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interview] “축구판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양천 TNT 신동화 디렉터의 바람 (1편)

[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사람이 성장하는 구단’을 모토로 내건 K5 리그 팀 양천 TNT FC.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수석 코치이자 디렉터인 신동화가 있다. 양천 TNT는 그의 주도 아래 K4 리그 진출을 준비하며, 2025 K5 리그 챔피언십 우승과 ‘KFA 어워즈 올해의 클럽상’ 수상을 발판으로 더 큰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른 나이에 잦은 부상과 수술로 빠른 은퇴를 결정했고, 은퇴 후 다양한 경험을 쌓다 지도자와 행정가의 길을 모두 걷게 된 신동화 디렉터.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그의 훈훈한 인상과 유려한 말솜씨는 단번에 분위기를 이끌었다. 덕분에 한층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넘치는 열정과 축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신동화 디렉터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뤄내기 위해 모든 걸 쏟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거나, 지도자와 행정가의 길을 꿈꾸는 이들에게 귀감이 될 이야기를 ‘IF 기자단 7기’가 담아냈다.
- 테크니컬 디렉터라는 직무가 생소한 독자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디렉터는 구단에서 정확히 어떤 업무를 담당하나요?
현재 제가 구단에서 하는 것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구단 철학과 정체성 정립입니다. 구단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그리고 구성원들의 성장 방향성을 어디로 둬야 할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유스 팀을 창단했기 때문에 아이들까지 성장을 시켜서 나중에 저희 TNT의 중요한 선수, 더 나아가서 출신 선수가 될 수 있게끔 운영하고 있고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방향성을 만드는 부분인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코칭스태프와 지원 스태프 간의 가교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전에는 선수들 코칭을 하고 오후에는 사무 일을 하면서 코칭스태프와 지원 스태프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소통의 원활함이 작년에 저희가 우승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선수단 관리인데, 아무래도 선수들이 프로선수가 아니라 생업 활동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나 공부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생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선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선수들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선수단 관리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부분은 소통과 거기서 나오는 이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이해라는 거는 축구뿐만 아니라 사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도 있고요. 이런 소통과 이해가 있어야지만 팀과 훈련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 같고 수준 있는 경기와 성적이 나오는 것 같아요. 꼭 성적뿐만 아니라 양천 TNT는 다른 팀과 다르게 선수들이 더 나아가서 축구 선수 이외의 삶을 살 때 삶과 사회를 좋은 자세로 대할 수 있도록 소통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양천 TNT에서 디렉터 이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직무들을 담당하고 있는지, 그로 인한 부담감은 따로 없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어떤 일을 하든 부담감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부담감에서 오는 긴장감이나 활력이 생길 수 있는 자극이 있다 보니까 오히려 그런 긴장감이나 압박감을 좀 더 즐기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일이라는 게 제가 디렉터라는 업무를 하면서 현장에서는 작년부터 수석 코치 역할을 하고 있고요. 동시에 TNT 인피니티 FC라는 아마추어 팀을 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장과 사무, 운동장 안팎의 모든 걸 다 같이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유망주에서 디렉터로, 새로운 길에 나서다

2002년 월드컵의 함성 속에서 축구를 꿈꾸기 시작한 한 소년, 그리고 지금은 그라운드 안팎을 넘나들며 팀의 방향을 설계하는 디렉터가 된 신동화. 유망주로 성장하며 선수의 길을 걸었지만, 반복된 부상은 결국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시선을 경기장 밖으로 넓히며 팀과 시스템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경험은 지도자이자 디렉터로 향하는 또 다른 출발점이 됐다. 그가 걸어온 성장의 과정을 직접 들어봤다.
- 어린 시절 신동화 디렉터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아마 저와 비슷한 세대는 다 똑같을 것 같은데요. 사실 2002년 월드컵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2002년 월드컵 응원 문화를 직접 느끼고 감명을 많이 받아서 월드컵 이후부터 축구라는 게 정말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었던 것 같고요, 2002년 월드컵 이후에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서 바로 시작하진 못했고 부모님을 열심히 설득한 끝에 2005년도부터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 베르더 브레멘, 전북 현대 유스를 거쳤으나, 어린 나이에 부상(18세 십자인대 파열)으로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고 알고 있는데, 신동화 디렉터의 선수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이렇게 텍스트로만 보면 화려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은 해요. 저도 정말 선수 생활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했고, 베르더 브레멘 유스는 사실 또 부모님 지원이 없었다면 못 갔었던 거였고요. 그래서 전북 현대 U-18 팀에 들어갔을 때도 정말 이거 아니면 나는 중학교 때까지 운동선수를 하고 그만둬야겠다는 집념으로 쉬는 날 없이 매일 운동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고3 전지훈련 기간 때부터 무릎이 정말 안 좋았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 십자인대 파열을 진단받고 수술을 했고, 첫 수술 이후 2년 동안 수술을 4번 했어요. 제가 18년도에 K3 리그까지 뛰고 은퇴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원하게 털어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 부상 이후 축구계를 떠나기보다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던 2년이 오히려 전환점이 됐어요. 직접 뛰지 못하다 보니 경기장 밖을 더 많이 보게 됐거든요. 스태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팬들이 어떤 소비를 하는지, 구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요. 독일 생활이나 전북 현대 유스 시절부터 좋은 시스템을 가까이서 봐온 경험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게 축구 행정과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된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재활 기간 동안 지도자 라이센스도 취득했고, 방향도 어느 정도 잡혀 있었어요. 은퇴 결정도 깔끔했습니다. 이적시장 중에 마지막 경기를 뛰고 바로 선언했죠. 부상 때문에 그만뒀다는 말은 잘 안 써요. 솔직히 부상이 10~30% 정도라면, 나머지는 제 노력의 한계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선수는 은퇴 나이가 정해져 있지만 지도자나 행정가는 그렇지 않잖아요. 남들보다 빨리 시작하면 그만큼 더 많이 부딪히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바로 뛰어들었습니다.
