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피치] 최원호 감독의 투수 육성론
최근 KBO리그에서 가장 화제의 팀은 한화다. 32승 4무 38패(7월 5일 기준)로 팀 순위는 8위에 머물고 있지만 최근 10경기에서 9승 1패라는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공동 4위인 NC와 롯데와의 승차로 고작 3경기밖에 나지 않는다. 요컨대 팀순위라는 겉을 보면 예년처럼 하위권이지만 안은 언제든 가을야구에 오를 수 있는, 혹은 가을야구를 경쟁하는 팀이 한화다.
한화의 상승세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최원호 감독이다. 수베로 감독에 이어 지난 5월 12일부터 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후, 한화 승률은 0.525(21승 19패)에 이른다.
최원호 감독은 인천고 시절부터 전국구 에이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단국대를 거쳐 현대와 LG에서 14시즌을 뛰며 통산 67승 73패, 평균자책점 4.64를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모교인 단국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야구계에서는 드문 ‘학구파 야구인’으로 손꼽힌다. 또한, LG와 한화 등에서 퓨처스 감독·코치 등을 역임하며 투수 육성에도 일가견이 있다. 즉, 현장과 이론 모두 해박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역 시절, 최원호 감독의 주 무기는 커브였다. “제가 1973년생인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변화구를 던지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초등학생이 변화구를 거의 던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세계대회 등에 나가니까, 외국 투수들이 변화구를 던지니까 우리나라도 변화가 생긴 거죠. 제가 5학년 올라가던 겨울에 감독님이 투수가 될 만한 선수들에게는 모두 커브를 가르쳤어요. 그렇게 해서 던지기 시작했죠.”
“제가 커브를 던진 게 40년 정도 전이니까, 솔직히 처음 커브를 어떻게 배우고 던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마 추측컨대 기본적인 커브 그립을 잡고 던졌겠죠. 그렇게 무수히 많은 공을 던지면서 계속 수정해 나간 결과, 저만의 방식이 생긴 거죠.”
자기만의 색깔을 정확하게 알고 상황에 따라 적용하는 게 중요
1980년대 초반 KBO리그가 갓 출범했을 때는 비시즌에 미·일에서 이름 높은 지도자를 초청해 지도자 강습회가 곧잘 열리고는 했다. KBO리그가 실업야구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한 만큼 세계야구와의 격차가 커, 그것을 줄이기 위한 지도자 교육에 신경 썼기 때문이다.
특히, 1982년 11월에는 토미 라소다 다저스 감독(당시)과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코치(당시) 등이 야구 이론·기술 세미나를 열었다. 작고한 신명철 전 스포츠서울 편집장은 라소다 감독이 “빠른 공을 던지려면 공을 잡은 상태에서 공과 손바닥 사이에 엄지손가락 하나가 들락날락할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게 기억에 생생하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원리에 입각해 변화구도 공과 손바닥 사이에 공간을 두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 감독은 커브를 완성하면서 오히려 공간을 두지 않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공간을 뒀죠. 그런데 그렇게 던지니까 손에서 공이 빠질 때가 잦았어요. 그래서 공과 손바닥 사이에 공간을 두지 않는, 즉 붙여서 던졌죠. 아마 커브를 잘 던진 대부분 투수가 그렇게 던지게 됐을 겁니다. 공간을 없애고 공을 잡으니까, 더 깊숙이 잡게 되잖아요. 공이 손에서 릴리스될 때 손가락의 면에 걸리게 되고 강하게 때리며 던질 수 있는 거죠. 흔히들 현장에서는 공이 찍힌다는 표현을 하는데, 공이 찍힌다는 것은 회전력을 더 준다는 뜻이거든요. 회전력을 더 주는 만큼 더 빠르고 예리하게 꺾이게 돼, 타자가 치기 어렵게 되는 거죠.”
최원호 감독은 변화구를 던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손가락의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손가락의 힘이 약하다고 해서 변화구를 못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투수는 손가락의 힘이 강하면 유리하죠. 커브뿐만이 아니라 포크볼이 그 대표적인 사례잖아요. 포크볼을 잘 던지는 투수는 손에서 공이 안 빠져요. 아무리 강한 힘을 줘도요. 어느 선수가 아무리 포크볼을 가르쳐줘도 못 던진다고 한다면 그건 손가락 힘이 약해서 그럴 확률이 높은 거죠.”
