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최강' 미국의 전투기 격추시킨 한국 전투기의 정체

사건은 33년 만에 열린 미국-필리핀 합동군사훈련 '코프 썬더 2023'에서 발생했습니다.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 중인 필리핀은 올 들어 미국과 국방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졌는데, 이에 올해 5월 1일부터 팜팡가주 클라크 공군기지에서는 코프 썬더 훈련이 개최됐죠. 그런데 훈련 중 필리핀 공군이 운용 중인 FA-50PH가 가상전에서 미국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를 격추시켜버렸습니다. 이 내용은 필리핀 제5전투비행단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간행물 'Fighter's Journal'에 소개되면서 알려졌습니다.

필리핀 공군에 의하면 FA-50을 몰던 필리핀 전투기 조종사는 '도그 파이팅' 도중 F-22 랩터를 'LOCK on' 상태로 만들었는데, 이는 공중전에서 상대 전투기를 격추시켰음을 의미합니다. 필리핀 공군의 FA-50이 F-22와 대치할 때 우측으로 급선회하던 중 F-22를 격추시켰다는 것이죠. 이에 필리핀 공군은 항공기 앞 유리에 관련 정보를 표시해주는 증강현실 화면을 실으면서 "이는 역사상 전례없는 성과"라며 자화자찬을 쏟아냈는데요.

물론 이번 격추는 실전과는 거리가 있는 합동군사훈련에 불과하고, 전문가들은 F-22 랩터가 강점을 가진 BVR이 아니라 WVR에서 전투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는 능력의 격차가 줄어드는 영역이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F-22 랩터가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엔진 출력과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현존 최강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이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겁니다.

미국 록히드 마틴과 보잉이 제작한 F-22는 1997년 첫 비행 후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 자리를 내주지 않은 현존 최고의 스텔스 전투기로 불리는데, 성능 면에서 상당히 열세인 한국의 FA-50이 이를 격추했다니, 쉽게 말해 3살 아이가 성인과 싸워 KO시킨 격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소식이 전해지는 겁니다.

이 사실을 'Keen Sentinel'이라는 X(구 트위터) 유저가 공개하면서 전 세계 모든 언론이 다시금 FA-50을 주목하고 있는데요.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맥 아더'는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공군전력 보유는 무의미하다며 해체를 지시했었습니다. 실전에 투입 가능한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없으니 불필요한 전력 낭비라고 본 것이죠. 하지만 '딘 헤스' 중령이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공군을 지켜냈죠. 한국전쟁은 항공 전력이 전쟁의 승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 최초의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항공 전력 강화에 올인했고,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태어났습니다. 항공 전력의 보유 유무에 따라 국가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의미에서 항공기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도의 개발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현재 모든 시제기가 비행에 성공하며 한참 성능 테스트 중인데요.

한국의 KF-21 전투기 개발 역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였죠. 6.25전쟁이 터졌을 때 대한민국에는 연락기와 훈련기만 있을 뿐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지상폭격기와 전투기 등 실전용 항공기만 198대를 보유하고 있었죠.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독립한 공군은 창설 당시부터 이근석 장군 등이 나서서 전투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했었으나 모두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개전 당일 북한 공군은 육군에 앞서 남한 상공을 침범해 국회의사당에 기총소사를 가하고 돌아가는 등 육군보다 한 발 앞서 남한의 혼을 쏙 빼놨죠.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군사 원조를 요청하게 됐고, 예상밖의 북한 남침에 놀란 주일 미군사령부는 전투기를 제공하기로 결정하고는 한국인 조종사들을 일본 이타즈케로 보낼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개전 이튿날 이근석을 포함 총 10명의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이타즈케 기지로 가 전투기 조종법을 익혔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10대의 P-51 머스탱을 몰고 한국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곧장 실전에 투입됐는데, 현재 공군은 한국 공군에서 최초로 전투기가 출격한 이 날, 즉 7월 3일을 '조종사의 날'로 지정해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죠.

