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법을 몰랐던 공룡센터, 파워 UP!

김종수 입력 2023. 6. 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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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샤크‧던컨‧커리…, 그리고 요키치 UP②

 

‘단순하지만 강력했던 선수!’ 한창 NBA 코트를 호령하던 전성기 당시 ‘공룡 센터’ 샤킬 오닐(51‧216cm‧147kg)에 대한 평가다. 신장의 스포츠 농구에서 키가 크면 무조건 유리하다. 하지만 NBA같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는 단순히 키만 크다고 통하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기본기는 당연하겠고 거기에 더해 탄탄한 체격도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신장에서 밀리는 쪽이 장신자를 수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몸싸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키가 커도 몸싸움에서 밀려버리면 정상적인 밸런스를 유지하기 힘들고 더불어 장점인 신장의 이점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실제로 엄청난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키값(?)을 제대로 못한 선수도 역대로 적지않았다.


키가 크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지만 거기에 더해 장점을 극대화해줄 기동성과 힘이 받쳐주지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둘중의 하나는 제대로 가지고 있어야 존재감있는 빅맨으로 거듭날 수 있다. 유연성과 손끝 감각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오닐은 ‘고대 괴수’ 윌트 체임벌린과 함께 그런류 선수의 끝판왕같은 인물로 꼽힌다.


오닐만큼 키가 큰 선수는 많지는 않아도 간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키에 근육질의 탄탄하고 두꺼운 하드웨어까지 겸비한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신체조건에 걸맞게 엄청난 파워의 소유자인지라 비슷한 장신자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기 일쑤였다. 힘은 좋지만 자신보다 작은 선수는 신장의 이점을 이용해 상대하고, 키는 커도 마른 체형의 선수들은 몸싸움을 통해 날려버렸다.


활동 범위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닐이 포스트 인근에서 버티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대팀이 느끼는 위압감은 상당히 컸다. 골밑 힘대결에서 무조건 한수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오닐 한명을 상대하기위해 경기 내내 두세명이 달라붙어야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 전략을 통째로 바꿔야되는 경우도 생겼다.


동시대에 4대 센터로 함께 활약했던 선수들과 비교해 오닐의 공격옵션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나이지리아 흑표범’ 하킴 올라주원, ‘해군제독’ 데이비드 로빈슨, ‘자메이칸 킹콩’ 패트릭 유잉 등은 사이즈도 좋지만 하나같이 슛거리가 길고 다양한 공격옵션을 자랑했다. 로빈슨은 가드의 스피드로 페이스업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포스트 인근에서 펼치는 올라주원의 다양한 스텝과 현란한 움직임은 같은 센터는 물론 타포지션 선수들까지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거기에 비하면 오닐의 공격 패턴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미드레인지 등은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슈팅 옵션 자체가 없었으며 슛거리도 지극히 짧았다. 한마디로 곹밑 인근으로 득점루트가 한정된 선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닐의 공격력은 당대 최고로 꼽혔으며 역대급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자칫 ‘반쪽 선수’가 될 수도 있었음에도 극강의 장점으로 단점을 덮어버린 케이스다.

 


오닐의 거대한 사이즈와 신체능력은 어린시절부터 타고났다. 범죄자였던 친부가 친권을 포기한가운데 오닐은 어린 시절부터 군인 출신 양부의 손에서 컸다. 군인이라는 직업특성상 이사도 잦았고 심지어 몇년씩 타국에서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독일에 있을 때였다. 군인들과 농구 시합을 했는데 당시 누구도 오닐을 당해내지 못했다.


2m에 가까운 신장에 운동신경이 좋다는 것만으로도 농구좀 한다는 군인들이 당해낼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높이와 몸싸움에서부터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오닐이 너무 잘하자 놀란 군인이 "너는 계급이 뭐냐?"고 물었고 이에 오닐은 "중학생인데요"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고등학생 시절 2년 동안 소속팀의 말도 안되는 성적(68승 1패)을 이끌며 주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았던 것을 비롯 루이지애나 주립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2년 연속(1991~92년)으로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에 뽑히고 올 아메리칸 중 한 명으로 지명되는 등 최고의 기대주로 명성을 떨쳤다.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첫해부터 신인상을 받으며 괴물의 등장을 알렸고 통산 파이널 우승 4회(3연패 포함), 3년연속 파이널 MVP, 정규시즌 MVP, 퍼스트팀 8회, 올스타 15회, 올스타전 MVP 3회, 득점왕 2회 등 굵직한 커리어를 남기며 전설로 이름을 남겼다.


