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재 대기업은 포기할래요”…청년 구직자 `지방 포비아`
청년들 "`연봉`보다 `정주 여건` 더 중요"
전문가 "지방도 '살 만한' 환경 위한 거점화 시급"
[이데일리 박동현 기자] “서울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지방에서 일하라고 해서 결국 그만뒀어요.”
지난해 하반기 국내 한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이모(26)씨는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도 잠시 이내 퇴사를 결심했다. 배정된 근무지가 이씨가 바라던 서울이 아닌 경남 창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년 가까이 대기업 입사를 위해 준비했지만 근무지가 서울과 너무 먼 지방이라 포기했다”고 이유를 전했다.
대규모 공개 채용이 시작되는 9월을 맞아 대기업을 비롯한 국내 다수 기업의 채용이 시작됐지만 이씨처럼 청년 세대의 지방 근무 기피가 커지며 지방 기업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청년 세대의 지방 외면은 단순 인력난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지방 소멸을 가속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청년이 지방을 기피하는 원인인 낙후된 거주 여건을 개선하는 등 도시 재편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기업에 합격하고도 지방이라서 입사를 꺼리는 경우는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경기도 성남에 본사를 둔 대기업에 합격한 한모(27)씨는 “성남 근무로 알고 있었는데 교육이 끝나니 최종 발령된 근무지가 경남이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규모는 작아도 중복 합격했던 서울 소재 중견기업에 갔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씨는 배치되자마자 이직을 결심하고 이듬해 결국 수도권에 있는 한 회사로 적을 옮겼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2년 실시한 ‘지방근무에 대한 청년 인식 조사’에 따르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지 묻는 항목에 청년들은 72.9%가 기피한다고 답했다. 이는 앞선 한씨의 사례처럼 대기업일지라도 지방이면 외면하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중견기업(50.2%)’의 선호도는 ‘지방 대기업(49.8%)’보다 높았다. 특히나 수도권과 비수도권 중 비슷한 수준의 회사라면 응답자의 98%가 수도권 소재 회사를 고른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의 거듭된 지방 기피에 지방 소재 기업은 규모가 있어도 구인난에 허덕인다. 울산 소재 중견기업 채용팀 직원 서모(29)씨는 “소위 명문대 출신의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싶어도 지방 기업에선 ‘고스펙자’일수록 이직 및 퇴사를 하는 비율이 높은 데다 지방이라고 입사를 포기하는 지원자도 늘고 있다”고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기업에서는 이렇게 수도권으로 몰리는 인재를 지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종 면접 때 ‘은근슬쩍’ 물어보는 등 궁여지책을 쓰기도 한다. 국내 자동차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한 김모(28)씨는 “공대 출신 지원자도 서울에서 근무하려고 구매나 경영 등의 직무에 지원하는 비율이 갈수록 느는 중”이라며 “지역에도 인재를 유치하려 수도권과 한번에 모집해 최종 면접 때 지방 근무도 괜찮은지 은근슬쩍 물어보기도 한다”고 밝혔다.
청년들은 교통과 인프라 등 열악한 지방 생활 환경을 지방 기피 원인의 1순위로 꼽았다. 올해 4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30의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의 비수도권 거주 의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수도권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정주 여건’이 41.2%의 응답을 기록해 2위인 ‘연봉(29.8%)’을 크게 앞섰다. 정주 여건에 필요한 인프라 우선 순위로는 교통(51%)이 가장 높았으며, 주거환경(47%)·의료(34%)·문화쇼핑(33%) 등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을 유치하기 위해 일자리와 인프라가 한곳에 모인 ‘도시거점화’ 형성을 강조했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금을 더 주는 것보다 낙후된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도시 규모를 줄이고 한 곳으로 집중시킨 일본의 ‘콤팩트 시티(밀집 도시)’처럼 지방에도 수도권 못지않은 인프라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도시거점화를 통해 교통, 병원, 일자리 등을 밀도 있게 형성해 지방에도 서울 버금가는 생활 여건을 만들어야만 청년을 붙잡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박동현 (parkd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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