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게임질병 코드 첫 찬반 토론…"과잉 진료·사회적 낙인 우려"

문영수 2024. 9. 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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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 찬성 입장 측 "게임이용장애, 게임 자체 문제 아냐…낙인 효과 완화할 방법 찾아야"

[아이뉴스24 문영수 기자] 게임업계의 '뜨거운 감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놓고 찬·반 입장이 맞붙는 자리가 마련됐다. 등재 반대 쪽은 과잉진료와 사회적 낙인 효과를 우려했고, 등재 찬성 쪽은 게임이용장애가 게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며 낙인 효과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2일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를 논의하는 공청회가 여의도 전경련 FKI 타워 루비실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4개 의원실(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강유정 의원, 기획재정위원회 임광현 의원,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전진숙 의원)이 이 공동 주최한 이번 공청회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등재 여부를 두고 관계부처와 찬·반 대표 전문가들로부터 각 진영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를 논의하는 공청회가 12일 여의도 전경련 FKI 타워 루비실에서 열렸다. [사진=문영수 기자]

이날 현장에는 질병코드 도입 찬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이 모였다. 문체부를 소관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강유정 의원, 통계청이 피감기관으로 있는 기획재정위원회의 임광현 의원, 의료 정책을 담당하는 서영석, 전진숙 의원이 자리했다.

등재 찬성 측에서는 이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등판했다. 등재 반대 측에서도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장과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자리했다.

이영민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위한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고 등재시 사회적 파급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임이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연구 조사가 다수 존재하는 데다, 자칫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 등 이용자에 대한 낙인효과로 사회적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또한 질병코드 도입 시 2년간 총 게임산업에 8조8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총생산 감소효과 12조3623억원, 취업 기회는 8만명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이영민 과장은 "국내 상황을 고려한 국가표준분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향후 민관협의체와의 연계, 부처 및 전문가 의견수렴을 지속하고 게임이용장애 토론회와 세미나, 공청회 등을 개최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오는 10월 열리는 WHO-FIC 연례회의에 참석해 국제 동향을 파악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반면 김연숙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장은 질병코드 도입 여부는 민관협의체 논의와 국가통계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결정될 계획이라고 말을 아끼는 한편 "미국, 영국 등 각 국가들도 게임이용 과다 관련 현황 연구, 진단방법 개발, 효과적 개입 등 국민 건강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게임산업 활성화와 국민 건강 증진을 함께 강화하기 위한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정 통계청 통계기준과장은 현재 ICD-11 번역 등 기초 연구를 진행 중이며, ICD-11이 보건의료 현장의 큰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KCD 활용 기관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 국제 기준인 ICD-11은 KCD 10차 개정에 반영할 예정"이라면서도 "ICD-11에 신설된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국조실 주도 민관협의체 논의가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해 민관협의체 의결을 존중하며 KCD 10차 개정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등재 찬성 입장인 이상규 한림대학교 정신건강학과 교수는 'ICD-1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KCD 등재 필요성과 근거'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상규 교수는 "게임은 취약성을 지닌 이들이 접할 수 있는 잠재적 중독 대상 중 하나이며 현대인의 여가활동으로 보편화된 까닭에 관련 문제가 빈번히 보고돼 진단 준거가 빠르게 논의된 것"이라며 "게임이 우리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와 관련한 문제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신건강 지원체계도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게임이용장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이에 대한 오해와 낙인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은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한 편이며 이 또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대한 거부감을 유발하는 하나의 요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이용장애라는 정신과적 진단은 게임이 원인임을 의미하지 않으며 게임 자체에 대해 '좋다' 혹은 나쁘다' 등의 가치 판단을 부여하지 않는다. 게임을 '부적응적, 개인의 기능을 떨어트리는' 패턴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어떤 이들은 심지어 게임 중독 질병 등재가 '일상적인 취미를 질병화해서 새로운 의학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도'라는 음모론을 제시하기도 한다"며 "그런 음모론은 새로운 건강 상태가 개념화될 때 자주 등장한다. 여러 나라에서 도박, 게임 중독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건 사실이나 이러한 프로그램은 보통 원래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라 이미 세팅된 정신 건강, 약물 사용 장애 치료를 위한 자원과 서비스 내에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등재 반대 입장인 박건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뇌신경센터장은 질병 등재에 신중을 기하는 근거로 미국 중심의 DSM 체계에서 게임이용장애가 정식 장애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DSM은 △연구의 불충분성 및 정의의 모호성 △행동 중독의 모호성 △문화적 차이와 인식 △임상적 합의 부족 △개인차이와 상관관계 등의 요소로 인해 게임이용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건우 센터장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있다"면서 "자칫 모든 과도한 게임 사용이 질병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이는 실제로 게임 중독이 아닌, 단순한 일시적 과몰입이나 다른 문제의 증상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필요한 의료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문석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는 "게임이 게임이용장애의 직접적 원인인지, 그 피해나 비용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에 대해 입증된 근거가 부족하고 다른 정신질환 등 제3의 요인으로 설명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며 "현 시점에서 게임이용장애 현상과 관련한 인과관계에 대해 제한적인 이해와 지식의 한계를 WHO의 권위, 전문성의 권위, 정책적 관행, 주관적 가치, 신념으로 덮고 가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게임 이용자가 전체 국민의 60%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게임이용장애가 KCD에 등재된 이후 파급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게임이용장애의 과잉의료화 가능성과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강제적 셧다운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 기회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WHO는 지난 2019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ICD-11)을 진행하며 게임이용장애를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영역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하며 '6C51' 코드를 부여한 바 있다. 지속성과 빈도, 통제 가능성 등으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 플레이 행위가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게임 이용 장애로 판단한다는 등의 기준도 제시했다.

이 가운데 통계청은 내년 10월경 국내 질병분류체계(KCD) 10차 개정 초안 발표를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여부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논의할 시간이 불과 1년 남짓 남은 것이다.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 콘텐츠 산업의 막대한 피해를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반면, 보건복지부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에 국무조정실은 2019년 의견 조율을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했지만 5년이 지나도록 연구용역 외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문영수 기자(m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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