커브는 기본적으로 느린 공이다. 물론, 빠르게 휘는 파워커브나 너클커브도 있지만. 그렇기에 커브를 던질 때 중요한 것은 자기 공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있다. 110km/h대의 느린 커브를 던진다면 결정구로 삼을 수는 없다. 타자의 집중력이 높은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느린 공은 제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느린 커브는 이른 볼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를 잡는 용도. 타자가 이른 카운트에서 변화구를 노릴 확률은 거의 없으므로 변화보다 제구가 더 중요하게 된다.
반면, 타자의 집중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던지는 결정구는 제구보다 변화와 속도가 중요하다. 120km/h 후반에서 130km/h 초반의 너클커브가 여기에 해당한다. 최 감독은 이런 "자기만의 특성, 개성을 파악해 경기 상황에 맞게 던질 줄 아느냐가 일류와 이류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밝힌다.
지도자와 선수와의 신뢰는 어떻게 생기는가?
자기만의 변화구를 던지기 위한 첫걸음은 공이 변화하는 원리를 아는 데 있다. 그 원리를 알고 있을 때, 그에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를 주며 더 예리하고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 변화란, 처음부터 생겨나는 게 아닌 원리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최원호 감독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다.
“어떤 준비 과정 없이, 즉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이 몸으로 부딪혀 터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터득하는 시간이 준비하고 알고 시작하는 것보다 더 길 수밖에 없는 거죠. 과거에는 그런 지도자가 많았죠. 자기가 배운 걸로만, 혹은 자기 느낌으로만 가르치는 이가. 그런 지도자는 현장에서 30년 정도 해야 제대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30년이라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게 이론 공부인 거죠. 이것은 선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원리를 아는 상태에서 연습을 해야 빨리 터득할 수 있어요. 원리를 모르면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안 좋은데, 왜 좋고 안 좋은지 가늠이 안 되니까, 기복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최 감독은 선수 육성에 있어 “지도자와 선수와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도자와 선수와의 신뢰는 어떻게 생길까요?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선수보다는 지도자의 권위가 더 높잖아요. 그렇기에 우선은 지도자가 선수의 말과 같은 피드백을 믿어줘야 해요. 물론, 선수의 성격 등과 같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요.”
“선수가 아프다고 하면 그게 설령 꾀병이어도 아프다는 걸 믿고 휴식을 줘야 하는 거죠. 선수의 몸 상태는 누가 가장 잘 알까요? 감독도, 코치도, 트레이너도 아닌 선수 본인이니까요. 몸에 작은 위화감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게 야구라서, 부상 관리는 무엇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어요. 선수가 다치면 쓸 수가 없잖아요. 전력 누수가 클 수밖에 없고, 성적을 낼 수 없는 거죠.”
현역 시절, 아름다운 커브를 던진 최원호 감독은 변화구를 잘 던지는 요령으로 우선 속구 제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여러 가지가 있으면 중요도에 따른 순서, 혹은 우선순위가 있잖아요. 그처럼 투수가 가장 많이 던지는 공은 속구니까, 속구 제구를 잡는 게 우선적으로 중요하죠. 그다음에 지금 던지는 변화구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공을 장착하는 것이고, 그게 되면 제2, 제3의 변화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고등학교 투수들을 보면 변화구를 대여섯 개 던질 줄 알아요. 근데 제대로 던지는 것은 적어요. 빠른 공 제구도 안 되는 선수도 있고요. 여기서 생각해 보자고요. 던지는 가지 수가 많다는 건 연습의 폭도 넓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시간은 누구에게는 6시간 주어지고, 누구는 무한하게 쓸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제한된 연습량 속에서 많은 걸 해야 하는 게 집중적으로 하기 어려우니까,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우선은 선택과 집중인 거죠. 그 후에 하나씩 더해 가는 게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야구는 곱하기보다는 더하기가 기본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