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리포트] "저랑… 감튀 먹고 헤어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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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도둑·감튀모임까지… 가볍게 만나고 바로 흩어지는 관계 문화
관계 유지 부담은 덜고, 외로움은 잠시 달래는 새로운 연결 방식

[우먼센스] 지난겨울 '경찰과 도둑' 놀이가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것처럼,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특정 목적 아래 처음 만난 사람들이 짧게 만나고 가볍게 흩어지는 새로운 관계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이를 가리키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바로 '숏셜링(Short+Socialing)'이다.
짧게 소비하는 유튜브 숏폼 콘텐츠처럼 인간관계 역시 짧고 가볍게 소비하는 방식을 뜻한다. 단순히 "잠깐 만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관계의 시작부터 '지속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인간관계와는 결이 다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숏셜링 문화는 빠르게 확산 중이다. 왜 사람들은 깊고 오래가는 관계 대신 짧고 느슨한 연결을 선택하기 시작했을까.
유럽을 휩쓴 황당한 모임의 정체
숏셜링을 대표하는 사례로는 '경찰과 도둑' 놀이가 꼽힌다. 현실판 술래잡기 단체 게임으로, 지난해 겨울 당근마켓과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한 뒤 수십~수백 명이 공원이나 광장에 모여 경찰과 도둑 역할을 나눠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모임의 특징은 참가자들이 서로의 이름이나 직업, 나이, 배경을 알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단지 같은 놀이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연결되고, 놀이가 끝나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종료된다. 이후 따로 연락을 이어가거나 친목을 다지는 분위기도 거의 없다.
유행은 빠르게 확산했다. 래퍼 겸 방송인 이영지 역시 올해 초 SNS를 통해 경찰과 도둑 게임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무려 10만 명이 지원하며 화제를 모았다. 예상보다 규모가 커지자 그는 나영석 PD의 도움을 받아 실제 행사를 진행했고, 관련 영상은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공개된 뒤 조회 수 400만 회를 넘기기도 했다.
경찰과 도둑 열풍 이후에는 '감튀모임'도 등장했다. 말 그대로 온라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패스트푸드점에 모여 감자튀김을 대량 주문해 함께 먹고 헤어지는 모임이다. 특별한 목적도, 네트워킹도, 생산성도 없다. 그냥 잠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핵심이다.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가야 한다"는 부담 없이 가볍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숏셜링 방식이 러닝, 산책, 독서, 영화 관람, 편의점 먹방, 야식 모임 등으로까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오늘 한강 걸으실 분", "퇴근 후 30분 러닝", "새벽 편의점 아이스크림 먹기"처럼 짧고 즉흥적인 만남들이 SNS와 오픈채팅방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비슷한 문화가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독일과 영국 등 유럽권에서는 '이유 없는 모임' 자체가 하나의 놀이처럼 소비되고 있다.
대표 사례가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시작된 '포크로 푸딩 먹기(Pudding mit Gabel)' 모임이다. 지난해 8월 한 거리 전단지에 "우리 함께 포크로 푸딩을 먹읍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 황당한 제안이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푸딩은 원래 스푼으로 먹는 음식인데 굳이 포크를 사용한다는 점 자체가 일종의 밈(meme)처럼 소비된 것이다. 그 결과 첫 모임에만 약 200명이 몰렸고, 이후 베를린·함부르크·뮌헨을 넘어 오스트리아 빈, 스위스 취리히, 영국 런던 등으로 유행이 번졌다.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행사에는 1000명 이상이 모이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숏셜링 문화의 시초를 '같이 담배 피우기 모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24년 말 독일 베를린의 한 전신주에 "나랑 같이 담배 한 대 피웁시다. ○월 ○일 ○시 ○○광장에서"라는 익명의 전단지가 붙었고, 이 장면이 틱톡에서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별다른 설명도, 주최 측도 없었지만 실제 행사 당일 수천 명이 광장에 모여 함께 담배를 피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후 해당 문화는 미국 뉴욕으로까지 번졌고, 비슷한 콘셉트의 모임에 20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이런 흐름을 두고 "관계보다 경험 자체를 소비하는 문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람과 깊게 연결되기보다 특정 순간의 분위기와 현장감을 함께 소비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외롭지만 얽매이긴 싫은 세대
전문가들은 숏셜링 문화 확산 배경으로 '관계 피로감'을 꼽는다. 기존 인간관계는 단순히 만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락을 이어가야 하고, 상대의 감정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시간과 에너지를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친해질수록 책임도 늘어난다.
반면 숏셜링은 처음부터 끝이 정해져 있다. 짧은 경험을 함께 공유한 뒤 관계를 부담 없이 종료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어려워하는 사람들, 정기적인 약속이 부담스러운 사람들,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완전한 고립은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다.
SNS 문화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젊은 층은 자신이 참여한 경험을 인스타그램 릴스나 틱톡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데 익숙하다. 경찰과 도둑 게임, 감튀모임 같은 이벤트성 모임은 짧지만 강렬한 콘텐츠가 되기 쉽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랑 새벽에 감튀 먹고 헤어짐" 같은 경험 자체가 하나의 SNS 콘텐츠가 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숏폼 콘텐츠 소비 습관 역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긴 영상보다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세대일수록 인간관계 역시 빠르고 가벼운 방식에 더 익숙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영상을 2배속, 3배속으로 시청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관계 역시 효율과 피로도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숏셜링은 '연결되고 싶지만, 너무 얽매이고 싶지는 않은' 시대 감각을 보여주는 문화에 가깝다. 외로움은 덜고 싶지만 관계 유지의 피로는 피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관계도 필요한 만큼만 맺는 시대
흥미로운 점은 이런 변화가 더 이상 20~30대만의 문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회사 회식 문화가 급격히 줄어든 것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예전처럼 "끝까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는 약해졌고, 필요한 시간만 참여한 뒤 자연스럽게 빠지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동호회와 취미 모임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러닝 크루나 독서 모임은 관계 형성과 친목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함께 운동만 하고 헤어지는 모임" "책 이야기만 하고 끝나는 모임"처럼 목적 중심으로 가볍게 운영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오늘 같이 운동하실 분"을 모집한 뒤 연락처 교환 없이 헤어지는 문화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기업들도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CGV는 올해 만우절 이벤트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팝콘 모임'과 '안알랴줌 영화 모임'을 진행했다. 팝콘 모임은 말 그대로 함께 팝콘을 먹는 행사였고, 안알랴줌 영화 모임은 상영작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무작위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특정 목적보다 '짧고 색다른 경험' 자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이벤트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숏셜링 문화가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단순히 젊은 층의 일시적 유행이라기보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 자체가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깊게 연결되기보다, 잠깐 스쳐 지나가더라도 부담 없이 연결되는 것. 어쩌면 지금 세대가 원하는 인간관계의 모습은 '오래가는 관계'보다 '가볍지만 선명한 순간'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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