사실 수상 성적은 한창때 오닐의 괴물 포스에 비하면 약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세 번의 파이널 MVP를 받으며 팀을 3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던 LA 레이커스 시절은 그야말로 리그의 지배자 그 자체였다. 당시 오닐은 증량을 통해 140kg가 넘는 몸무게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지방률은 10%를 밑돌았다고 한다.


그러한 엄청난 몸뚱이를 가지고도 느리지 않았으며 유연성, 운동능력에 더해 BQ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거기에 체력 또한 매경기 35분 이상을 소화할 정도로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았고 이를 지능적으로 활용할줄 알았다는 점에서 오닐은 큰 선수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각팀마다 4~5번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기본적으로 신체조건이 뛰어난 선수들이다. 신장은 물론 힘도 좋아야 한다. 그런 선수중에서도 오닐은 군계일학이었다. 역대 최고를 다툴정도의 페인트존 장악력을 가지고 있는지라 포스트 인근에서 오닐이 공을 잡으면 일대일로 막을 수 있는 센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당연스레 도움수비가 들어와야했고 더블팀은 기본 트리플팀도 수시로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닐은 정면에서 힘으로 장신숲을 뚫어…, 아니 파괴하면서 상대 골밑을 초토화시켰다. 때문에 오닐과 자주 맞붙을 수 밖에 없는 서부 컨퍼런스 팀들은 오닐의 몸싸움을 잠시라도 버티어줄 몸빵형 선수를 수급하고자 애를 썼다.


결국 오닐 한명으로인해 많은 팀들은 선수 구성에 변화를 가져가야 했고 실제 경기에서도 평소와는 다른 전략을 펼칠 때가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오닐 효과'라고 할 수 있었다. 역대로 봐도 골밑 인근에서의 단조로운 공격패턴만으로 이정도 위력을 발휘한 센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단순한 공격기술, 좁은 공격범위 등은 오닐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나마 자유투가 좋지않아 '핵어샤크(Hack-a-Shaq)'라는 오닐 하나만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이 나오기도 했는데 도대체 오닐이 얼마나 답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싶을 정도다. 각종 농구 관련 커뮤니티 등을 보면 '00선수에게 00이라는 옵션이 붙었다면?' 등의 가상 설문이나 논쟁성 글이 종종 나온다.


오닐에 대해서는 간단하다. '슈팅능력을 갖췄다면? 좀 더 공격옵션이 많았다면?'등의 가정이 붙지않을까 싶지만 실상은 다르다. '자유투가 00%를 넘어가는 오닐이라면?'등의 글이 여전히 많다. 자유투가 좋았던 오닐이라면 다른 쪽에서의 이런저런 플러스 알파는 필요없다고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지난화에서 언급한 마이클 조던이 ‘이 구역에서 제일 독한 놈은 나다’라며 강한 승부욕으로 상대팀을 짓눌렀다면 오닐과 맞서본 상대 선수들은 ‘뭐…, 저런 놈이 다 있어?’라는 심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한창때 오닐은 소속팀에 엄청난 ‘파워 UP!’을 안겨준 선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오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면에서의 힘 대결 만큼은 어떤 팀에게도 밀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동료들이 느끼는 든든함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수비수를 2~3명씩 끌고다니는 특성상 동료들의 ‘스탭 UP!’도 당연스레 뒤따랐을 것이다. 오닐은 공격 스타일은 투박했지만 패싱 센스도 상당한 편이었다. 리그내 어떤 선수를 가져다놓아도 그럴듯한 ‘원투펀치’가 바로 연상되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AP/연합뉴스, 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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