
독일이 이번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탈리아 시장만이 아닙니다.
독일은 이미 RCH-155를 229대 발주할 계획을 세웠고, 영국도 RCH-155 도입을 약속한 상태입니다.
스페인 육군 역시 K9과 AGM 모듈, 그리고 HX3를 조합한 장륜식 자주포(비장갑) 조달을 검토 중이죠.

독일의 전략은 명확합니다. RCH-155라는 완제품을 팔거나, AGM 모듈과 각국의 선호에 맞춘 플랫폼을 조합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는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 생산해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한국식 접근과는 다른 방식이죠.
각국의 정치적 요구와 산업적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면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유럽식 전략인 것입니다.
한국 방산, 정말 위기인가?
그렇다면 폴란드에서 대성공을 거둔 한국 방산이 정말 위기에 처한 걸까요?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폴란드는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대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이는 이미 진행 중인 사업입니다.
노르웨이와 에스토니아의 K9 도입도 확정됐죠.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의 움직임은 분명 경고 신호입니다. 유럽 방산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특히 AGM 모듈처럼 모듈화된 시스템을 각국의 플랫폼과 조합하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매우 매력적입니다.
자국 방산 업체에 일감을 줄 수 있고, 기술 이전도 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검증된 독일 기술의 신뢰성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치열해지는 유럽 방산 시장의 미래
결국 유럽 방산 시장은 앞으로 더욱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 그리고 실전 검증된 성능으로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반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업체들은 기술적 우위와 정치적 유연성, 산업 협력이라는 카드를 내밀고 있죠.

이탈리아가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유럽의 재무장 붐이 한국 방산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라는 사실입니다.
폴란드에서의 성공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유럽 각국의 복잡한 정치적 요구와 산업적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자주포 공동 개발은 그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