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이구아나, 뗏목 타고 태평양 건넜나

피지 이구아나는 무려 3000만 년 전 바다에 뜬 표류물을 타고 태평양을 장거리 횡단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B) 고생물학 연구팀은 미국 국립과학원(NAS)에 최근 낸 조사 보고서에서 고대 피지 이구아나속 생물이 식물로 된 부유물을 타고 북미에서 남태평양을 무려 8000㎞ 이동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피지 이구아나속이 멀리 떨어진 미국 남서부 도마뱀과 근연종인 이유를 추적해 왔다. 때문에 갈라파고스 바다이구아나부터 열대 카멜레온, 사막 도마뱀까지 약 2100종이나 되는 이구아나속의 계보를 들여다봤다.

UCB 사이먼 스카르페타 박사는 "두 종의 지리적 거리는 멀지만 유전적으로는 비교적 가깝다"며 "먼 옛날 미국 남서부 사막에 서식하는 파충류 무리가 부유물을 타고 약 1년 정도 만에 바다를 건너 피지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약 3400만 년을 살았다는 게 우리 결론"이라고 말했다.

피지 이구아나는 약 3000만 년 전 부유물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pixabay>

오세아니아 멜라네시아 동부에 늘어선 피지 제도는 약 34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됐다. 이곳 이구아나 계통이 그 조상으로부터 분기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3000만 년 전의 일이다. 이는 피지 제도를 만든 화산 활동이 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사이먼 박사는 "이구아나들의 태평양 횡단에 걸린 기간은 4~12개월로 추측되지만 우리 시뮬레이션에서는 2.5~4개월로 훨씬 짧게 나타났다"며 "이들은 아마 평평한 나뭇잎 등 천연 부유물을 타고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사는 "북미에서 피지로 건너간 이구아나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도중에도 적게나마 식량을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며 "또한 도중에 직면한 물 부족이나 고온 등 악조건을 견딜 만한 체력과 회복력도 갖췄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생물의 흔적이 많은 피지 제도 <사진=pixabay>

연구팀 이야기가 맞는다면 피지 이구아나속 조상들은 식물 부유물과 우연한 해류에 의해 미국 남서부에서 피지까지 무려 8047㎞를 이동한 것이 된다. 이는 육상 척추동물의 해양 횡단 이동 기록 중에서는 가장 길다.

사이먼 박사는 "피지나 통가 이외의 태평양 섬 어디서도 피지 이구아나속의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는 이구아나들이 미지의 방법을 이용해 직접 이동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지와 통가에 서식하는 이구아나 4종은 외딴섬에 격리돼 있음에도 서식지 파괴로 개체가 빠르게 줄고 있다"며 "반려동물로 키우려는 인간의 욕심까지 더해지며 이 귀중한 동물들은 조만간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Copyright © SPUTNIK(스푸트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