축구 선수로서의 경험을 뒤로 하고 지도자로서 축구 인생 제2막을 시작한 신동화 디렉터. 그는 그동안 경험했던 유럽 축구와 국내 축구를 바라보는 본인만의 시각과 확실한 철학이 있었다.
- 유럽과 국내 축구를 모두 경험했는데, 지도자로서 바라봤을 때 한국과 유럽 축구 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메이드 인 코리아’, 줄여서 MIK 프로젝트라고 들어보셨나요? 대한축구협회에서 한국만의 색과 철학을 정립하자는 취지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저도 유럽과 북미 축구를 직접 경험해봤는데, 유럽이 앞서 있는 건 맞아요. 역사가 깊고, 산업이 먼저 발전했으니까요. 근데 그게 한국이 잘못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2002년에 히딩크 감독님이 이런 말을 했었어요. 다들 한국은 체력이 좋다고 하는데, 오히려 기술이 좋고 체력은 부족하다고요. 그만큼 한국 축구만의 강점이 분명히 있었던 거죠. 근데 그 이후로 유럽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다 보니, 정작 우리 색을 잃어버린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해요. “공은 잘 차는데 축구를 못한다.” 요즘 선수들 개인 기량은 정말 뛰어나요. 근데 어떻게 하면 골을 더 많이 넣고 덜 내줄 수 있는지, 축구의 본질이 조금 흐려진 느낌이에요. 잘못했다기보다는 놓쳤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모방은 출발점이 될 수 있어요. 선진 사례를 보고 배우고,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해보는 과정은 필요하죠. 근데 트렌드는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고, 맞고 틀림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만의 철학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진짜 목표라고 봅니다. 저희 팀도 MIK 프로젝트를 듣기 전부터 단톡방 이름을 ‘메이드 인 TNT’로 해뒀거든요. 남의 걸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 걸 만들자는 마음은 늘 있었어요.
‘Made In TNT’라는 확실한 목표와 철학을 가진 신동화 디렉터. 그는 지도자로 향하는 과정 속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쌓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본인의 노력을 현재의 신동화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 은퇴 이후 IT 스타트업 근무와 운동생리학 공부, 피트니스 코치 라이센스 취득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이러한 경험들이 지도자와 디렉터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됐나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스타트업이다 보니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행정, 운영, 기획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거든요. 속도감도 엄청났고요.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일을 잘 정리하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아요. 현장 출신은 실행력은 있는데 정리나 구조화가 약할 수 있거든요. 그 부분을 채울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역할이 어떻게 나뉘고, 그게 어떻게 실행으로 이어지는지를 몸으로 익힌 시간이었습니다.
피트니스 라이센스는 EPTS 장비를 다루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축구에 접목시킬지 고민하다 보니, 현장의 피지컬 코치들과 제대로 대화하려면 저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직접 TNT 선수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도 해보면서 실행으로 옮겼고요. 근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낀 건, 이론이나 레퍼런스가 아무리 많아도 모든 팀에 똑같이 적용되진 않는다는 거였어요. 주기화든 생체 데이터든, 그게 다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우승하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하나였어요. 어떻게 하면 축구를 더 잘할 수 있을까. 지금 지도자와 디렉팅을 병행하면서도 그때의 경험이 계속 살아 있다고 느껴요. 그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선수 시절의 경험과 반복된 부상, 그리고 재활 기간 마주한 경기장 밖의 시선까지. 신동화 디렉터는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도자와 행정가라는 또 다른 길로 나아갔다. 여기에 스타트업 근무 경험과 피지컬 데이터에 대한 학습까지 더해지며, 현장과 운영을 아우르는 현재의 역할을 스스로 구축해 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앞으로 어떤 방향을 그리고 있을까. 지도자이자 행정가로서 그가 생각하는 최종적인 지향점을 들어보자.
- 지도자 혹은 행정가로서, 개인적인 최종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단순명료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어딘가에서 유용하고 좋게 쓰이면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잠깐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이 아니라 축구 산업 안에서 계속 쓰일 수 있는 영구적인 제품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요.
제가 여러 업무에서 오는 부담감들을 즐기는 이유도 정말 재밌어서거든요. 이 재밌는 일을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하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 대표님들, 단장님, 감독님, 스태프들에 사무국 분들까지 모두가 진짜 잘 맞아요. 서로 불편함 없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일을 즐기게 되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결국 그렇게 즐겁게 일하면서 이 판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신동화 디렉터가 축구에 빠지게 된 계기부터 그의 선수 생활 그리고 지도자가 된 과정을 지금까지 들어봤다. ‘IF 기자단’이 인상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신동화 디렉터 스스로 자신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또한 평가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성장을 토대로 그는 지도자와 행정가로서의 첫 발을 양천 TNT 로 내디뎠다. 이어지는 속편에서 그와 양천 TNT에 관한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IF 기자단’이 전달해 보고자 한다.
IF 기자단의 말: 신동화 디렉터의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콘텐츠 제작='IF 기자단' 7기
인터뷰=고성빈, 김시윤, 김재우, 지동환
장소제공=레코드피자 경의선숲길점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 포포투(https://www.fourfourtw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