첫날 작전은 무사히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둘째 날인 7월 4일, 경기도 안양 부근에서 북한군 기갑부대를 공습하던 이근석 장군의 전투기가 적이 쏜 대공포에 맞았습니다. 이 장군은 그대로 추락할 수 없다며 전투기를 몰고 그대로 북한군 탱크로 돌진해 장렬하게 산화했죠. 2년간 전투기 도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겨우 미국의 도움으로 전투에 나섰는데 허무하게도 이틀 만에 전사한 겁니다.

신성모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는 6.25 전쟁 육필 전황 보고서를 통해 "우리 공군의 활약은 얘기한 바와 같이 폭탄이 있는 대로 적을 폭격 사격하여 오던 바, 어제 오전 11시 적의 탱크가 수원을 향하여 들이밀 때 이것을 폭파하려고 나갔던 우리 비행기 4대 중에 이근석 대령이 조종하던 비행기가 적탄에 맞아서 떨어졌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어 "한국 공군의 제일 우수한 기능을 가졌으며 또 세계적 기록을 이룬 이근석 대령을 잃은 공군 일동은 총참모장으로부터 병졸까지라도 애도하는 바입니다."라며 "그들의 말에 의하면 군인으로서 전사한 데 대하여 슬퍼 우는 것이 아니라, 지난 두 해 동안 그 비행기를 얻어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드렸던 이 대령은 어렵게 얻은 그 비행기를 겨우 이틀 타고 전사한 것이 원통하다는 뜻이오, 하늘같이 믿고 그 비행기 뒤를 따라 날아갔던 공군 장교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 하여 운다는 것입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미군으로부터 거의 공짜로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인수한 한국 공군은 최초로 전투기를 운용하게 됐고, 한국전쟁 기간 약 8,500회의 작전을 펼쳤습니다. 특히 북한군 보급로를 끊었던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은 전쟁의 판도를 바꾼 것으로 평가됩니다. 만약 이때 전투기가 없었다면 아마 현재 우리는 이 모습으로 살지 못했을 겁니다.

어쨌든 전쟁이 휴전으로 접어든 후 국산 항공기의 필요성을 절감한 우리나라는 미군 항공기 폐부품 및 자재를 끌어모아 최초의 국산 항공기 '부활호'를 탄생시켰습니다. 부활호는 관측 연락 및 조종사의 초등 훈련용으로 사용됐고 우리 전투기 개발의 마중물이 됐습니다.

이후 등장한 국민이 모은 방위 성금으로 구매한 F-4 팬텀 그리고 1970년대에 접어들어 방산 육성에 전 국민의 뜻이 모이면서 1980년대엔 우리 손으로 만든 첫 훈련기 KT-1이 탄생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 무기체계 개발을 넘어 수출의 시대가 열립니다.

그렇게 탄생한 FA-50은 대한민국에서 만든 최초의 다목적 경전투기로, T-50을 기반으로 개발한 한국형 초음속 경공격기이자,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초석이 됐죠. 지난 6월 28일에는 한국이 독자 개발한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 1~6호기 모두 비행에 성공하며 2024년 최초 양산 목표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항공이나 전투기는 방위산업의 꽃이라 부릅니다. 다른 무기체계보다 최첨단 기술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국이나 러시아 등 일부 국가가 글로벌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데, 이제 한국이 국산 전투기를 앞세워 아시아 중동을 넘어 이제 방산 본고장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미국 해군, 공군은 고등전술 입문기와 전술 훈련기 사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이 사업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미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과 손을 잡고 500여 대의 전투기 납품 계약을 노리고 있습니다. K-방산 역사상 부품이 아니라 완제품으로는 최초의 미국 수출이 됩니다. 만약 이를 성공시킨다면 총 1,300대, 약 65조 원 규모 신규 계약이 체결될 전망인데, 이는 자동차 200만 대 이상을 수출한 것과 같습니다.

전투기 하나 만들지 못하던 시절, 조종사의 사망보다도 전투기 그리고 그 기술을 가르쳐 줄 전문가를 잃어버린 것을 애도했던 나라가 이만큼이나 발전한 겁니다.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말이죠. 과연 FA-50은 미국에서 어떤 결과지를 받게 될까요?

본 콘텐츠는 디씨멘터리의 이용 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