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단점은 아들이 없다는 것" 야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 박재홍 이야기

신인이 30홈런 30도루를 치면서 100타점에 만장일치 신인왕을 받는 일은 KBO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전무후무한 일이 1996년에 일어났다. 그것도 개막전부터 맥주캔이 날아오는 야유 속에서 시작한 신인이 해냈다는 게 더 놀라운 부분이다.

박재홍, 연세대 시절 쿠바 선수들과 비슷하다 하여 '리틀 쿠바'라는 별명을 달고 나타난 이 선수의 데뷔는 지금까지도 KBO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로 기억되고 있다.

배신자 낙인을 달고 시작한 데뷔

광주일고 시절 박재홍은 선발 투수이자 4번 타자를 동시에 맡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유망주였다. 1992년 1차 지명에서 고향 연고팀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고, 연세대로 진학한 뒤에도 대통령배, 백호기 등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리틀 쿠바'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데 프로 입단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해태와 계약금 협상이 난항을 겪던 중 실업 야구 소속의 현대 피닉스가 야수 최고액인 4억 3천만원을 제시하며 접근한 것이다. 실업팀이었기에 해태의 지명권과 충돌하지 않았고, 박재홍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현대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며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됐고, 해태는 재정난을 이유로 박재홍 지명권을 투수 최상덕과 맞교환했다. 결국 박재홍은 해태가 아닌 현대 유니폼을 입게 됐고, 광주 팬들의 분노가 터졌다. 홈 경기장에 들어서면 야유와 맥주캔이 날아올 정도였고, 언론은 "고향을 등진 배신자"라고 표현했다.

논란을 홈런으로 잠재우다

모든 게 뒤숭숭한 상태에서 박재홍은 1996년 개막전 1번 타자로 데뷔했다. 첫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치더니 데뷔 세 번째 경기에서는 홈런, 3루타, 2루타를 연달아 때려냈다. 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는 공격적인 타격폼은 상대 투수들을 짜증스럽게 만들었고, 강력한 스윙에서 나오는 타구 속도는 당시 '헤라클레스'라 불리던 심정수보다도 멀리 날아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시즌 중반에는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쌍방울 김성근 감독이 박재홍의 타격폼이 타자석 규정을 위반한다며 KBO에 이의 신청을 했고, 삼성 백인천 감독 등도 합류했다. 박재홍은 오픈 스탠스로 폼을 바꿔야 했고 16타수 연속 무안타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KBO가 메이저리그와 일본에 자문을 구한 뒤 적법 판정을 내리면서 해프닝으로 끝났고, 폼을 되찾은 박재홍은 9월 KBO 최초 30-30을 달성했다.

각종 신문이 대서특필했고, 논란의 설움이 한 번에 씻기는 순간이었다. 최종 성적은 126경기 30홈런 100타점 36도루, OPS 0.9 이상으로 팀 내 유일하게 세 자릿수 타점을 기록했다. 신인왕은 만장일치였고, 지금까지 KBO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30-30을 달성할 때마다 팀이 우승했다

박재홍의 30-30과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은 묘하게 맞물렸다. 1998년 개인 두 번째 30-30을 달성한 해에 현대는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박재홍이 4안타를 때려내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발목 부상을 입고도 테이핑을 감은 채 출장한 투혼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2000년에는 개인 세 번째 30-30과 함께 팀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는데, 그해 현대 유니콘스는 정규시즌 승률 7할에 가까운 역대 최강 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재홍이 30-30을 달성한 세 시즌 모두 팀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두 번 우승했다.

아들이 없다는 게 유일한 단점

기아를 거쳐 SK로 이적한 박재홍은 우승 반지를 3개 더 추가하며 SK 왕조의 일원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2년 KBO 역대 7번째 300홈런을 달성하고 17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세 번의 30-30, 통산 300홈런, 만장일치 신인왕, 골든글러브, 우승 반지 5개. 이 커리어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 "박재홍의 유일한 단점은 아들이 없다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성된 야구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