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티로더가 닥터자르트(해브앤비)를 헐값에 내놓으며 사실상 투자 실패를 인정했다. 업계에서는 에스티로더가 ‘K-뷰티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히던 브랜드를 인수한 지 7년 만에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 매각에 나섰다는 점에서 전통 채널만을 고집하던 글로벌 본사 주도 전략이 오히려 브랜드 경쟁력을 약화시킨 전형적 사례로 보고 있다.
26일 유통업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에스티로더는 닥터자르트 운영사 해브앤비 매각을 추진 중이다. 국내 사모펀드(PEF) 업계에서는 2000억원대 수준에서 인수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에스티로더가 지난 2019년 해브앤비를 약 1조3000억원에 인수한 점을 감안하면 최대 1조원 안팎의 가치가 증발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에스티로더가 사실상 투자 실패를 인정하고 손절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에스티로더는 2019년 닥터자르트를 인수한 이후 면세점과 백화점 등 전통 유통 채널 중심의 운영 전략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는 시장 변화와 엇박자를 낸 패착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중국 소비가 위축되고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면세 채널은 직격탄을 맞았고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축은 올리브영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럼에도 에스티로더는 상대적으로 고정비가 큰 기존 유통 구조에 무게를 두면서 채널 전환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그 사이 인디 브랜드들은 올리브영과 이커머스 채널을 선점하며 성장하면서 닥터자르트의 입지는 빠르게 좁아진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는 실적 지표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해브앤비는 인수 당시인 2019년 매출 6346억원, 영업이익 1214억원을 기록하며 K-뷰티 대표 ‘알짜 매물’로 평가받았다. 에스티로더 역시 닥터자르트가 연매출 5억달러(약 7000억원대)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성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1년간 닥터자르트 매출은 1788억원으로 전년 동기(2329억원) 대비 약 23%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144억원에서 232억원으로 확대됐다. 인수 당시와 비교하면 외형과 수익성 모두 급격히 후퇴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실적 악화가 매각가 급락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PEF들이 인수를 검토하는 것은 브랜드의 기초 체력이 완전히 훼손되지는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닥터자르트는 여전히 더마 화장품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글로벌 인지도를 갖추고 있고, 북미·유럽 시장에서 K-뷰티에 대한 수요 역시 유효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대기업 체계 안에서 둔화된 브랜드를 국내 사모펀드가 인수한 뒤 유통 채널을 재정비하고 제품 포트폴리오와 마케팅 전략을 재구성해 재성장시키는 시나리오에 대한 기대가 나온다.
국내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뷰티 기업의 성장세가 둔화됐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북미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고 유럽에서도 오프라인 수요가 회복되는 등 K-뷰티의 글로벌 성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관건은 브랜드 자체의 잠재력보다 이를 어떤 채널과 어떤 전략으로 다시 포지셔닝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PEF 입장에서는 닥터자르트를 리브랜딩해 새로운 가치로 확장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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