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100% 출석률의 비밀은 ‘출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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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1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장. 오전 10시20분이 되자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이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371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를 개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수의직 공무원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김영기 도의원을 시작으로 8명의 도의원이 차례로 발언대에 올라 5분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이날 경기도의회는 오후 2시37분 임시회가 끝날 때까지 ‘갑질 행위 근절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비롯해 129건이나 되는 안건을 처리하는 등 숨가쁘게 의사일정이 이어졌다.
분주했던 단상 위 발언자들과 달리 본회의장 의석은 여기저기 빈자리가 많았다. 오전 11시20분 표결이 실시된 ‘행정사무감사 계획서’ 안건 처리 당시 재석 의원을 확인해보면, 의원 정수 156명 가운데 97명만 자리를 지켰다. 임시회 폐회 직전인 오후 2시31분 진행된 ‘어린이집과 유치원 유보통합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표결에서도 재석 의원은 103명에 그쳤다. 이날 표결 결과를 통해 확인된 본회의 재석 의원은 최저 78명(경기도여성가족재단 출연계획 동의안)에서 최대 107명(경기도교육청 학교급식의 잔식 기부 활성화 조례)이었다. 3분의 1 정도의 도의원들이 본회의 출석을 하지 않은 것이다.
■ 17개 광역의회 중 5곳만 공개
민선 8기 지방의회가 개원 1년을 훌쩍 넘긴 가운데 의원들의 상습적인 ‘불출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유권자들이 의원들의 직무 성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지표가 ‘회의 출석’인데 대부분의 지방의회는 출석률 자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공개된 출석률조차도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전국 17개 광역 지방의회의 누리집을 살펴보니, 출석률을 제대로 공개하는 광역의회는 서울과 인천, 대전, 울산, 충북 5곳에 불과했다. 강원도와 제주도 2곳은 누리집에 출석률을 공개하고 있지만 ‘반쪽 공개’에 그쳤다. 강원도의회는 누리집 첫 화면이 아니라 ‘의회소식-행정정보공개-의정활동공개’ 카테고리를 차례로 거쳐야 출석 현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출석률을 별도로 계산해 표기하지 않고 참석 일수 등만 공개해 이를 찾아본 시민이 직접 계산하지 않으면 알 수 없게 돼 있다.
제주도의회는 ‘알림마당-정보공개’ 메뉴에 본회의와 상임위가 끝날 때마다 출석률을 공개하고 있지만 ‘의원별 출석률’이 아니라 전체 의원 출석률만 뭉뚱그려 공개한다. 부산 등 나머지 10개 시·도는 누리집에서 의원 출석률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지방의회 의원 출석률을 공개하지 않는 양상은 광역의회뿐 아니라 기초의회까지 확인하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이처럼 지방의회가 주민들의 알권리를 외면하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6월 ‘지방의회 의정활동 정보공개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해 지방의회로 내려보냈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을 보면 ‘의원별 회의 출석률’ 등 3개 분야 23건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공개 방법으로는 주민들이 손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지방의회 누리집에 별도의 ‘의정활동 정보공개 메뉴’를 신설하고, 이 메뉴가 누리집 첫 화면에서 접근이 가능하게끔 배치하도록 했다.
조선희 부산시의회 주무관은 “일부러 출석률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직 누리집 개선 등에 대한 방향이 잡힌 게 없다 보니 기존에 하던 그대로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출석률이 비공개 사항도 아니고 시민들도 알권리도 있으니 공개해야 한다면 방침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 회의 1분만 있어도 ‘출석’
인정 출석률 비공개뿐 아니라 지방의회의 ‘눈 가리고 아웅’ 식 출석률 집계 방식도 문제다. 출석률을 누리집에 공개한 5곳 광역의회의 출석률을 확인해보면, 대부분 100%다. 대전시의회를 예를 들어 보면 22명의 의원 가운데 16명이 100%(본회의 기준) 출석했고, 1명(88%)을 뺀 나머지 21명 모두 90% 이상의 출석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회의 때마다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이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9월21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의 재석 의원은 많아야 100명 남짓한 수준이었지만 회의록을 확인해보면, 이날 출석으로 인정된 도의원은 145명이나 된다.
이처럼 지방의원들의 100% 출석률의 비밀은 ‘허술한 출석 관리’에 있다. 지방의회에서 출석은 회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회의장을 한번이라도 다녀간 것을 기준으로 한다. 온종일 회의에 참석하든 1분만 있든 똑같이 ‘출석’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지방의회 출결 관리에는 ‘지각’이나 ‘조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이 탓에 회의가 시작된 뒤 눈도장을 찍고 ‘출튀’(출석 후 자리뜨기) 하거나, 오전 내내 회의를 불참한 뒤 오후에 잠깐 얼굴만 비쳐도 ‘출석 100% 의원’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의회 관계자는 “일반 공무원이나 직장인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의원 출결 관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각과 조퇴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조차 없다. 내년 총선 때는 모두들 지역구 국회의원을 도와 선거판에 뛰어들 텐데 출석률 미달로 회의나 제대로 열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의원별 출석률 공개를 의무화하고 출석률이 낮은 의원에 대한 불이익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실제 인천 서구의회는 2016년 11월 의원 참석률을 높이기 위해 ‘의정활동비 지급 조례’를 개정해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참하면 결석한 일수만큼 의정활동비를 줄일 수 있다’는 벌칙 조항까지 신설했다. 김현주 인천 서구의회 의정팀장은 “시민 대표자인 의원들 스스로 의정활동을 수행하면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자는 의미에서 의정활동비 지급 제한 규정을 신설했다. 조례 개정 덕분인지, 불참 사유가 생기면 미리 청가서를 제출하는 등 무단결석으로 의정활동비가 삭감된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 “의정 감시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 필요”
최진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지방의회를 모니터해 보면 자기 차례 때만 출석해 잠깐 질문하고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 등 허수로 잡히는 출석이 매우 많다. 의회 출석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꼼수를 써서 출석률을 높이려 하고, 의원들은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의식 자체도 없다”고 비판했다. 최 국장은 “지방의원들은 회의 때 공무원이 불참하면 누가, 왜 불참했는지 회의 전에 다 공개하도록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불출석 사유 등은 정보공개 신청을 해도 개인정보라고 공개하지 않는다.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다 공개한다는 원칙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찬동 충남대 도시·자치융합학과(정책학 전공) 교수는 “의정 감시를 위한 전국 단위 대학생 네트워크 조직을 꾸리는 등 객관적인 평가와 모니터링 활동을 꾸준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행안부는 지방자치 정보공개 시스템을 통해 의안 발의 건수 등 5가지 핵심 의정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정해 동참을 유도하고 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이라 일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정책연구 실적 등 3개 항목을 행안부가 추가로 조사해 공개하는 등 지방의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민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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