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일류’ 삼성, 노조 대응은 ‘초보’였다 [줌인IT]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을 몇시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극적으로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파국은 간신히 면했지만 파업은 초읽기였고, 총수는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법리스크 대응에 최적화된 서초 사옥 경영진이 노조리스크엔 서투르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지난 6개월 간 삼성전자 경영진의 노조 대응 능력은 어설프기만 했다. 2년 전 노조의 첫 파업 당시와 다를 것 없이 수동적으로 일관했다. 노사 관계는 극단으로 치달았고 파업 직전까지 갈등의 골이 깊었다. 노사가 실질적으로 합의점을 좁힌 것은 정부가 협상에 개입한 5월부터다.
임금협상 중엔 노조 집행부의 도덕성 논란과 과격한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대체로 사측에 유리한 여론이 형성됐다. 법원과 정부까지 나서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 시도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사측으로선 충분히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판이 깔린 셈이었다.
하지만 사업지원실과 회장 보좌역 등 서초 경영진은 '경직된' 성과주의 원칙을 고수했다. 무분규 협상의 골든타임은 허무하게 흘렀다. 노사는 2025년 12월 첫 상견례부터 올해 3월 말 집중 교섭까지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20일 오후 4시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 회의가 이뤄지고 나서야 '유연한' 성과주의 원칙을 담은 노사 합의안이 극적으로 도출됐다.
삼성전자는 교섭이 공전을 거듭하는 상황에도 대표교섭위원을 고수하며 협상 흐름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노조가 협상 재개 조건으로 교체를 요구한 후에야 교섭위원을 변경했다. 갈등을 중재할 돌파구를 능동적으로 마련하지 못하고 노조에 끌려다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착을 깨기 위해 투입된 여명구 DS피블팀장(부사장) 역시 서툰 판단으로 위기를 키웠다. 여 부사장은 20일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 과정에서 노조 측에 "결정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 사측의 협상력을 스스로 떨어뜨렸다.
설령 실제 권한이 부족했더라도 이를 굳이 발설한 것은 프로답지 못한 치명적 실책이다. 노조의 교섭 의지를 꺾고 협상 교착을 방치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다. 결과적으로 경영진의 안일한 리스크 판단이 노조가 총파업으로 향하는 극단적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경영진이 임직원의 불만을 제대로 읽지 못해 사태를 총파업 직전까지 몰고 간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극적 타결로 파국은 면했으나, 세계 시장과 주요 고객사에 적나라한 노조 리스크를 노출했다. 공급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시간은 적잖게 소요될 전망이다.
이번 타결은 사측이 협상을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여론과 정부 등 온나라가 도와준 덕임을 경영진은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 일류' 삼성이 노사관계에서만큼은 '4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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