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야구장의 수많은 장면들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화려한 수비, 극적인 역전 홈런, 대기록의 순간 등등.
이런 플레이에 열광하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였겠지요.
경기에서 나온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제 눈을 사로잡았던 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한 어린이의 시구였습니다. 투수판으로부터 몇 걸음 앞에서 던지기는 했는데 등의 활용도 완벽했고, 하체에서부터 올라와서 손끝까지 이어지는 키네틱-체인이 거의 완벽하게 연결이 되면서 공에 정확하게 힘을 실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오른팔의 내전 동작도 야구선수의 동작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도대체 이 어린이는 누구지?’
구단의 자료에도 별다른 소개가 없었고, 현역 리틀 혹은 학생 야구선수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구단이 후원하는 후원처의 어린이고 A선수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이 소개의 전부였습니다.
시구 이후 며칠이 지나고 저는 그 어린이가 팬이라고 하는 A선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선수가 들려준 이야기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몇 년 전, A선수를 포함한 구단의 선수들이 후원처에 봉사를 하러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이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어린이는 지금부터 B라고 하겠습니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잠깐 짬이 나서 A는 B에게 캐치볼을 하자고 했습니다.
둘은 공을 던지고 받았습니다. 몇 차례 B가 공을 A에게 던지는데 A의 느낌에 B가 던지는 공들이 심상치가 않더라고 합니다.
“너 혹시 야구를 배웠니?”
“아니요.”
“그럼 어떻게 이렇게 잘 던지니?”
“TV 중계방송을 보면서 흉내를 냈어요.”
이렇게 B는 대답했다고 합니다.
A는 B에 재능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재능이 있는 거예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그 정도로 던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추후에 B가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다 없다를 단정 지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분명히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B의 재능을 간파한 A는 후원처의 선생님에게 문의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어머님(B를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문의를 했죠. 이 아이가 재능이 보이는데요. 혹시 이 시설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하는 점을 말이죠.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어머님께서 돌보고 있는 아이가 B만이 아니니까요. 누군가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B를 단독으로 케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학교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이 시설이 있는 지역의 근처에 야구를 하는 학교가 없어요. 만일 학교에서 야구를 하려면 전학을 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 시설에서 나가야 하고요. 정말 난감한 문제더군요.”
봉사 활동을 했던 당일 A선수와 B는 눈물의 이별을 했다고 합니다.
“서로 끌어 앉고 울었어요. B가 헤어지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A는 B에 대해서 수많은 생각을 했습니다다.
“후원에 대한 생각부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봤는데 ‘야구’와 관련해서는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날 B가 시구 오는 것도 며칠 전부터 들어서 당연히 알고 있었죠. 원래는 글러브를 좋은 걸로 하나 사줘야 하나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만약에 글러브를 가졌다가 B의 마음에서 야구에 대한 마음이 또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면 어떻게 하나요? 그렇다고 B가 야구를 제대로 배울 수도 없는 환경인데요. 불을 질렀는데 실질적으로 이런 기관의 정책에 대해서 저는 아무것도 손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글러브가 아닌 다른 걸 선물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물었습니다.
“캐스터 님, 놀라셨죠? B가 던지는 거 보고요. 중계 들었어요. 진짜 깜짝 놀라시던데요. 그런데 저는 별로 안 놀랐어요. 그렇게 잘 던질 거라는 걸 알고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순철 위원님께 이 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개인적인 후원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그냥 단순하게 측은지심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야. 만약에 네가 후원을 했어. 그런데 이 친구가 진짜 재능이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이 친구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해. 그러면 전지훈련 포함해서 선수 한 명 키우는데 드는 돈이 일이십만 원이 아니야. 그때까지도 쭉 책임을 질 수가 있어?”
그 반대의 경우도 우려가 되기는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재능이 없다면 더 큰 일이야. 후원하다가 재능 없다고 그러면 후원 그만둘 거야? 그럴 때 아이가 입는 상처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니?”
꿈이 있는데도 펼칠 수가 없는 사정이 매우 안타까워서 B를 보살피고 있는 기관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B는 현재 야구를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바우처를 줘요.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스포츠 바우처가 있거든요. B군도 그 바우처를 통해서 주 2회 야구 교실에 다니고 있어요. 리틀 야구 클럽이나 학교 야구는 아니지만 그래서 야구를 배우면서 B군이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향후 지원 방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아직 전례가 없기는 한데 사실 매우 어렵기는 합니다. 디딤 씨앗 통장(추후 설명) 포함해서 국가의 여러 지원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디딤 통장도 성인이 돼서야 쓸 수 있는 거고요. 그때가 돼서 직접 후원을 해주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쉽지 않기는 할 거예요. 그래도 저희는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 줄 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리틀야구연맹의 김수길 사무처장에게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런 환경의 어린이들이 만약 야구에 대한 꿈이 있다면 그 지역 리틀야구팀에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각 팀들은 모두 어린이들에 대한 픽업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설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케어의 범위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가 궁금합니다. 전국의 대부분의 팀들이 어린이들을 픽업하고 다시 데려다주는 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케어에 대해서 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연맹이 일괄적으로 정책을 정할 수 없는 클럽 회비에 대한 부분일 텐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해법은 찾을 수 있다고 김수길 사무처장은 말했습니다.
“회비의 경우는 각 클럽마다 경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저희가 관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만약 B군 같은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클럽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인천 남동구를 비롯해서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리틀야구단은 회비도 무료입니다. B군도 빨리 근처의 리틀야구단에 와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알아봤으면 좋겠네요.”
리틀 야구는 최고 학년이 중1입니다.
현재 야구교실에서 야구를 배우고 있는 B군이 만일 팀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리틀의 문을 두드린다면 비록 중 1까지지만 야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중 1까지가 일단의 기간 유예라고 볼 수도 있지만 꿈을 아예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만일 거기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다면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지요. 리틀 야구는 전국대회의 경우 TV 중계도 되는 콘텐츠니까요.
현시점에서 B학생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고, 또 국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환경의 어린이를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B군 같은 어린이가 전국에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숨겨진 재능들을 찾아내고 또 그들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많은 이들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호시설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국가의 디딤 씨앗 통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통장은 저소득층, 아동복지시설 보호 아동, 소년소녀 가장 아동들이 추후 독립을 할 때 쓸 수 있도록 수월하게 목돈을 만들기 위한 정부지원 저축 상품입니다.
납입액 5만원까지는 납입액의 두 배를 정부가 지원을 합니다. 한 달 최소 1000원부터 50만원까지 납입이 가능합니다. 정부 지원은 월 최대 10만원까지고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는 겨울의 초입에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